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밈없이 진하게 … '민낯' 드러낸 건강 밥상

"본연의 맛 살린 연기처럼 먹을수록 자꾸 끌려"
 

▲ 사진 왼쪽부터 연극인 이정인, 이은선, 장혜선씨가 인천 부평의 토속음식전문점 '서촌이가'에서 명태코다리찜을 맛보고 있다.

"연극이라는 게 TV드라마나 영화처럼 NG났다고 다시 찍을 수 있는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치열하게 연습하고 공연 때는 긴장을 늦출 수 없고 집중해야 하는, 그렇지만 한 작품을 끝내면 아쉬움도 남지만 성취감과 뿌듯함이 밀려오는 순수하면서 묘한 매력이 있거든요. 그런 연극만의 매력에 빠져 배우라는 길을 걷고 있지요."

태어난 곳과 사는 곳은 다르지만 연극을 통해 만난 세 여인. 인천에서 극단 '공연창작소 지금'을 이끌고 있는 이은선 대표와 이름 앞에 '배우'라고 적힌 명함을 갖고 다니며 처음 만나는 사람과 인사할 때 건네는 장혜선씨와 '예술강사'라고 소개하지만 배우로 알아듣는다는 이정인씨가 인천 부평의 토속음식전문점 '서촌이가'에서 연극 연습할 때처럼 만났다.

초등학교 때부터 국어책에 나오는 '심청전'같은 희곡을 선생님도 없이 친구들끼리 연습하고 발표하곤 했다는 이정인씨는 "고등학교 때에도 연극반에서 활동하고 서울예대에 연극전공으로 들어간 뒤 대학로 극단에서 본격적인 배우의 길로 들어섰어요. 그러면서 수많은 작품과 공연을 했는데 뮤지컬 '그리스'와 '코러스라인' 초연 멤버였어요. 그 때 코러스라인의 쥬디 역을 했는데 '힘들어도 난 할거야'라는 낙천적인 캐릭터가 저와 비슷하고 사람들마다 '너에게 딱 맞는 역'이라고 해서 가장 인상에 남고 지금도 영어 이름을 쥬디라고 하고 있지요"라고 말했다.

서울 홍익사대부속여고 다닐 때까지 니체와 카뮈에 빠져있던 문학소녀였다는 장혜선씨는 "그 때 '5·18광주민주화운동'이 터졌어요. 교정에 장갑차와 군인들이 들어와 있었죠. 그런데 우연히 '서울 말뚝이'라는 마당극을 보게 됐는데 그걸 보는 순간, 뭔가 알고는 있는데 표현을 못하는 시대에 마당극 형식으로 대신해서 풀어주는데 뻥 뚫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연극배우들이 너무 매력적으로 보이는 거죠. 그래서 배우가 됐는데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에서 처음으로 주인공인 '사라'역을 했을 때, 첫 주역이었고 개인 팬클럽도 생기고 지금의 저를 있게 만든 의미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때까지 극구 반대하던 아버지께서 인정해주셔서 그런지 아직도 감동으로 남아있어요"라고 회상했다.

