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의 죽음과 집안 몰락 … 날 탈출 시켜준 건 음악
마음 그대로 담아낸, 사랑과 사람 위한 음악이 '진짜'
▲ 재즈 아티스트 그룹 '부미′s 재즈 오디세이'를 이끌고 있는 최부미 재즈 피아니스트가 재즈 음악여행을 설명하면서, 올해 첫 앨범 '불꽃'을 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동화 기자 itimes21@incheonilbo.com
▲ 2015년 11월 서울 서초구 DS홀에서 세계적인 라틴재즈의 거장이자 버클리 교수님인 바이브라포니스트 빅터 멘도자와 함께 공연을 마친 뒤 감격적인 포옹을 하고 있다.
박수갈채가 터져 나오고, 앙코르를 연호한다. 신들린 연주는 관객의 마음을 뒤흔든다. 그 음악의 영감은 어디서 오는 걸까. 얼마나 많은 땀을 쏟아 화려한 재즈무대의 주인공이 됐을까.

재즈 피아니스트 최부미(35)는 재즈 아티스트 그룹인 '부미′s 재즈 오디세이'의 음악감독을 맡고 있다. 그는 재즈 공연은 물론 작곡과 편곡, 피아노 연주 등 왕성한 활동을 하면서 재즈계를 이끌어 가는 새로운 스타로 떠오르고 있다. 모든 역경을 딛고 일어선 요즘, 그는 긍정 에너지가 넘치는 '핫'한 뮤지션이다.

그가 미국 버클리 음악대학에서 유학 생활을 하던 중 집안이 기울었다. 정신적 동반자이자 하나 뿐인 남동생은 교통사고로 먼저 떠나 보냈고, 14년간 운영했던 실용음악학원마저 폭삭 망해 지난해 정리했다. 그리고 이제, 자신의 재즈음악 여행을 즐기고 있다.

그는 자존감이 무너지고 우울하고 기운마저 없을 때 한 편의 영화를 보고, 한 곡의 음악을 들었다. 그리고 다시 일어섰다. 가진 걸 다 잃는다고 인생의 가치까지 잃는 건 아니었다. 더욱이 음악을 해야 하는 이유마저 빼앗아 갈 수는 없었다고 한다.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의 원천은 타인에 대한 사랑"이라는 최부미 재즈 피아니스트. 그는 '음악보다는 사람'을 더 소중히 여긴다. 공연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그에게 오디세이 같은 재즈 인생 이야기를 들어본다.


# 악보 안보고 피아노 치다 혼나

음악을 언제부터 시작했느냐는 물음에 '모태 음악'이라고 했다. 부모님이 서로 음악을 좋아해서 결혼했고, 클래식과 팝송 등 많은 음악을 들려줬다는 것이다.
그는 6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그의 어머니가 상인천 초등학교 근처에서 피아노 학원을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익혔다.

피아노 소리를 듣다보니 저절로 귀가 트였고 절대음감이 생겨 악보없이도 연주할 수 있었다. 그런데 당시 어머니는 악보도 보지 않고 피아노를 친다고 혼내곤 했다. 그게 상처가 됐는지,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그는 방향을 틀었다.

음악보다 더 관심 있던 과학자가 되겠다며 과학고등학교로 진로를 정한 소녀에게 첫 장애물이 찾아왔다. 성적 때문에 과학고 진학이 어려워 진 것이다.

"중학교 3학년 때, 별똥별이 엄청 떨어지던 날이었어요. 내가 무얼 잘 할 수 있나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역시나 음악이었고, 그 날 결심했죠. 유치원 때부터 꿈꿔왔던 훌륭한 음악가가 돼야겠다고."

성장통을 겪던 그 무렵, 한 편의 영화가 그의 인생을 결정적으로 바꿔놓았다.

브렌다 채프먼 감독의 1998년도 애니메이션 영화 '이집트 왕자'. 모세가 웅장한 궁전에서 걸어나가는 광경을 묘사한 배경음악이 압권이었다. 특히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홍해 바다를 건너는 모습을 표현한 애니메이션의 섬세한 영상미와 함께 그 때 흘러 나온 한스 짐머의 음악이 그를 사로잡았다.

히브리인들이 노예의 삶을 살면서 겪은 갖은 역경을 이겨내고 이집트에서 해방되는 그 순간의 기쁨을 음악으로 그려낸 것이다. 음악이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해 낼 수 있다는 것을 처음 느꼈다.

늘 음악은 엄마가 내 주는 숙제라고 생각 했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 음악이 달리 다가왔다. 그 때부터 과학자의 꿈을 접고, 영화음악에 완전히 꽂혔다. 마음을 다잡고 영화음악을 섭렵했다.

"캐리비안의 해적, 라이온 킹 등 할리우드에서 다양한 영화 음악을 제작한 한스 짐머가 키보디스트로 처음 음악을 시작해서 작곡을 잘 하는구나 싶어서 저도 피아노를 전공했어요. 실용음악 피아노 전공은 즉흥연주가 필요하기 때문에 작곡을 해야만 한거죠."


# 버클리 음대생, 다시 인천으로

그는 재수 끝에 서울예대 실용음악과에 03학번으로 들어갔다. 1학년을 마치고 휴학을 하고 2004년 인천시청 후문에서 실용음악학원을 열었다. 그런데 그해 우울증이 찾아왔다. 좀처럼 슬럼프를 극복할 수 없었는데, 재즈 뮤지션 팻 매스니의 음악을 듣고서야 드디어 '음악의 신세계'를 찾았다고 한다.

