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 전국 최초 도입
2012년 재개발 갈등때
당사자들 요구로 '개정'
배심원 사업 취소 평결
신분당선 '역사 명칭도'
관주도 민원 탈피 열쇠
"시민법정은 법원 재판과 같이 한 사람은 이기고, 한 사람은 지는 '승패의 구조'가 아니라 시민들이 토론에서 합의점을 찾는 '대안적 해결방법'입니다." (수원시 시민배심법정 평결 中)

'도시 재개발사업'으로 수원시 시민 간 분쟁이 본격화 된 2012년 2월, 아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모의법정에서 전례 없는 재판이 열렸다.

갈등을 겪던 시민 232명이 신청인 자격으로 법정 개정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피신청인은 추진 당사자인 수원시 관계자들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을 지낸 김칠준 변호사 등 2명과 일반 시민들은 판단을 내리는 '판정관'과 '배심원' 자격으로 법정에 앉았다. 참고인으로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등도 참여했다.

이날 쟁점은 '재개발 사업을 취소', '토지소유자 등에 대한 설명 및 의견조사' 등 크게 2가지. 신청인들은 법정에서 배심원들에게 "개발로 인해 원주민들이 헐값의 보상에 쫓겨나게 될 처지다"며 "내 집에서 내가 편하게 사는 게 좋은 것이다. 자산을 지키게 해 달라"고 간청했다.

약 3시간 동안 진행된 토론에서 판정관과 배심원들은 향후 재개발사업을 지속하는데 동의하는지 토지소유자 등을 대상으로 한 여부 조사를 실시, 그 결과에 따라 사업취소를 결정하라고 시에 평결했다.

이 평결은 향후 수원시 '재개발 사업구역 의견조사 및 취소에 관한 규정' 등 실질적 정책이 탄생하는 데에 단초가 됐다.

수원시가 전국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도입, 운영하고 있는 '시민배심법정'에서 곳곳에 산재한 갈등을 푸는 열쇠가 될지 지역사회가 주목하고 있다.

14일 시에 따르면 2012년부터 시민 생활과 밀접한 정책의 결정이나 추진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시민배심원제(시민배심법정)을 운영하고 있다. 운영 취지는 갈등을 '시민 스스로' 풀게 하자는 것이다.

이해관계가 없는 시민들이 배심원으로 직접 참여, 갈등 조정과 동시에 합리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한다. 이런 형태의 제도는 전국 어디에도 전례가 없었다.

현재 갈등 문제는 지자체에 의해, 지자체가 해결하는 '관(關) 주도' 형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에 갈등 대상자 모두가 납득할 만한 충분한 판단이 나오기 어렵다.

실제 개정된 법정에서는 갈등을 겪는 시민 당사자들의 절절한 하소연, 그리고 시에 해결을 바라는 간절함이 생생하게 표출된다. 하나하나 모인 시민들의 의견은 수원시가 실제 정책 수립이나 결정 등을 하는데 '척도'로 활용하고 있다.

2015년 2월에는 광교동 2개 지역을 통과하는 신분당선 역사(SB05, SB05-1) 명칭을 두고 갈등을 빚던 양쪽 주민들의 민원을 해결하기도 했다.

당시 판정관과 시민배심원들은 SB05는 다양한 공공시설의 존재로 지역발전의 가능성이 높고, '광교신도시'가 아닌 '신분당선'의 상징성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 SB05-1에 광교역 명칭을 사용하는 것으로 평결했다.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이후 양쪽 주민들 간 갈등이 더 이상 유발되지 않았단 점이다.

이해관계자가, 제3자가 모여 허심탄회한 논의를 나누는 과정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민배심원제는 문재인 정부가 원자력발전소, 신고리 5·6호기 지속 여부를 결정하는 '공론화기구' 구성에 활용하기 위해 벤치마킹하기도 했다.

유병욱 수원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책부장은 "시민배심법정은 지역사회 갈등을 둔 시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시민참여 정책의 새로운 유형"이라며 "다만 '강제결정'하는 수단이 아닌 시민들의 객관적 의견을 실제 정책이나 갈등해결에 활용하는 방향성을 가져야 하고, 각계각층의 시민참여를 이끌어내야 진정한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 보인다"고 조언했다.

/김현우 기자 kimhw@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