극단에 들어가 허드렛일부터 하며 연기를 시작했지만 지금은 극단 대표로 연출도 하고 희곡도 쓰고 필요하다면 배역을 맡아 직접 연기도 하는 이은선씨는 "저는 '그 해 여름'이란 작품은 제가 직접 쓰고 연출과 주연도 했고, 2015년 한글날에 베트남에서 한국 연극으로는 처음으로 공연을 해서 애착이 있어요. '그 해 여름'은 베트남 극단 '청춘'에서 베트남어로 무대에 올려져 이중언어 연극이 됐지요. 그 때부터 '한국-베트남 문화예술 교류 공연'으로 선정돼, 해마다 한 작품을 선정해서 양국을 오가며 공연을 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이들 여성연극인들은 최근 막을 내린 인천연극제에 대해 "극단마다 2~3개월 연습했는데 공연 한 번으로 대한민국 연극제에 나갈 인천대표를 선정하고 끝나는 게 아쉬워요. 최소한 3회 이상 공연을 보장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연극인을 위한 실질적인 축제가 되어야 하고, 공연을 더 하려면 극장 대관부터 배우들 개런티까지 극단에서 부담해야 하는 현실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중년 여성이 된 그녀들이 '문득 찾아온 불꽃같은 로맨스'의 주인공을 해보고 싶고 서로 자신에게 어울린다며 옥신각신하고 있을 때 서촌이가 이원자 대표가 특별히 무친 거라며 엄나무순 무침을 들고 왔다. 이들은 "이게 정말 효소액으로 무쳤나 봐요. 조미료로 무치면 나물의 향을 가리거든요. 본연의 맛과 향을 살리며 무치니까 정말 맛있네요"라며 젓가락을 잡은 손놀림이 빨라졌다.

"몇 년 전에 영화와 드라마 주인공으로 꽤 유명한 남자배우가 연극에 도전했을 때 '자신의 연기력이 이 정도 밖에 안됐나'라며 혼자 많이 고민하고 또 울기도 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영화나 드라마는 꾸며지는 연기라면 연극은 연기력의 민낯이 드러나거든요. 그러고 보니까 포장하지 않고 원재료의 본연의 맛을 살리려는 '서촌이가'와 연극은 서로 통하는게 있나봐요."

/글·사진 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



●곤드레돌솥밥·시래기돌솥밥

▲ 곤드레돌솥밥

 


 서촌이가에서 손님들이 가장 많이 찾는 음식은 바로 곤드레돌솥밥과 시래기돌솥밥이다. 곤드레는 건강장수식품의 대명사로 탄수화물, 무기질, 섬유질과 비타민, 칼슘의 함유량이 뛰어나다. 피를 맑게 하고 어혈을 풀어주며 간세포 기능을 활발하게 하여 기력회복을 돕는다. 시래기는 무청으로 말리는데 무보다 비타민C와 칼슘, 철 등 풍부한 영양소가 많이 들어있다. 설탕과 포도당 성분이 단맛과 매운맛을 내는데 항암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지방분해효소가 있어 다이어트에 좋고 풍부한 식이섬유는 장내 노폐물과 독소배출을 원활하게 한다.

 돌솥밥 위에 풍성하게 얹혀있는 곤드레와 시래기의 향긋한 냄새가 식욕을 자극한다. 따로 나오는 양념간장에 비벼도 되지만 고추절임, 당귀잎절임 등 각종 절임반찬의 간장소스로 비벼서 소금이나 참기름을 바르지 않은 마른김에 싸서 먹으면 그만이다. 돌솥밥은 주문한 뒤 15분 정도 있어야 되는데 같이 나오는 된장찌개는 조미료 맛이 전혀 안나고 심심한 듯 하면서도 진하다.
 
●코다리찜

 

▲ 명태코다리찜

 


서촌이가의 대표음식은 생선찜이다. 모듬생선찜은 도루묵, 가자미, 코다리, 가오리, 열기를 기본으로 계절에 따라 제철 생선이 더해진다. 가오리찜과 명태코다리찜도 있는데 주재료만 다를 뿐 모두 살이 튼실하고 양념도 같다.

각종 찜은 매콤한 맛을 내지만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해서 어린이나 어르신들도 소화에 부담없이 즐길 수 있다. 곤드레나 시래기돌솥밥과 함께 김에 싸서 먹으면 별미가 따로 없다. 녹두빈대떡, 해물파전 등 전 종류는 두툼하고 바삭하다. 낙지볶음은 매콤하지만 질기지 않고 도토리묵무침도 있어서 따로 주문할 수 있다. 이밖에 탕 종류로 황태두부전골, 버섯두부전골, 시래기닭볶음탕 등이 있는데 모두 건강을 생각한 '웰빙 음식'이다.

