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백경 에이스 트리플 컨설팅 대표
사업을 시작하는 것을 창업이라고 한다. 혁신적 사업의 시작이라는 의미로 생계형 사업의 시작인 개업과 구별한다. 사전에는 나라를 처음으로 세우는 것도 창업이라고 나와 있다.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기 위하여 대의를 걸고 도원의 결의를 하는 것과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창업팀을 결성하는 것이 시대에 따라 형식은 다르나 본질은 비슷하다는 의미다.
같은 사전에 폐업은 직업이나 영업을 그만둠이라고 쓰여 있다. 창업한 나라를 그만둔다는 의미는 없다. 대의를 세워 나라를 창업하면서 폐업을 생각하는 창업가는 없을 것이다. 한번 세운 나라는 임의로 폐업하지 못하고 적의 침략이나 내부 반란에 의해서 멸망한다. 사업을 시작하면서 폐업을 생각하는 창업가도 없을 것이다.

필자는 29세 때 자동판매기 제조회사를 창업하였다. 법학을 공부했으나 막연히 기술 제조업을 동경했다. 한마디로 주제파악이 안 되었다. 공장부터 준비하고 기술 인력을 모집해서 개발팀을 꾸렸다. 첫 제품으로 과자자판기를 만들었으나 제과회사들은 살 생각이 없었다. LG산전으로부터 기술력을 인정받는 부수입은 있었다. 2년간 커피자판기 위탁생산을 하며 회사를 꾸려갔다. 수익이 좀 생기자 회사를 이전·확장하며 신제품 개발에 도전했다. 열정은 넘쳤으나 개발역량과 영업력은 부족했다. 외주가공과 위탁생산으로 매출을 창출하고 부족한 현금흐름은 담보대출로 충당했다. 폐업은 꿈에도 꾸지 않았으나 연대보증채무로 창업 9년만에 도산했다. 폐업을 준비하지 못했으므로 9년간 쌓아놓은 유·무형 자산은 허공으로 날아갔다.

적극적이고 준비된 '그만둠'을 구사하지 못하는 기업은 경영 위기에 봉착하여 도산한다. 물론 기업의 위기를 초인적인 능력으로 극복하고 성공을 만들어낸 소수의 성공스토리가 있다. 하지만 성공은 3할이 안되고 실패는 7할이 넘는다. 지난 3년간 평균 80만개의 기업이 창업하고 69만개의 기업이 폐업했다. 양적으로는 창업이 폐업보다 많다. 베이비붐 세대의 퇴직후 창업효과도 있고 적극적인 창업지원정책 효과도 있는 것 같다.

창업기업의 50%는 3년 이내에, 70%는 5년 이내에 도산한다. 도산하지 않는 기업도 근근이 명맥만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빨리 폐업하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 효율적인 경우가 많다. 실리콘 밸리 통계에 의하면 창업기업은 평균 2번의 실패를 경험하고 3번째 성공한다고 한다. LEAN STARTUP 창업방법론에는 실패를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가볍게 시작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한번의 실패로 창업열정을 완전히 소진하지 않도록 미리 폐업을 준비해야 한다는 역설적인 의미이다. 실패를 성공을 위한 창업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사회적 시각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연대보증제도 폐지 같은 제도적 보완도 확대·시행되어야 한다.

20년 이상 다니는 단골 목욕탕에 이달 말일까지 영업한다고 안내문이 붙었다. 24년 전 개업한 이 목욕탕은 한결같은 구조와 서비스로 24년을 버텨왔다. 목욕탕이라는 기존 업에 혁신이 없었으므로 창업이 아니라 개업한 것이다. 시작이 개업이므로 끝은 閉業(폐업)이 될 것이다. 목욕탕에 입점해 있는 구두닦이와 이발사도 같이 폐업한다. 그들이 근로자라면 실업이 될 것이다. 머리를 깎으면서 "앞으로 무얼 하시냐?" 물어보니 "놀아야죠"란 답이 돌아온다. 규모가 큰 조선소나 GM 코리아 같은 대기업 근로자들은 그나마 단체행동을 할 수 있어 사회적 형편이 나은 것 같다.

필자는 두 번 창업하였다. 첫 번째 창업은 쓰나미를 맞은 것처럼 도산했으나 두 번째 창업은 졸지에 쓰러지지 않고 미리 준비하여 廢業(폐업)했다. 자본주의 전사가 되겠다고 30년을 도전했으나 지역경제의 봉사자가 되었다. 57세에 처음으로 공공서비스 분야에 취업하여 3년간 종사한 후 실업이 되었다. 3번째 창업은 자연스레 창업에 봉사하는 서비스영역에서 도전하고 있다. 실리콘밸리 통계대로 3번째 창업에서는 성공할 수 있을까? 성공한다면 성공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