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환 논설실장
십여 년전 서울의 문화계 뒤안길에 '조선의 3대 구라'론이 떠돈 적이 있다. 통일운동가 백기완씨, 왕년의 주먹 방동규씨, 문단 최고의 입담 황석영씨. 말하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이 이 셋을 묶어 타이틀을 붙인 것이다. 구라는 다시 구라를 낳는다고, 나중에는 이어령, 유홍준, 김용옥씨 등을 '신진 3대 구라'에 편입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청진동 해장국집에서나 떠돌만한 한 시절의 이야기 거리일 뿐이었다.
▶어느 마을이나, 집단이나 이른바 '구라'들이 있기 마련이다. 언론사에는 대개 전설같은 구라의 계보가 내려온다. '구찌빤찌'로 통하던 한 선배는 구라를 학술적으로 정리하기도 했다. 입 구(口)에 비단 라(羅)로 써야 한다. 진정한 구라는 팍팍한 인생살이를 어루만져 주는 그 무엇이다. 같은 물이라도 젖소가 마시면 우유, 독사가 마시면 맹독이 된다. 구라도, 고단수는 비단을 풀어내지만 하수는 장마철 걸레의 쉰 냄새만 풀어낸다. 어디서 또 생구라를 풀어대나 하면서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고수급 구라라면 단연 양주동 박사가 먼저 떠오른다. 1970년대 대학가에는 '원정 도강(盜講)'이란 게 있었다. 명강의로 소문난 교수를 쫓아 남의 학교까지 원정을 가는 것이다. 학구열이라기 보다는 대강당을 휘어잡는 '구라'에 빠져보려는 것이다. 양주동 교수는 특A급 원정 대상이었다. 특강이 있다는 소문은 요즘 모바일보다 더 빨리 퍼졌고 동국대 가는 길은 메워졌다. 과연 '국보'급 구라였다. 도도히 흘러가는 강물에 올라탄 듯, 한 눈 팔 새가 없었다.
▶인천에도 '하 구라'로 통하는 한 논객이 있다. 본지 시민편집위 위원장이자 홍익경제연구소 소장 하석용 박사다. 그가 고희를 맞아 1500페이지 분량의 칼럼집을 펴냈다. 그는 인천일보에 20여년 이상 월요일 아침을 깨우는 칼럼을 써왔다. 그를 알게 된지는 아직 일천하다. 그러나 노가리 안주의 막걸리 상 앞에서도 그의 구라는 술술 비단을 풀어낸다. 무림 고수들이 구사한다는 장풍(掌風)의 힘이 느껴지는 시원시원한 구라다. 그의 글 전편을 관통하는 정신은 '상식'이다. 모든 문제를 상식선에서 직시하고 그 답을 구하자는 것이다. 상식은 불완전한 인간의 한계에 대한 그의 성찰이기도 하다. 누대에 걸친 인천 토박이의 애증이 '상식'론으로 결정체를 빚은 듯 하다. 겉치레에 목을 매는 세태에 그의 칼럼집 제목은 그답게 질박하다. 그냥 '문·답'이라니. 그는 짝사랑하는 터전 인천에 대해, 무엇을 묻고 무엇을 답하려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