이원자 대표가 직접 만드는 모든 음식과 반찬들을 두 글자로 표현하면 '정갈'하고 '깔끔'하다. 대개의 경우 나물무침과 절임 등 4개 종류와 김치, 멸치볶음, 된장에 찍어먹는 풋고추와 브로콜리, 마른김, 매콤새콤한 도토리묵무침이 기본반찬으로 나온다.




조미료 안 넣어도 맛있는 비법 '산야초 발효액'
20가지 넘는 효소액 직접 담가 사용

 

 

 

 

 


"부평사람들은 이쪽을 서쪽동네로 알고 있어요. 제가 부평서초등학교를 나오기도 했고요. 그래서 부평 서쪽에 있는 이가네 식당이라고 '서촌이가(李家)'로 지었어요."

이원자 서촌이가 대표의 말처럼 경인전철 부평역 앞에서 경인고속도로 부평IC까지 부평대로를 사이에 두고 학교이름 등 지명이 북인천우체국 쪽은 '서(西)'로, 부평시장 쪽은 동(東)으로 표시하는 경우가 많다.

4년 전 생선찜과 아귀찜을 하던 식당을 인수해 '서촌이가'로 문을 열었다는 이 대표는 "손님들에게 한 끼라도 '건강한 밥상'을 제공하자는 생각에 오래 전부터 하고 있던 한정식 집을 접었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음식에 대한 지론은 '약과 음식은 뿌리가 같다', '음식으로 치료할 수 없는 병은 약으로도 치료할 수 없다'는 것으로 서촌이가의 모든 음식은 소금 함량을 줄이고 조미료는 아예 쓰지 않고 각종 산야초 발효액과 천연재료를 사용해 음식맛을 낸다.

재료 본연의 맛을 최대한 살려내는 조리법으로 신선한 재료의 자연스런 맛을 담아내는 정직하고 건강한 밥상으로 고객을 맞고 있다.

서촌이가의 쌍두마차인 곤드레돌솥밥과 시래기돌솥밥의 주재료 곤드레는 강원도 영월의 한 농장을 알음알음으로 찾아가 거래를 터서 1주일에 한 번 꼴로 직송받아 사용하고, 시래기는 양구의 펀치볼 마을의 크지 않은 농장에서 보내준다.

야채와 생선요리가 전문인 서촌이가의 또 다른 대표음식인 명태코다리찜 등 생선찜의 재료는 속초에서 받아 쓴다. 명태의 경우 다른 집과 달리 반건조한 것보다 조금 덜 건조한 걸 쓰는데 보관이나 손질이 조심스럽긴 하지만 살이 두툼해도 식감이 훨씬 부드럽고 자극적이지 않은 양념이 잘 배어들기 때문이다.

서촌이가만의 은은하고 담백한 맛의 비법은 이 대표가 꾸준히 직접 담가 사용하는 산야초 발효액에 달려있다. 이 집에 가면 한쪽 벽면에 진열된 발효액은 20가지가 넘는데 이 대표는 기본반찬으로 나오는 각종 나물류와 절임의 특성에 맞춰 단맛, 신맛, 쌉쌀한맛 등을 효소액으로 조절하고 있다.

이 대표는 "우리집은 소고기, 돼지고기 대신 몸에 좋은 생선요리로 손님을 맞는다"며 "서촌이가를 찾는 분들께 복을 드린다는 심정으로 정성으로 음식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가족이나 친구들의 모임이나 직장인들이 회식하기 좋은 테이블 세 개짜리 방이 두 개 있으며 방 사이로 홀이 있는데 테이블 사이를 넓게 배치해서 뒷사람끼리 부딪힐 일이 없다. 홀에는 좌식이 40석, 의자에 앉는 자리가 16석이 있다.

전용주차장은 없지만 걸어서 3분 이내에 롯데백화점과 가게 근처 곳곳에 있는 도로변 공영주차장을 이용하면 된다. 032-529-8200

/글·사진 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