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ck 3d gpu
바로가기
메뉴로 이동
본문으로 이동

[하석용 칼럼] 참으로 이상한 항복 <降服>, 그 이후

홍익경제연구소장

2018년 04월 23일 00:05 월요일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인가, 또는 그들은 대단히 합리적인가'라는 물음에 단적으로 대답하기는 무척 어렵다. 그들이 살아가는 하루하루를 관찰해보면 그들이 얼마나 하루 종일 이성과 비이성의 영역을 별 생각 없이 자유롭게 왕복하고 있는 존재들인지를 알아보는 것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들은 살인을 가장 용서할 수 없는 잔혹한 범죄로 규정하지만 그들의 역사를 장식하는 많은 영웅이 수없이 많은 생명을 살육한 수괴(首魁)들이다. 그들의 언어 속에서는 별 어려움 없이 정반대 개념이 서로 자리를 바꾼다. 몰인정한 자린고비가 근검과 절약의 인격체로 추앙을 받기도 하고, 아무리 악행을 저질러 만인의 규탄을 받던 잔인무비의 살인자나 도적이라도 이를 적당한 방법으로 회개하고 반성하는 순간 졸지에 다른 양민들을 계도하는 선각의 스승으로 탈바꿈하기도 한다.

요즘 한반도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사태가 또 다시 이러한 황당한 인간세상을 곱씹게 한다. 도대체 김정은이 누구고 그가 한 일이 무엇인가. 도대체 왜 그가 졸지에 국제적인 지도자 반열에 이름이 오르내리고 그가 이 한반도의 피스메이커 자리에 군림하는가. 그는 바로 얼마 전까지도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대한민국을 협박했던 집단의 수괴이고 전 세계를 향해 핵과 미사일로 평화체제를 위협했던 장본인이다. 그는 자신의 독재적인 집권의 안전을 위해 가족을 살해하고 수하를 무참하게 처형한 비인격적인 인간이다. 그의 지배 하에서 수 천만의 한민족이 굶주리고 반 인권적 상황 하에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은 국제적으로 공인이 된 사실이다. 아무리 인간들의 변덕과 몰이성을 백 번 인정한다고 해도, 그가 이제 그러한 만행의 끝에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총포를 내려놓겠다고 했다고 해서 감읍하고 미덕을 찬송해야 하나.

지금 한반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는 두 말 할 것도 없이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국제적인 힘의 충돌과 그 역학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드라마다. 작금의 현상은 1차적으로 명백하게, 북의 핵위협에 대응한 국제적인 압박이 끌어낸 김정은의 항복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초읽기에 들어간 실질적인 경제 붕괴상황과 외교적인 고립에 대응하여 우리 정부가 나서지 않았다 한들 어차피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다른 경우의 수가 무엇이 있을 수 있을 것인가. 물론 한반도에서 전면전을 벌이고 적당한 선에서 다시 휴전체제로 돌아가는 수를 선택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가 그러한 길을 세 불리로 판단하여 지금과 같은 선택을 했다고 해서, 아직 그 속을 알 수도 없는 것이려니와, 그가 우리에게 평화를 제공한 은인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어떤 경우라 하더라도 그는 철저하게 분석하고 관리하여야 할 대상일 뿐 동지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후의 한반도 상황이 어디로 흘러가게 될지를 장담할 수 있는 인사는 국내외에 아무도 있을 수 없다. 오늘의 국제적인 미·중·일·러·EU와 아랍의 국방과 경제의 각축과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방법도 없고, 세계는 통제의 핵심을 잃고 살얼음판을 걷는 중이다. 그 모든 힘이 맞부딪치고 있는 한반도에서 김정은은 자신의 왕조가 지속할 수 있기만을 꿈꾼다. 그가 생각하는 정의는 오직 김씨 왕조의 지속가능성뿐이라는 것을 의심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실패하는 경우는 생각하나마나한 것이겠거니와, 트럼프와 김정은의 만남이 성공해서 미국이 평양의 진입에 성공한다고 가정한다면 한반도의 정세는 또 다시 급격한 변화의 물살을 타야할 것이다. 동해에 대규모 군항을 건설 중인 중국으로서 당연히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을 것이고, 그러한 변화가 북측 내부에 심각한 충격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언제나 한반도의 불안정을 고대하는 일·러가 그러한 틈새를 어떻게 이용하고 파고들지도 예측이 불가다.

당연하게도 김정은은 그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걸어왔던 양다리 걸치기 전략을 최대한 다자간으로 확대하여 자신의 안정을 도모하려 할 것이고 그때에 대한민국의 위치는 시중의 언어로 낙동강 오리알이 될 수도 있다. 대한민국은 오늘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휴전협정을 종전협정이나 평화협정으로 바꾼다는 말장난은 역사가 그 의미를 부정한다. E, 프롬은 기원전 1500년부터 서기 1860년까지 영구적인 평화의 보장을 전제로 하는 평화조약이 지구 위에서 약 8000건이나 체결됐으나 그 효력이 지속된 기간은 평균 2년에 지나지 않았다라고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남은 방법은 하나, 동맹과 힘을 더욱 공고하게 합쳐 확실하게 항복을 항복답게 받아내는 것밖에 답이 없지 않은가. 대한민국, 일단 밉든 곱든 동맹이 우선이고, 이성적이어야 살지 않겠나.
<저작권자 ⓒ 인천일보 (http://www.incheonilbo.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태그 인천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