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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석의 지구촌] 바덴바덴에서의 묵념<820>

2018년 03월 16일 00:05 금요일
▲ 언론인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1920~2010) IOC 위원장을 처음 만난 것은 1981년 독일의 바덴-바덴에서였다. 당시 조선일보 정치부 데스크를 맡고 있던 필자는 파리특파원으로 근무할 때 스위스 로잔에 있는 IOC 본부를 자주 찾아 취재하면서 각국의 IOC 위원들을 두루 알고 있었기에 88서울올림픽 유치단의 핵심멤버로 차출되었다. 사마란치 위원장이 프랑스어를 선호하여 한국 유치단과 협의가 있을 때마다 통역을 도맡기도 했다. ▶바르셀로나 출신인 사마란치 위원장은 젊은 시절 스포츠에 열정을 쏟았고 1966년에 체육장관이 되면서 IOC 위원에 선출되었다. 1977년 모스크바주재 스페인 대사로 임명되어 1980년까지 재임하면서 소련을 위시한 동구권에 단단한 인맥을 구축했고 1980년 제7대 IOC 위원장에 선출되었다. ▶사마란치 위원장이 IOC의 수장이 되었을 당시 올림픽 대회의 성가는 하향곡선이었고 IOC는 파산직전이었다. 1980년 모스크바 대회가 미국 등 67개국이 불참하여 반쪽 대회가 된 데다가 1984년 로스앤젤레스 대회의 전망도 어두웠다. 설상가상으로 1976년 몬트리올이 적자대회가 되어 선뜻 나서는 도시가 없었던 때였다. ▶바덴-바덴에서 우리가 일본의 나고야를 27대 52로 제압할 수 있었던 것은 유치위원장으로 활약한 정주영 회장을 비롯하여 김우중(대우), 조중훈(한진), 최원석(동아), 배종렬(한양), 전락원(파라다이스) 씨 등의 성원도 있었지만 박종규(전 대한체육회장, 경호실장) 회장과 사마란치 위원장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박 회장은 평소 국제 체육무대에서 구축한 인맥으로 아디다스 그룹의 다슬러 회장이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26명의 IOC위원의 표심을 확보할 수 있었다. 사마란치 위원장은 올림픽 대회를 살리기 위해 다국적 기업의 후원과 방송중계권 제도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일본보다는 한국이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서울올림픽을 유치하여 2002년 월드컵과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바덴-바덴은 필자에게도 평생 잊을 수 없는 곳이 되었고 유럽 여행 때마다 자주 찾았다. 각종 행사도 주관하여 명예시민증을 받은 곳이기도 하다. 평창 동계올림픽에 이어 패럴림픽의 열기가 뜨거웠던 날 바덴-바덴의 피에르 쿠베르탱 흉상 앞에서 모두 고인이 된 사마란치 위원장, 정주영 회장, 박종규 회장을 기리면서 그분들의 명복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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