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수자·매출 급감 … 도공 "명맥 끊기는 건 시간문제"
▲ 최근 중국과 동남아산 저가 생활자기에 자리를 내주면서 우리 전통자기가 사라지고 있다. 시장 불황으로 도내 도자기 메카인 이천시 신둔면에 위치한 도예촌도 예외가 아니다. 이천시에서 도자기 명장으로 선정된 한 도공이 자신의 작업실에서 먼지 쌓인 도자기를 정리하고 있다. /김철빈 기자 narodo@incheonilbo.com
"후학들 양성한다는 알량한 자존심하나로 지금껏 버텨왔어. 이젠 그것도 없어. 대한민국 전통 도자기 명맥, 이대로 가다간 끊기는 것은 시간문제야." 도자기 명장(名匠) A씨는 "2000년대 들어 값싼 중국 생활자기 등이 쏟아지면서 예견됐었다"면서 벼랑 끝에 선 우리 도예계의 현주소를 짚었다.

그는 1967년부터 도공의 길을 걸었다. 50년 전만해도 기술자가 우대받던 사회분위기였다. 그도 어린나이에 머뭇거림 없이 도공의 길을 택했다. 잠은 늘 부족했고, 호된 꾸지람을 들어야 했다. 한 눈 한번 팔지 않았다. 이른 새벽부터 자정까지 전통자기를 제작하거나, 새로운 작품을 연구했다. 그렇게 장인(匠人)이 되기까지 30여년. 몸은 고됐지만, 전통 도자기를 계승한다는 긍지로 버텼다.

그러면서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그에게 전통도예제작 기법을 전수받아 자립한 도공만 10명이 넘는다.

A씨는 다양한 도예 실력을 인정받아 2005년 이천시 도자기 명장에 올랐다.

그는 몇 년 째 전통도예를 전수하고 싶다고 찾는 후학이 뚝 끊겨 고민이다.

그는 "2000년대만 하더라도 한 달 평균 4~5명이 찾아왔지만, 2010년부터 올해까지 도예를 배우겠다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했다. 이어 "기피 직종이 된 도자업계의 추세가 지속되면 20년 이내에 전통도자기를 찾아보기 힘들 것"이라며 혀를 찼다.

이천 도자기 명장 B씨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깜깜한 앞날이 막막하다. 그는 지난해 4억원을 빚내 공방을 차렸다. 하지만 매일 100만원의 금융이자 걱정이 앞선다.

B씨는 "다른 명장들에 비하면 나는 나은 편이다. 명장 중 경비원으로 일하는 이도 있다"며 "명색만 명장이지만 판로확보와 같은 지원이 너무 적다."고 한탄했다. 그는 해외 판로 개척을 위해 직접 캐나다로 떠날 예정이다.

35년 동안 도자기를 빚어온 도공 C씨는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 공방 대신 공사현장으로 출근한다.

C씨는 8년 전만 해도 매달 700만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하지만 경제불황으로 손님 발길이 뚝 끊기면서 올해 2월에는 200만원 남짓을 손에 쥐었다. 공방 임대료, 제작비 등을 제하면 오히려 적자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도공들이 부지기수다. 명장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도자기 명장은 '대한민국 명장' 9명을 비롯해 '이천시 명장' 20명 등 모두 29명이다.

이천시에는 '이천시 명장' 20명을 포함해 도공 328명이 있다. 이 중 230명(70%)이 연 매출 5000만원 이하다.

이천시에 자본금 5억원 이상의 대규모 공방은 9곳 밖에 없다.

또 40대 이하의 젊은 도공은 46명(14%)에 불과하며, 전통도예기법을 전수받는 이들도 현저히 적다.

도공들은 전통도자기 문화를 지키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임항택 대한민국 도자기 명장은 "전통 도자기 작품 수요 급감 등으로 도공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가장 근본적인 해결 방안은 정부나 지자체가 나서 전시회 등을 열어 시장 판로를 개척하고, 한국 도자기 우수성을 널리 알려 사람들의 관심이 지속되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는 이 같은 어려움에 처한 도공들을 위해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시 관계자는 "올해 도자기 명장 백서, 해외시장 판로 개척 등 10가지 이상의 신규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며 "도공들을 도와 전통문화 발전, 계승에 더 힘쓰겠다"고 밝혔다.

/이경훈 기자 littli18@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