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환 논설실장
냉온탕을 몇번씩이나 오간 느낌의 지난 한 주였다. 먼저 북한의 외교부 차관급이 미국에 대해 험한 말을 퍼부었다. 몇 시간만에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을 걷어차 버렸다. 이번엔 북한이 공손하게 "회담하시자"고 나왔다. 다시 트럼프 대통령이 "할 수도, 안할 수도 있다"고 나왔다. 급기야 주말 판문점에서는 번개가 치듯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다.
▶기본적으로 비핵화에 대한 미국과 북한의 속셈이 달라서일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겉으로 보면 북한의 그 험한 '욕'이 단초를 제공했다. 우리는 오랜 세월 단련이 돼 으레 '그러려니' 한다. 그러나 미국은 아닌가 보다. "당신들의 발언에 나타난 극도의 분노와 공개적 적대감"을 지적하며 발끈해 했다. 북한의 막말은 그 표현기법만 보면 예술급이다. 한 때 유행했던 '욕쟁이 할머니'는 저리가라 할 지경이다. 좀 알아주는 전라도나 충남 서해안 지방의 욕도 "지랄 옘병" 수준 아닌가. 북에 대한 우리측의 거친 말이래야 1970년대 "미친 개에게는 몽둥이가 약"이라는 정도였다. 우리는 언제 한번 '바른말 고운말' 쓰는 이웃을 둘 수 있을지.
▶북한 외무성 부상이 미국에 퍼부은 '욕'을 복기해 보자. "횡설수설하며 주제넘게 놀아댔다" "미국 부대통령의 입에서 이런 무지몽매한 소리가" "얼마나 정치적으로 아둔한 얼뜨기인가" "회담장에서 만나겠는지 아니면 핵 대 핵의 대결장에서 만나겠는지" 그래도 그간에 퍼부어 온 욕에 비하면 점잖은 편이다. 북한은 한국이나 미국 대통령을 향해 툭하면 "망나니"라고 했다. 시퍼런 청룡도에 침을 퇴퇴 뱉으며 엉성한 칼춤을 추는 사형 집행수라니. 궁금한 것은 이처럼 화려한 욕을 미국이 영어로는 어떻게 번역하는지다. "노망난 영감탱이"도 지난해 트럼프를 향한 욕이다. 지난해 우리 정부가 대화를 요청할 때는 "제 주제도 모르고 나댄다"며 사뭇 꾸짖었다. 올 초에는 평창올림픽을 빗대 "입간수 잘못하다가는 잔칫상이 제사상으로 될 수 있다"고도 했다. 아이고 무서워라.
▶외교관이 "Yes"라면 진짜 의미는 "Maybe"다. 외교관이 "Maybe"라면 속 뜻은 "No"다. 외교관이 "No"라고 했다면, 그는 외교관이 아니다. 외교관은 같은 말이라도 에둘러서, 모호하게 말한다. 겉으로라도 '좋은 관계'가 목표이기 때문이리라. 북한도 국제무대에서 외교적 수사법을 구사하는 보통국가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