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웅희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남북이 주인공인 정상외교의 계절이 찾아왔다. 한반도는 냉전적 현상유지라는 패러다임이 뒤바뀌는 역사적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4월 남북 정상회담과 5월 또는 6월초 북·미 정상회담 개최 준비에 이어 '재팬 패싱(일본 배제)'을 우려한 일본의 발걸음도 분주하다. 그동안 소원했던 북·중·러 관계 복원도 시도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시진핑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체제를 확실히 보장하고, 핵 포기에 따른 전면적인 보상을 받는 것이 가능하다면 핵을 완전히 포기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북한 태도 변화의 진의는 무엇이고 비핵화 문제는 어떻게 풀어가야 할 것인가? 국내외를 막론하고 인식은 크게 엇갈린다. 4월초 도쿄에서 열린 한·일 1.5트랙(반관반민) 전략대화에서도 인식 차가 드러났다. 한국이 희망을 이야기했다면 일본은 의구심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 수년간 한·일 간에 마주앉아 나눌 얘기가 별로 없었다. 한·일 1.5트랙 전략대화는 정부 간 대화와 공공외교, 그리고 상호 탐색의 측면을 고려한 장치로서 경색된 한일관계를 전향적으로 풀어가기 위해 구상되었다.
1.5트랙 전략대화를 통해 느낀 몇 가지 소감을 적어본다. 먼저 북한의 태도 변화의 진의를 두고 한·일 전문가 사이의 인식 차가 드러났다. 한국 측은 진정성을 평가하거나 전략적 선택이라고 설명하려 했다. 반면 일본 측에는 의구심을 갖고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전문가가 많았다. 일본은 핵 무력 없이는 가난한 김정은 독재체제가 유지·가능하다고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일본 측 내부에서도 공·사의 온도차가 느껴졌다.

그렇다면 왜 북한이 태도를 바꾸게 되었는가. 이 또한 판단이 엇갈리는 지점이다. 일본 측 참가자 대다수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북한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냈다고 봤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에 의아해 했다. 그러면서 경제제재 효과가 아직까지는 크지 않지만 올해 말쯤이면 북한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즉 압박과 제재에 못 이겨서가 아니라 실패할 경우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는 북한이 전략적 선택에 나선 것으로 봐야한다는 입장이다.

구체적인 비핵화 타결방안도 핵심 논점의 하나였다. 김정은 위원장이 시진핑 주석에게 밝힌 '단계적·동시적 조치'는 북한이 하나의 비핵화 조치를 취할 때 미국도 그에 대응하는 보상을 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비핵화 단계마다 테러지원국 해제 같은 정치적 보상이나 제재 완화 같은 경제적 보상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일본 측은 여전히 북한의 비핵화 구상이 '선핵 폐기·후보상' 방식을 선호하는 미국 정부의 입장과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우려를 갖고 있었다. 북한이 시간을 버는 것을 허용하는 협상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이 보는 '한국 운전자론'도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비핵화 주인공은 북·미 또는 미·중이며 한국은 '대리 운전자'에 불과하지 않냐는 생각을 내비치기도 했다. 북·미 정상회담 준비 작업이 진전될수록 '중재자'를 자처하는 한국의 역할은 줄 수밖에 없다고 한다.

지금은 북한 비핵화 문제를 둘러싸고 한·일 간에 존재하는 인식의 갭을 해소 또는 축소하고, 공동 대응이 필요한 분야, 미래지향적 분야에서 양국 간 긴밀한 소통과 협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관건적' 시기이다. 바로 여기에 한·일 1.5트랙 전략대화의 존재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2018년 10월이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 20주년을 맞이한다. 한·일 관계를 지금까지 관계보다 한 차원 더 높은 관계로 끌어올리기 위해 한·일 양국은 1.5트랙 전략대화 같은 유연한 채널을 활용하며 함께 협력해야 한다. 납치문제를 포함하여 북·일 관계 현안 해결 및 북·일 관계 개선을 위해 한·일 양국은 협력을 마다해서는 안 된다. 한국과 미국은 이미 북한 비핵화 열차에 탑승을 했고 일본도 곧 이 열차에 올라타야 한다. 일본은 비핵화, 평화체제, 북한개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국가이다.
한반도에 기회의 창이 열렸지만 자칫 큰 일이 벌어질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이기도 하다. 11년 만에 찾아온 남북 정상의 만남이자 북·미 회담으로 이어지는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주변 열강이 자국 이해관계에 따라 한반도 운명을 좌지우지했던 불행한 20세기 구한말 역사가 재현되지 않도록 비핵화 대치 국면에 철저하게 대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