"그래, 내가 원하는 음악이 이거였지". 재즈음악은 영감을 주고 다시 그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연주보다는 작곡에 몰입했다.

자장면집에 전화도 못할 만큼 수줍음이 많은 소녀였던 그는 서울예대를 졸업하고 2007년 유학길에 오르는 미국행 비행기에서 자신의 성격과 삶의 철학, 인간관계 등을 다시 되짚었다. 그리고 스스로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다고 다짐하면서, 적극적인 성격으로 자신을 바꿔나갔다.

버클리 음대에서는 연주와 작곡, 두마리 토끼를 좇아 바쁜 유학생활을 했다. 영화음악도 감독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지, 자신의 마음을 담아내기는 어렵다고 느꼈다. 이후 재즈 컴포지션과 피아노 연주전공을 같이 했다. 4학년 때인 2010년 집안 사정이 기울자 유학을 접고 다시 인천으로 돌아왔다.

그에게 학원은 희망이기도 했지만 때론 거추장스러운 혹처럼 붙어 다녔다. 학원을 대신 운영하던 남동생은 예술을 하는 정신적 동반자였는데, 교통사고로 먼저 떠나보내야 했다. 결국 경영난까지 겹쳐 2017년 학원을 접었다.

"남동생을 보내고 작년까지 감성을 쓰는 게 너무 힘들어 곡을 하나도 못썼어요. 올해부터 힘을 얻어 '불꽃'이라는 첫 앨범을 낼 계획인데, 불꽃처럼 살다 간 남동생을 위한 헌정 앨범입니다."

이제 그는 자신의 재즈음악 여행을 다닌다. 그는 재즈 아티스트 그룹을 탄생시켜 오감이 감동하는 재즈공연뿐만 아니라 고혹적인 탱고, 살사, 우리 음악의 세계화 등 주목할 만한 행보를 이어가며 음악적 기량을 맘껏 펼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음악이 좋다'는 그에게 기념비적인 소리의 걸작, 위대한 작품의 탄생을 기대해 본다.


# 음악보다 더 좋은 건 '사람'

최부미 재즈 피아니스트는 본격적인 자신의 음악을 하기 시작한 2014년 재즈 아티스트 그룹 '부미′s 재즈오디세이(Boomi's Jazz odyssey, 이하 BJO)'를 탄생시킨다.

국내 최고 실력파 재즈 뮤지션들이 참여해 미국 아프로-아메리칸 블루스부터 월드뮤직까지 다양한 문화권의 음악을 넘나들며 다채로운 레퍼토리를 선보였다. K-팝과 재즈의 결합, 한국가요의 재해석 등 의미있는 기획공연으로 대중성까지 만족 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재즈 오디세이는 판소리와 민요, 잡가 등을 재즈음악과 결합시켜 보사노바나 플라맹고, 탱고처럼 세계적으로 우리음악을 알리는 것을 목표로 계속 나아가고 있다. 가요와 트로트 등 우리의 삶과 맞닿아 있는 귀에 익숙한 음악들, 또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는 K-팝을 BJO만의 색채로 재편곡해 감성적이고, 세련되게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 심리학자 패널과 함께 음악에 담긴 심리적인 의미를 되새기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도 주된 활동 영역이다.

'음악이 곧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그는 어려서부터 변하지 않은 가치관이 하나 있다. '음악은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철학이다. 그래서 바른 마음가짐을 반영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달하면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우선, 진심으로 제 음악을 하면서 마음을 표현하려고 합니다. 재즈 오디세이를 통해 리듬과 비주얼, 퍼포먼스가 어우러지는 공연을 하고 싶어요. 세세한 미장센까지 신경 써 대중들에게 어필할 생각입니다."

지난 14일 광주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재즈와 탱고' 공연을 마친 그는 12월까지 숨 가쁜 재즈 콘서트 일정을 앞두고 있다. 23일 엘림아트센터에서 '재즈와 와인' 공연을 비롯해 6월부터 12월까지 매월 부미′s 재즈 오디세이 정기 공연을 준비해야 한다. 특히 7월 부산과 인천 엘림아트센터에서 세계적인 라틴 재즈의 거장이자 미국 버클리 음악대학의 교수인 빅터 멘도자(Victor Mendoza)와 함께하는 살사 콘서트를 연다.

빅터 멘도자는 최부미 재즈 피아니스트의 스승이자 세계적인 비브라폰 주자 겸 라틴재즈 작곡자로 유명하다. 2015년 서울 공연에 이어 3년 만에 두 번째 감동적인 사제지간 라틴 재즈 무대를 펼친다. 이들 공연은 미국, 브라질, 아르헨티나의 음악세계로 떠나는 음악여행이다.

"여행을 다니지 못한 사람들에게 음악으로 대리만족을 주기도 하고, 혹시 제 음악으로 인해 여행을 떠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지난해 인천문화예술회관에서 항구도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탱고' 음악을 연주한데 이어 올해는 인천문화재단 지원사업으로 10월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에서 미국 뉴욕의 브로드웨이 음악의 진수를 선보일 계획이다.

그는 인천에서 나고 자랐다. 그의 재즈 음악세계에는 항구도시 인천의 'DNA'가 묻어있다.

/이동화 기자·이아진 수습기자 itimes21@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