정기환 논설실장
못살던 시절, 한국 선거는 '막걸리·고무신 선거'로 대변됐다. 그 무렵, 한 친구는 웃자며 대학 과대표 선거판에 막걸리통을 들이밀었다가 보람도 없이 낙선하기도 했다. 요즘처럼 선거캠프의 볼펜값까지 세금으로 대주는 선거공영제에 비하면 호랑이 담배먹던 얘기들이다.
▶선거공영제는 돈 선거를 막겠다는 취지다. 15% 이상 득표자는 선거 비용의 전액을, 10% 이상 득표자는 절반을 국민 세금에서 되돌려 받는다. 문제는 이런 공영제에다 선거후원금까지 보태져 너무 '과해졌다'는 점이다. 후보는 후원회를 통해 당선도 전에 유권자들로부터 선거비용을 염출한다. 일정 득표율을 올리면 쓴 돈을 되돌려 받는다. 손 안대고 코 푸는 격이다. 유권자 입장에서는 이중과세이다. 미국의 선거는 정치후원금에만 의존한다. 국민 세금을 선거에 쓰지는 않는다.
▶여기저기서 선거 후원금 걱정이다. "선거도 여러가지지만 지방선거가 가장 겁난다." 선거 후원금을 낼만한 처지의 사람들은 요즘 비명을 지른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5개 동시선거에 지역마다 수백명, 수천명이 출마해서다. 인천·경기만도 1756명이다. 이만한 숫자의 후원회가 움직인다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지역사회에서 발이 좀 넓은 사람들은 "재벌총수들처럼 장기 해외 체류를 나갈 형편도 아니고"하며 난감해 한다.
▶이같은 요청에 잘못 대처했다가는 큰 코 다친다. "두고 보자." "아무개는 저쪽편에 줄을 섰단다." 돌고돌아 이런 말을 듣기 십상이다. 요즘은 선거펀드라는 것도 있다. '후원도 하고, 수익도 얻고'라지만 가봐야 아는 것이다. 득표율이 낮아 선거비용을 보전받지 못한 후보자가 과연 원금이나 제대로 돌려줄까. 돈이 없다며 펀드로 선거 치른 후보에게 "내 돈 내놓으라" 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 '떡 사준 셈 치자'할 것이다.
▶선거공영제에 후원금까지 보태는 건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세금으로 선거비용을 되돌려 준다면 우선 선거는 제 힘으로 치러내야 할 것이다. 나라 일에 뜻을 두었다면 집이든 논밭이든 잡혀서 나설 일이다. 그 정도 소득활동이나 사업능력도 안되면 주민들을 위한 지방정부 살림은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후원금 거둬 선거 치르고, 당선돼서 선거비용 되돌려 받고, 그러고도 뒷돈을 받다가 감옥을 가고. 이런 일들이 되풀이 되는 지방자치는 확실히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