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하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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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가 품위 있는 사회요 성숙한 선진문화 사회인가에 대한 냉철한 성찰이 필요하다. 에리히 프롬은 소외 문제에 관심을 갖고 사랑과 인간성을 존중하는 것이 '건전한 사회'라고 했다. 마갈릿 역시 모욕과 무례(無禮)가 없는 사회가 문명화한 사회이며 '품위 있는 사회'라고 했다. 모욕은 자존감을 훼손하고 무례는 타인의 자부심을 손상시키며 사회적 명예를 훼손시키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 걸림돌은 무엇인가,

첫째, 언론보도 및 인사청문회 등을 통해 알 수 있듯 우리 사회는 고학력 지도층들이 문제다. 인간성을 상실한 국가 대표급 시험 선수, 윤리 도덕성이 받쳐주지 않는 지도층, 심리·사회적 성숙이 안 된 고위 전문직과 일부 졸부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흔히 패전 후 오늘의 독일이 되기까지 결정적 요인은 네 그룹 때문이라고 하지 않는가. 정치인은 사심을 버리고 질서(법)를 만들었고, 공무원은 정치인들이 만든 질서를 공정하게 집행했으며, 기업인들은 아이디어를 발휘하여 고품질의 제품으로 경쟁력을 높이고 고용도 창출했으며, 교수와 언론은 냉정하게 비판하고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한 결과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현실은 많이 다르다. 언론은 불신(편향)이란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교수들은 선거철만 되면 '똥파리'가 되어 캠프를 기웃거린다. 도대체 국민의 의무(병역과 납세 등)에 하자(瑕疵)가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정치인이 되어 국정을 논하고 공직자가 된단 말인가.

둘째, 국가 전 분야 중 유일하게 낙후된 곳이 고비용 저효율의 정치문화요 정치인·정당이 아닌가. 정치 선진화가 어려운 것은 근본적으로 한국 정치의 묘판(苗板) 자체가 심각하게 오염된 토양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두 가지 요인 때문이다. 하나는 소위 민주화(?)를 표방한 지도자들의 리더십 문제이다. 민주화 투쟁의 리더라고 칭송했지만 냉정히 분석해 보면, 국가 발전의 비전이나 대안 제시, 또는 입법 활동보다는 모든 국정 사안에 반대, 투쟁, 단식, 삭발 등의 강경 투쟁에 집중을 했다. 그 결과 정치가로서 이미지보다는 정치인으로서, 파이터(fighter)로서 리더십을 발휘했다고 생각한다. 다른 하나는, 미국 헤리티지 재단이나 하버드 대학 케네디 스쿨, 일본 마쓰시타 정경의숙(松下政經義塾) 같은 명품 인재를 양성하는 곳이 전무해 명품 인재가 길러지지 않은 상황에서 80년대 정치 민주화가 되었고, 정치 시장이 갑자기 확대되었다는 점이다. 이 때 몇 사람의 정치 지도자들의 눈에는 '같이 투쟁'을 하면서 저돌성과 투쟁성이 돋보이는 사람을 주목하게 되고 이들을 정치계로 끌어 들이게 됐다. 그래서 운동권, 정치꾼 등이 입문하게 되었다. 이들이 포진한 정치 못자리에서 합리론자인 데카르트나 스피노자, 조화론자인 라이프니츠가, 그리고 덕장인 유비가 자랄 수 없고, 지덕을 겸비한 제갈공명이 건재할 수 없다. 다혈질의 맹장인 관우, 장비, 여포 같은 사람만이 강경파로서 득세할 뿐이다.

정치가 무언가. 국민에게 희망과 비전, 보람과 가치의 기준, 국가성장과 발달의 지표를 제시하고 그것을 실제로 입증해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지도자 임기가 끝나고 시작할 때마다 우리 사회는 '죽일 자'와 '죽어야 할 자' 너무 많이 양산했다. 그리고 모든 역대 집권 정당은 정권 자리에서 물러난 즉시, 어제의 정의와 리더의 자리에서 하루 아침에 대죄를 지은 정당으로 매도·단죄되었다. 과거에 집착해 후진과 역주행을 반복한다. 결국 정치지도자들은 윤리·도덕성 실종의 조박(粗薄)한 사회로 악화시켰다. 왜 유독 정치 분야만 뒤처져 국민들의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가. 그 대책에 대해 지면관계상 두 가지만 생각해 보자.
하나, 각 분야 지도급 인사, 특히 정치인, 국회의원들의 품격있는 언행이 절실하다. 말은 인격이므로 씨가 되고 독이 되기도 한다. 언행에서의 '3E의 자질'이 중요하다. 품위 있는 언행과 우아하고 세련된 태도, 타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설득력과 능변, 매우 돋보인다는 점에서의 우수 탁월성을 갖추면, 결과적으로 개인 품격을 높이고 사회 언어환경도 순화시키게 될 것이다. 둘, 정쟁을 멈추고 대화와 토론, 타협과 절충, 융통성과 설득문화의 진 면목을 보여주기 바란다. 토론과 주장, 대화와 설득 없이 흑백논리가 대세이다 보니 우리 사회에는 '숭어가 뛰면 망둥이도 뛴다' 식으로 대부분의 군집행동에서 과시효과나 인기영합주의가 만연하다. 역사적·사회적·정치적 사건의 성격에 대해 진지하게 국회에서 토론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선진사회의 지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