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업력 54년 전국 '전설의 식당' 26곳 담아
▲ 박찬일 지음, 노중훈 사진, 인프루엔셜, 392쪽, 1만6800원
"한 입 베어 물면 입안에 한 시대가 들어오는 듯한 식당들이 있다. 맛이 있어 오래 남아 있는 식당. 그것을 우리는 노포(老鋪)라 부른다."

'글쓰는 셰프'로 알려진 저자 박찬일이 프롤로그에서 밝힌 '노포'의 정의처럼 '우리 곁에서 평균 업력(業歷) 50년 이상의 세월을 빚은, 26곳의 '빛나는 터주대감'을 소개한다. 그는 노포의 창업주와 대를 잇고 있는 이들을 3년간 찾아다니며 직접 들은 식당의 성공 비결, 위대한 장사 내공을 기세(幾歲), 일품(一品), 지속(持續)의 세 가지로 정리해 설명한다.

'그들은 어떻게 세월을 이기고 살아있는 전설이 되었나'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에서 저자가 정리한 첫 번째 전설의 비결은 '기세'다. 1939년에 창업한 서울 하동관은 지금도 점심시간마다 직장인들이 줄을 서지만, 하루 단 500그릇만 팔고 문을 닫는다는 원칙을 어긴 적이 없다.

눈앞의 이익에 흔들리지 않는 장사꾼의 배포는 서울 팔판정육점에서 찾을 수 있다. 1940년 창업해 3대를 이어오는 이곳은 언뜻 평범해 보이는 동네 정육점이지만 한때 전국 소시장의 가장 큰손이었다. 우래옥과 하동관이 무려 70년 고객이다.

두 번째는 '일품'이다. 최고의 맛을 위해 고된 노동을 포기하지 않은 노포들이 대다수이다. 화교 출신으로 타국에서 60년 넘게 산둥식 만두를 빚어온 부산의 신발원이나 인천의 신일반점은 오직 손맛으로 일가를 이룬 집념의 장사꾼이다.

"67년째 손으로 빚는다. 그것은 자존심 같은 것"이라 말하는 이들에게서 경이로움마저 느껴진다.
값싼 해산물로 배고팠던 청춘들을 위로했던, 부산의 명물 수중(해물)전골을 40년 넘게 해온 바다집 창업주도 오직 노동력으로 '1인분 8000원'이라는 가격을 '버텨'왔다.

세 번째는 '지속'이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는 고통스러운 근현대사를 맞은 탓에, 우리에겐 백년 노포가 거의 없다. 지금 노포가 새롭게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무엇보다도 대를 이어 수십년간 업을 지속해 온 위대함을, 그 가치를 이 시대가 재발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단순히 메뉴만 유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한 노포는 좁게는 개인의 추억 속에서, 넓게는 한 사회의 문화사 속에서 유물이 되고, 독자적인 '의미'를 갖게 된다. 이 책에 소개된 스물여섯 곳의 노포들 역시 그러하다.

인천의 대전집은 한 때 인천 구시가의 전설적인 상징이었다. 그 일대 문화예술인과 넥타이부대들이 술과 값싼 안주를 찾아 드나들던 사랑방이었던 셈. 그러나 속칭 신포동 골목의 몰락과 함께 이제는 잊혀져가는 추억의 노포가 되었다. 허나 끝은 아니다.

"제발 가게가 없어지지만 않게 해달라는 부탁을 들으니 작은 사명감이 생겨요"라고 말하는 2대 사장의 각오가 창업 47년을 맞이하는 이 노포의 존재가치를 말해준다.

대전집을 포함 이 책에 소개된 인천의 노포는 네 곳이다. 신일반점은 백짬뽕과 짜장면이 유명하고 밴댕이회 전문의 수원집, 복탕과 아귀찜으로 잘 알려진 신일복집이다.

우리 곁에 남은 오래된 노포들의 맛과 철학을 소개한 미문의 문장가인 저자는 그동안 <백년식당>, <미식가의 허기>,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뜨거운 한입> ,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등을 출간했다.

/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