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환 논설실장
'플라스틱 머니'라 불리는 신용카드가 이제 또 다른 얼굴로 인간을 압박해 오기 시작했다. 영화 제목처럼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는 식이다. 이른바 '세월호 7시간'과 최순실을 묶는 데도 신용카드가 활약했다고 한다. 그 날 청와대 행정관이 최순실 집 근처 김밥집에서 신용카드를 긁었다는 것이다. '강제키스' 미투를 당한 정봉주 전 의원은 되려 언론사와 기자를 고소하고 나섰다. 그러나 카드 영수증 한 장에 무대의 뒤편으로 사라져갔다.
▶이번에는 KBS 사장 후보 차례다. 그는 가슴에 세월호 리본을 달고 인사청문회에 나왔다. 그런 그에게 세월호 당일 노래방에서 '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추어도(송창식의 고래사냥)'처럼 놀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는 "기억나지 않는다"며 부인했다. 그러나 '2014년 4월16일 밤 10시45분 부산 해운대구 00노래방 16만1000원'이라는 카드 영수증에 "송구스럽다"고 물러섰다.
▶KBS는 본래 관영방송이었다. 기자 초년병 시절, 기자실에 KBS 기자가 들어오면 짖궂은 선배들이 "어이 문화공보부 직원이 어딜 들어와" 하기도 했다. 그러나 1983년 전국민을 울린 '이산가족 찾기'는 KBS를 다시 보게도 했다. KBS 한 노조는 방송적폐를 청산한다며 올 1월까지 143일간 파업을 했다. 무노동 무임금이었으면 가계가 바닥났을 터이지만 그런 소문은 들리지 않았다. 파업에서 갓 복귀한 MC가 방송에서 "비수기를 틈타 아주 헐값에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고 하는 얘기도 들었다.
▶파업 중에도 국민들은 매월 2500원의 시청료를 꼬박꼬박 물었다. 노래방 16만1000원도 결국 시청료에서 나온 돈이다. 그 시청료로 KBS는 최근 '추적 60분' 천안함 편을 내보냈다. 정작 천안함 장병들에게는 제작진의 전화 한 통 없었다고 한다. 같은 회사 노조조차 '편파 60분'이라 했다든가.
▶인간이 완전할 수는 없다. 그러나 KBS 사장 내정자는 두개의 얼굴을 보여줬다. '위선'과 '거짓말'. 그가 훈장처럼 세월호 리본을 달고 다닐 일은 아닌 것 같다. 노래방을 부인한 것은 거짓말이다. 닉슨의 탄핵은 도청 자체보다 그의 거짓말이 더 컸다. 이번 달에도 어김없이 시청료를 물어야 한다. 그런 우리가 KBS를 보며 '위선'과 '거짓말'을 먼저 떠올려야 한다면 무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