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내 취급사업장 4923곳 … 해마다 유출사고 불구 지자체 '대안 마련' 뒷짐
최근 3년 78명 크고 작은 부상 … 시민, 정보·대처 요령 등 깜깜
"우리 집 앞 대규모 화학단지에서 어떤 유해한 성분이 배출되는지 전혀 알 수 없어 불안합니다."

경기도내 유해화학물질 유출사고가 해마다 발생하고 있지만, 정작 화학취급시설 인근에 사는 주민들이 접할 수 있는 화학물질정보나 대처요령 등은 여전히 '깜깜이'다.

도내 지자체들이 대안 마련에 '나몰라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학 유출사고는 소량으로도 인명피해를 불러오는 만큼 화학단지 인근 주민들에게 화학배출량 등 기본정보에 대한 알 권리를 보장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20일 환경부 화학물질정보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유해화학물질 취급사업장 총 4923곳이 도내 곳곳에 산재해 있다. 이들 사업장에서 위해성이 매우 크다고 알려진 벤젠 등 화학물질 210여종을 배출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인근 주민들의 안전사고 위험은 늘 상존한다.

도가 2010년 751개 일부 사업장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 사업장에서는 벤젠 등 매년 7196t 규모의 화학물질을 대기 중으로 쏟아내고 있다.

유해화학물질 유출사고는 소량으로도 큰 인명피해를 불러온다. 지난해 4월 안산시 상록구 한 식품공장에서 보수작업 중 밸브가 파손되면서 염산 40~50ℓ가 유출돼 작업자 2명이 다쳤고, 2016년 3월에는 연천군 백학일반산업단지 내 화학공장 폭발사고로 작업자 3명이 다쳤다.

주민 밀집 지역 인근의 화학단지에서 유해화학물질이 유출된 사례도 있다.

2015년 11월 용인시 기흥구 한 반도체 회사에서 황산공급장치 작업자 부주의로 황산이 누출되는 등 최근 3년(2015년~ 2017년) 도내에서 73건의 화학 유출사고로 78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이처럼 크고 작은 화학유출 사고가 빈발하지만 정작 지역주민들은 '내 집 앞 화학공장에서 어떤 물질이 나오는지', '이곳에서 나오는 성분이 안전한지' 등에 대한 정보를 접할 수 없는 상태다. 심지어 유출 등 긴급한 상황이 벌어질 시 취해야 할 대응요령도 알 길이 없다.

환경부나 지자체가 산업체들을 대상으로 화학물질 취급량과 배출량 등은 조사하지만, 조사 대상과 공개 범위가 '기업 기밀' 등을 이유로 극히 제한적인 탓이다. 결국 화학단지 인근에 사는 주민들은 늘 막연한 불안만 느끼며 살아야 하는 셈이다.

상황이 이렇자, 수원·화성 등 화학단지를 끼고 있는 환경단체들은 화학사고 예방과 대비를 위한 법률과 조례 제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2013년 발생한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불산 누출 사고' 이후 환경단체의 이 같은 움직임은 더욱 활발해지는 분위기다. '시민 알권리'를 활성화하는 것이 핵심 목표다.

주로 ▲화학사고위원회의 설치 구성 ▲시민의 알권리 실현을 위한 화학물질정보공개 및 평가에 관한 사항 등을 조례로 규정해 실효성 있는 안전 대응 체계를 마련하자는 요구다.

문제는 지역사회의 움직임과 달리 지자체는 소극적이라는 점이다. 2014년 '하천 물고기 떼죽음' 사고를 겪은 수원시는 도내 최초로 '수원화학물질 알권리 시민네트워크'를 구성하고, 관련 조례 제정에 착수하는 등 시민 알권리에 불씨를 당겼다.

이후 유사한 조례를 시행한 도내 지자체는 동두천, 안산 등 2곳에 그치고 있다. 대부분 지자체들은 입법을 위한 구체적 절차에도 돌입하지 않은 현실이다.

화성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지난 2013년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불산 누출 사고를 겪은 후 '화학사고 대응'을 위한 조례안 개정을 요구하고 나섰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며 "사고 이전이나 이후나 변화된 점이 딱히 없다"고 지적했다.

/이경훈 기자 littli18@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