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4.png
▲ 故 최은희 /연합뉴스


17일 원로배우 최은희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12호실은 종일 원로급 영화인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조문객들은 고인이 생전 한국영화사에 남긴 발자취와 인연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고인을 추모했다.

신필름의 '마지막 세대'로 꼽히는 원로배우 한지일은 "최은희 선생님이 '항상 겸손하라'고 하셨는데…"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한지일은 1971년 명동 길거리에서 고인의 남편인 고(故) 신상옥 감독에게 캐스팅돼 영화계에 발을 들였고, 고인이 교장으로 있던 안양영화예술학교에서 수업을 받았다.

한지일은 "연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때 최은희 선생님에게 연기를 배웠다. 17년 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연극 공연을 하러 오셨을 때 만나 함흥냉면을 사주셨는데, 그 후로 찾아뵙지 못했다"며 애통해했다.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과 '공연계 대부'인 이종덕 단국대 문화예술대학원 석좌교수도 자리를 함께 했다. 김 전 위원장은 2006년 신상옥 감독 별세 이후 안양에서 열린 추모행사에서 해마다 추모사를 했다.

김 전 위원장은 "작년까지는 최은희 선생님을 직접 모시고 추모행사를 했는데 올해는 참석하지 못하셨다"며 "연말에 찾아뵀고 정초에는 직접 안부 전화를 주셨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중요한 한국영화에 거의 모두 출연했고 당대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스타 중의 스타였다"며 "신상옥과 최은희 두 분의 기념관을 짓는 게 평생 소원이셨는데 그걸 보지 못하고 가셔서 한스럽다"고 했다.

오후에도 원로 영화인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영화 '상록수'(1961), '빨간 마후라'(1964) 등에 고인과 함께 출연하며 1960∼1970년대 한국영화계를 이끈 원로배우 신영균, 신상옥 감독 아래서 8년간 조연출 생활을 하며 영화문법을 익힌 이장호 감독 등이 조문했다.

고인은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주례로 기록돼 있다. 1972년 그 결혼식의 신랑이 이장호 당시 조감독이었다. 이장호는 2년 뒤 '별들의 고향'으로 감독 데뷔를 했다.

이 감독은 "신상옥 감독님께 주례를 부탁드렸지만 '그런 것 안 한다. 최은희한테 해달라고 하라'고 말씀하셔서 최은희 선생님이 주례를 서 주셨다. 여성 주례는 요즘도 드문 일"이라고 떠올렸다.

이 감독은 "엄격하고 카리스마가 넘쳤지만, 섬세하고 자상한 면도 있어서 늘 교육받는 것처럼 느껴졌다"며 "지나고 나니 조연출 때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원로배우 최지희는 고인을 "대한민국 영화를 위해 태어난 분"이라고 표현했다. 1958년 '아름다운 악녀'로 데뷔한 최지희는 '자매의 화원'(1959), '해녀'(1964) 등 10여 편의 영화를 고인과 함께 했고, 자매 역할로도 여러 번 만났다.

최지희는 "언니는 위대한 배우이자 영화 제작 현장에 헌신한 분이었다. 현장을 돌보느라 평생 손가락에 반지 하나 끼지 않았다"고 말했다.

원로배우 최난경·고은아·태현실·윤일봉·정혜선도 빈소를 찾았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국현 한국영화배우협회 이사장, 이해용 한국영화인원로회 이사장, 지상학 한국영화인총연합회 회장, 오석근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류재림 한국영상자료원장, 이충직 전주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채윤희 여성영화인모임 대표 등 관련단체 인사들이 조화를 보냈다. 배우 이대근·이병헌·박중훈·전도연도 조화로 예우를 갖췄다.

고인은 2010년 6월 "내 생을 정리하면서 뭔가 뜻깊은 일을 하고 싶다"며 천주교 서울대교구 한마음한몸운동본부를 통해 사후장기기증 서약을 했다. 전날 별세 직후 각막 기증을 위한 절차를 밟았다고 유족은 전했다. 19일 장례미사에 이어 오전 9시 발인이 진행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