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한 수사권 독립 … 그 시작에 섰다
▲ 인생을 즐기며 만화와 미술에 빠져 살던 큐레이터는 예술계의 적폐가 싫어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진학했다. 대기업을 거쳐 지금은 인천남부경찰서 영장심사관으로 맹활약 중인 김별다비 경감이 그 주인공이다. 김별다비 경감은 경찰을 건전하고 발전 가능성이 높은 조직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앞으로 수사구조개혁으로 경찰 조직에 변화가 이뤄진다면 좋은 품질의 수사를 국민에게 제공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사진은 김별다비 경감 인터뷰 모습. /양진수 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독립운동가·교육자의 보수적 집안서 만화가 좋아 미대로
큐레이터 활동시절 성희롱·저임금 통용됐던 미술계 싫어
보호무기로 '법' 선택 후 로스쿨 진학해 새로운 인생 설계

'경찰' 스스로 발전하는 조직 … 영장심사관 도입이 그 사례
구조 개혁땐 수사품질 높아지고 역량은 더욱 전문화될 것







인생을 즐기며 만화에 빠져 살던 학생은 미술을 전공했다. 큐레이터로 박물관과 미술관을 거치며 미술이 자기 인생이라 생각했던 '이상주의자'였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사회에는 나쁜 일이 너무 많았다. 결국 리얼리스트로 변신한 뒤 자신을 보호할 무기로 법을 택했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나와 대기업을 거쳐 지금은 경찰 간부인 인천남부경찰서 김별다비(35) 경감의 이야기다.

김 경감의 인생은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락내리락 했다. 지금은 경찰이 내세우는 1번 구호인 '수사구조개혁' 현장의 한 가운데에서 일한다.

경찰은 최근 영장청구권이 넘어올 때를 대비해 전국 8개 경찰서에 '영장심사관' 직책을 신설했다.

영장청구권을 받은 경찰이 영장 청구를 남발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자, 법조 경력이나 수사경험이 풍부한 경찰을 통해 자체적으로 미흡한 영장을 거르자는 차원에서 만들어진 자리다.

김 경감은 영장심사관으로써 남부경찰서가 신청하는 모든 영장을 보고, 의견을 제시하고, 미진한 점을 지적한다.

수사구조개혁은 김 경감 앞에 놓인 커다란 과제이자 주제이기도 하다. 4월의 맑은 어느 날, 남부경찰서 사무실에서 영장심사관으로 한 달쯤 일한 김 경감을 만났다.



▲큐레이터→변호사→경찰까지 … 쉼 없이 달린 인생

김 경감은 1983년 대전에서 태어났다. 가족들이 이사하면서 일찌감치 서울에서 살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아버지는 교육자였다.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 옥고로 돌아가신 독립운동가 김갑수(金甲洙·1894년~1938년) 선생이다.

집안 분위기는 검소하고 학구적이면서 보수적이었다고 한다. 동생도 1등을 놓쳐본 적이 없는 우등생이었다. 하지만 김 경감의 어린 시절은 집안 분위기와는 좀 달랐다고 한다.

"저는 만화에 빠져 있었어요. 공부도 거의 안했지요. 용돈을 만화책에 전부 쓰곤 했어요. 집안에선 그저 예의바르고, 착하고, 건강하게 살라고 하셨죠. 그렇게 살다가 서양화를 통해 만화를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곤, 경희대학교 미대에 진학했어요. 내 자아를 실현하겠다, 21세기는 크리에이티브의 세상이다. 이런 생각을 했죠."

그렇게 시작된 '미술 인생'은 대학원에 큐레이터까지 이어졌다. 전시기획자로도 활동했다.

마냥 즐거울 것 같았던 인생은 시작부터 벽을 만났다. 성희롱, 성추행, 갑질, 저임금이 아무렇지도 않게 통용됐던 미술계를 맞닥뜨린 것이다.

"제가 88만원세대였어요. 한 달 일하고 80만원을 받았지요. 성추행이나 성희롱에 해당되는 발언도 많았어요. 고통 받다가 결국 꿈을 접고 리얼리스트 선언을 했지요."

