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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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전문적인 능력이 없이 태어난다. 잠재적인 성장 가능성만을 갖는다. 그런 생물학적 존재로 탄생하는 인간은 교육을 통해 인간다움을 갖추게 된다. 만물의 영장으로 군림하게 되는 인간의 원동력은 교육이다. 교육학자 듀이(John Dewey)는 인간의 성장이 교육의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율곡 이이(李珥)는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학문이 아니라면 사람이 될 수 없다(人生斯世, 非學問 無以爲人)’고 말했다.

교육은 오직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영역이다. 사람이 사람을 가르쳐 키우고 사람이 사람에게 배우면서 자라가는 일이다. 교육은 인간이 생존을 시작한 태고부터 있어온 셈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스승의 가르침은 인류 문명 발달에 기여했다. 와신상담, 토사구팽, 어부지리 등의 한자성어를 낳게 한 패권다툼의 춘추전국시대에도 공자와 그 제자들이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시대를 풍미했다. 사상과 철학이 학문으로 전수되고, 인간의 참된 도리를 가르친 스승에 대한 존경과 사랑의 정신이 역사 속에 남아 있다.

기원전 2500년 경, 고대 아테네의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는 국가재건의 가르침과 배움에 몰입했다. 플라톤의 스승 소크라테스는 산파가 새 생명의 탄생을 도와주는 것처럼 교육자는 사상과 지식과 이해를 낳을 수 있도록 학습을 돕는 존재라고 가르쳤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 플라톤이 세운 아카데메이아의 학생이었다. 아카데메이아는 1511년 라파엘로에 의해 바티칸박물관 시스티나성당의 벽화 ‘아테네학당’으로 재현됐다. 사제(師弟)의 관계는 인류역사에 담담히 그려지기도 했다. 동양에서는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가 스승의 엄중함을 상징한다.
오늘날 학교가 붕괴되고 있다고 한다. 교권이 추락했다고 한다. 페스탈로찌는 ‘교사가 인간의 목자’라고 말했으나 이른바 ‘미투’ 현장에 학교가 포함됐다. 교권은 교사의 권리인 동시에 권위를 상징한다. ‘스승의 그림자는 밟지도 않는다’는 속담처럼 스승은 존경의 대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교육청과 학교, 학교와 교사, 교사와 학부모, 교사와 학생 등의 갈등은 고조되고 있다.

공자와 같은 배우기를 좋아하는 스승, 희망의 스승, 차별하지 않는 스승은 많다. 인생에 영향을 끼치는 스승들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을 뛰어넘어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해야 하는 혼란의 시대이지만 스승의 날을 맞아 ‘사사제제’(師師弟弟)를 다시 꿈꾼다. 이제 전통적인 교사와 학생의 관계뿐만 아니라 생활 속의 멘토와 멘티가 있다. 문득문득 스승에 대한 존경심을 키우고, 배우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깨닫게 된다. 배움은 나의 성장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