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호 언론인
앵커 손석희가 이명박(MB)을 향해 날린 멘트 '회상성 기억조작(Recall memory operation)'이 화제다. 물론 이 낱말이 새삼스러운 건 아니다. 2013년 박근혜 첫 미국 방문 때도 그랬다. 동행한 청와대 대변인 윤창중의 주미대사관 여직원 성추행 의혹 사건 때도 떠돈 단어다. 진실을 감추고 거짓으로 위기를 모면하려다 끝내 논리 모순에 빠져버리는 상황. 회상성 기억조작은 자기방어를 위해 기억을 짜맞추는 정신의학 용어지만, 이에 기대는 자들이 많아지면서 사회학 영역으로 들어서는 양상이다.

손 앵커 말마따나 MB의 기억조작력은 뛰어나 보인다. 한데 어디 기억조작뿐일까? 그의 일련의 수사(修辭)를 듣다보면 여러 정신의학 용어들이 떠오른다. 그 중 으뜸은 '도덕적으로 가장 완벽한 정권'이라는 자평. 이 대목에서 뭇사람들은 실소를 금할 수 없겠다. 하지만 MB로서는 사뭇 진지한 숙고 끝에 내린 결론일 것이라 본다. '단언컨대 정말 그렇다'고 확신한다는 것이다. 누구나 쓰고 싶지만 아무나 쓸 수 없는 이런 수사를 거침없이 내뱉는 배짱. 한마디로 망상장애의 하나인 과대망상(Grandiose delusion)이 아닌가 싶다.
딱히 MB가 아니더라도 권력은 본디 멍청해지는 경향을 지닌다. 굳게 닫힌 공간 청와대에서 큰 권력을 쥐고 있다 보면 모든 게 가능하다고 믿기 마련일 거다. 그럴수록 자신에게 관대하거나 느슨해져 멍청한 판단을 하게 된다. 결국 이는 나르시시즘(Narcissism), 즉 지나친 자기애로 발현되기도 하는데 MB의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 발언이 그렇다. 심리학에서 나르시시즘은 마키아벨리즘이나 사이코패스만큼이나 위험한 '악의 3요소(Dark Triad)'로 꼽힌다는 점에서 가벼이 여길 일은 아닐 것이다.

사족 하나 보태면 MB는 슈퍼맨이다. 안 해본 것 없이 다 해봤다. 안 해봤으면 말하지 말아야 한다. 이처럼 충만한 자기애는 타자(他者)에 대한 환대는커녕 적대적 관계로 몰아간다. 누군가를 적으로 삼아 다른 이의 지지를 이끄는, 나르시시스트의 필연적 생존전략이다. 물론 이를 적절히 실행하기 위해서는 뛰어난 연기력이 수반되는데, MB 얼굴을 볼 때마다 가면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건 이 때문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