26살, 그가 택한 방패이자 무기는 '법'이었다. 법을 알면 나 자신을 넘어 남을 지켜주고 보호할 수도 있었다. 미술전문변호사로 활동하며 적폐를 없애고 싶었다. 공부를 많이 하는 로스쿨 생활이 만만치는 않았다.
그래도 대법원이 개최하는 가인법정변론경연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로스쿨을 졸업한 뒤에는 대기업에서 잠시 일했다. 일은 즐거웠지만 자신의 꿈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러다가 눈을 돌린 분야가 바로 '미술품 전문 수사'였다. 경찰이라는 새로운 인생이 막을 올린 순간이었다.



▲"경찰 조직 역량 높아 … 부족한 부분 채우는 중"

김 경감은 2015년 10월 변호사 특채 2기로 경찰에 임용됐다. 첫 부임지가 바로 남부경찰서였다.

젊은 경감은 경제팀장과 사이버팀장으로 일했다. 경찰은 밖에서 보기보다 훨씬 뛰어난 조직이었다.

"고급조직이에요. 잘 정제된 조직입니다. 내부 문제가 정말 적고, 자체적으로 잘 정화하는 편입니다. 근로환경이나 조직문화도 건전한 편이죠. 발전가능성이 높고, 지금도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영장심사관도 경찰 스스로 영장청구에 대한 논란을 줄이기 위해 만든 직책이다. 자칫 영장이 남발되는 걸 막자는 취지에서 법조 경력이 있거나 수사 경험이 풍부한 경찰에게 영장 검토를 맡기는 제도다.

김 경감은 영장심사관으로 활동하며 남부경찰서가 신청하는 영장을 모두 보고 의견을 내놓고 있다. 김 경감은 영장심사관으로써 수사구조개혁에 대한 생각도 뚜렷하다.

"다른 선진국 사례를 봐도 영장은 수사관이 즉시 법원에 신청하도록 돼 있지요. 만약 문제가 생기더라도 영장심사관이 걸러줄 수 있는 체계를 갖추려 하고 있어요. 오히려 시기를 놓쳐서 영장을 집행하지 못하는 사례도 있지요. 법원이 잘 심사하고 있기 때문에 신청권자가 누구냐에 따라 결과가 바뀌진 않을 것 같아요."

김 경감은 수사구조개혁으로 경찰과 검찰이 좋은 품질의 수사를 국민에게 제공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수사는 경찰이, 기소와 공소 유지는 검사가, 재판은 판사가, 변호는 변호사가 맡는 체계가 옳다고 지적한다.

"경찰 내부에서도 계속 스터디를 하고 있어요. 특히 경찰이 지휘를 받은 수사와 받지 않은 수사의 판결 비교, 수사 의견과 법원 판결과 얼마나 일치하느냐를 계속 팔로잉 해보려고 생각 중입니다."



▲"경찰 수사품질 계속 높아질 것"

김 경감은 앞으로 경찰의 미래가 어떻게 흐를지 예견하긴 어렵다고 했다. 수사구조개혁, 국민 여론, 자치경찰제도 도입 등 여러 변수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수사 역량이 더욱 높아지고 전문적으로 변할 것은 확실하다.

"수사는 종류가 굉장히 많지요. 특수수사, 형사, 여성청소년 수사, 실종업무, 교통, 보안, 정보, 내부감찰까지. 아마 모든 수사의 품질을 높이려는 움직임이 계속 있을 것 같아요. 기업에서 일할 때 느낀 건데, 고객들은 품질이 아무리 높아도 불량률이 높으면 제품이 나쁘다고 생각하지요. 그 '끄트머리'를 얼마나 줄일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김 경감 개인의 미래도 알기 어렵다. 15년간 쉼 없이 달려오며 롤러코스터만큼 오르락내리락했던 그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할지는 '예측불허'다.

김 경감은 웃으며 '그냥 지금이 너무 좋다'고 했다.

"정말 지금이 너무 좋아요. 여러 부서와 수사를 경험해 보고 싶어요. 의사들을 보면 실습수련만 10년을 하지요. 저도 그런 생각으로 일하고 싶습니다. 원래 생각했던 예술 분야 수사도 기회가 되면 반드시 하고 싶어요. 가장 선진화된 조직에서 일한다는 생각으로 소중한 경험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진영 erhist@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