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엽 인천지방변호사회 회장
이종엽.png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의 배경은 프랑스 알자스 지방 스트라스부르(Strasburg)이다. 라인강과 론강, 마른강을 잇는 운하가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해 있어 천혜의 교통요지이다. 국경을 맞대고 있는 유럽의 두 강자 독일과 프랑스, 그리고 스위스 3국 간 교역이 활발하며, 프랑스 동북부 지방의 경제·문화 중심지이다. 유럽 전체의 교통의 요지이며, 전통적으로 유럽의 군사적·전략적 요충지로 통한다.
지리적 중요성으로 인해 스트라스부르에 대한 지배는 프랑스, 신성로마제국, 프로이센, 프랑스, 독일, 프랑스 등으로 이어지는 수난의 역사였다. 유럽 역사에서 중요한 순간마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현장이기도 하다. 프로이센-프랑스전쟁(일명 보불전쟁)에서 스트라스부르의 함락은 파리의 함락으로 이어졌고, 앙숙 독일에게 패전한 프랑스는 역사상 가장 슬픈 강화조약을 맺어야 하는 굴욕을 겪었다. 승전한 프로이센은 게르만 역사상 가장 강력한 독일 제국(Deutsches Kaiserreich)으로 부상했고, 이후 제1차·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다시 프랑스영토를 짓밟았다.
수많은 전쟁의 상흔과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도시는 원래 그대로인 것 같이 고고하고 청순한 비애를 간직하고 있다. 운하 주위로 16세기에 지어진 고풍스런 건물들과 수로가 자아내는 쁘띠 프랑스의 고즈넉한 풍경은 형언할 수 없는 오묘함과 매력이 있다.
역사적으로 한반도는 중국의 힘이 강성할 때마다 국난 또는 사대의 굴욕을 당하곤 하였다. 일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북미정상회담 소식이 전해지던 날, 일본의 한 고위관리는 '북한이 필사적으로 미국과 대화하기를 원했다'라고 발언하여 미묘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아베 총리는 바로 트럼프와 통화하여 북미정상회담 전인 4월 미일 정상회담 일정부터 잡았다.
한반도 문제의 해결 실마리가 보이는 상황에서 소외될까 우려하는 모습이 우리에겐 씁쓸하다. 그간 북한의 ICBM과 핵에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군사력 강화, 북한 미사일 대비 훈련, 한국 내 일본인 대피계획 수립 등 한반도 전쟁상황을 가정한 비상한 야단을 떨며 앞서가고 있던 일본이기에 갑작스레 찾아온 대화 분위기에 아쉬워하면서도 서둘러 반전상황에 합류해 몫을 찾으려는 모양새다.
어찌 그것이 일본뿐이겠는가. 신무기 시험과 재래식 무기의 재고처리, 첨단무기 판매를 통한 전쟁특수를 잔뜩 기대했던 미국 내 네오콘과 군수업체들의 아쉬움은 더욱 클 것이다.
지금은 고인이 된 박세일 교수가 생전에 국내 모 물류경제인 모임에서 한 강연의 내용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북한 핵을 해제시키기 위한 빅딜 시나리오에 대해 '미국이 중국에게 대만에 대한 지배를 인정하고, 중국은 미국에게 북한을 양보하는 형태'의 빅딜 실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는 것이다.
미국은 국익 수호차원에서 한반도보다는 '인도양에서 말라카해협을 통해 태평양으로 이어지는 남중국해와 동중국해 해상항로' 확보에 더 큰 이익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오히려 '한국에서 미군을 철수시키고 대신 분쟁수역인 센카쿠열도와 가까운 대만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하는 방안'이 미국 국익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냉전이 심화되던 시기 한국전쟁 발발의 단초를 제공한 애치슨 라인(Acheson line)을 연상시킨다. 그럴 경우 한반도 전체가 중국 세력권 내에 들어갈 공산이 크고, 결국 '서해는 중국의 내해'가 될 것이라고 한다.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앞두고 한국과 미·일·중·러 사이의 교차외교가 본격 추진되는 양상이다. 그만큼 한반도 문제는 4강의 이해관계가 복잡다단하게 얽혀 있는 고차방정식에 해당한다. 전쟁을 막고 비핵화를 이루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 비핵화 진행 과정과 비핵화 이후 북한의 항로 설정이다. 북한 비핵화의 대가로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이것이 미군철수로 이어진다면 자칫 제2의 애치슨라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훗날 역사는 기술할 것이다. 2018년 봄, 분단된 한반도의 운명이 이와 같이 결정되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