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아담한 공간 … 큰 세상을 함께 꿈꾸라
▲ 안산다문화작은도서관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인 '그림으로 이해하는 나와 우리: 그림책과 타로카드'에 참여한 도서관 회원들이 교육을 마치고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제공=안산다문화작은도서관
▲ 안산다문화작은도서관 외부.

'작은 도서관 안에서 넓은 세상을 꿈꾸다'
도서관의 진화는 결코 끝나지 않았다. 그동안 활발하게 진행된 '찾아가는 서비스'가 이제는 공간을 활용해 주민을 불러 모으는 '지역 커뮤니티 공간 서비스'로 발전되고 있다. 주민들이 참여하고 소통하면서 지역문화의 활성화를 일으키고 있는 도서관들. 제각각 다양한 색깔을 빛내는 도서관들이 주민들의 마음까지 밝게 물들이고 있다.

▲'그림으로 이해하는 나와 우리: 그림책과 타로카드'

"타로카드를 배우면서 재미는 물론 생각의 폭이 넓어졌고, 자아성찰을 하는 시간이 된 것 같아요."
지난 20일 안산다문화작은도서관이 진행한 '그림으로 이해하는 나와 우리: 그림책과 타로카드' 프로그램에는 우즈베키스탄, 중국, 태국, 한국 등 다양한 국가의 국적을 가진 14명의 다문화가족들이 참석했다.
3시간씩 5회 과정으로 구성된 프로그램의 마지막 날인 이날 지해연 그림책 강사의 진행으로 다문화가족들의 동화구연과 타로카드를 통한 소통의 시간이 펼쳐졌다.

"선생님 제가 만든 건 공룡이에요." "지우가 만든 게 공룡이었구나. 놀려서 미안해."
한 다문화가족 여성이 작은 도서관에서 골라온 그림책을 능숙한 한국어로 익살스럽게 읽어나갔다.
다른 다문화가족 참여자들이 귀를 쫑긋 세우고 이야기에 한껏 빠져 들어갔다.
이들이 한국인과 다른 다문화가족이기 때문이었을까. '다른 사람의 마음을 공감했으면 좋겠다'는 감상평을 내놓았다.

이어진 타로카드 수업은 14명의 다문화가족들이 78장의 카드 중 각자 뽑은 좋은 카드 1장과 나쁜 카드 1장을 들고 자신의 느낌을 설명하는 시간이었다.

태양으로 물든 황금빛 풍경을 보고 따뜻함과 편안함을 느꼈고, 밧줄에 묶여 있는 사람의 모습에는 답답함과 불안감을 드러냈다.

그림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다문화가족들은 이미 서로 하나의 가족처럼 소통하고 있었다.

2008년 중국에서 온 인춘매(42·여)씨는 "안산다문화작은도서관은 아이들 책 때문에 찾아오게 됐다가 중국 원서를 찾으면서 계속 방문하게 됐다"면서 "도서관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돼 개인적 친분도 쌓는 소중한 장소가 됐다. 이후 주변 친구들에게 하나씩 추천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다문화가족을 한 가족으로 … '안산다문화작은도서관'

그림책과 타로카드 프로그램 외에도 이곳 안산다문화작은도서관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다양하다.

그동안 도서관은 55종의 문화행사를 356회 열어 총 9666명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노인대상 문화행사 12회, 성인대상 155회, 청소년대상 36회, 어린이대상 57회, 전계층대상 96회에 달한다.

재활용을 권장하고 지구의 환경을 생각하는 재활용 나눔장터인 '지구별 열린 장터', 이주민과 선주민이 함께 모여 그 달에 읽은 책을 추천하고 프로그램 참여 소감을 공유하는 '지구인 금요 책반상회',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독서자조모임인 '날개달린 도서관', 동화구연동아리 '반짝반짝 여우별' 독서 교육, '책놀깜놀 러시아어린이 여름독서교실' 등 참여대상별 다양한 활동내용을 자랑하고 있다.

이 같은 다채로운 운영으로 안산다문화작은도서관과 정은주 부관장이 지난해 12월 '마을공동체 작은도서관 유공 표창'(경기도지사상)을 각각 받기도 했다.

물론 장서 역시 23개국의 원서 1만1425권(총 1만4973권)을 보유하고 있을 만큼 전국에서 다문화 장서가 가장 풍부하다.

2008년 10월17일 단 7000권의 책으로 문을 연 안산다문화 작은도서관은 이제 두 배 이상의 책을 보유한 것은 물론 지난해 신규 회원 121명이 늘어 현재 2690명이 방문하고 있다.

지난해 1일 평균 이용자수는 88명, 1일 평균 대출자수는 13명, 1일 평균 대출권수는 54권으로 꾸준한 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2012년 한국으로 건너온 허율리아(27·여)씨는 "2014년에 조카들 책을 읽어주기 위해 작은도서관을 처음 찾았는데 동화구연 동아리에 들어가 책 읽는 법을 배운 뒤 아이들에게 읽어주니 정말 좋아하더라"라며 "작은도서관에서 더욱 다양한 교육을 좀 더 자세하게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주민들이 일구는 마을 중심의 '작은 도서관'

"큰 도서관을 가면 들어가기조차 불편하지만 작은도서관은 편하고 따뜻하더라고요."

"제가 보고 유익했던 원서를 주변 지인들에게도 직접 추천해주고 있습니다."

이제 도서관은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운영주체로 이끌어가는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경기도는 올해 작은도서관 사업으로 10억여원(국비·도비·시군비)을 투입해 17개소를 늘릴 방침이다.

특히 마을공동체 작은도서관 지원으로 도내 작은도서관 50개소 이상을 활성화하고, 협력 멘토링 사업을 통해 80개소(멘토 20, 멘티60)를 지원한다.

특히 협력 멘토링 사업은 우수 멘토 작은도서관이 성장을 희망하는 멘티 작은도서관에 독서문화프로그램 및 도서관 운영 노하우를 전수 및 공유하는 것으로 6억원이 투입된다.

지난해 이 프로그램에 41개소의 작은도서관이 참여했다.

이외에도 도는 '찾아가는 지역작가 지원', '독서문화프로그램 지원', '독서전문가 양성 교육' 등 다양한 작은도서관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다.

안산다문화작은도서관 역시 경기도에 제안해 운영비 지원을 받은 '지구인 마을 콩 도서관' 사업을 통해 큰 효과를 봤다.

안산다문화작은도서관에서 지정한 세계명예사서들과 회원들이 추천하는 책을 안산 다문화거리의 식당 곳곳에 배치해 손님들이 책을 읽고, 감상평을 남기고, 도서관까지 찾아오는 결과로 이어졌다.

차종회 경기도 도서관정책과장은 "최근 도서관들이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다. 지역에 좋은 영향력을 주는 작은도서관들이 좋은 프로그램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직접 참여해 건강하게 활동하고 있다"면서 "경기도는 작은도서관을 지역 커뮤니티 공간으로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앞으로 꾸준히 지원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현호 기자 vadasz@incheonilbo.com



"다문화가족 독서로 인생의 주인공 만들어주고 싶어"

정은주 안산다문화작은도서관 부관장


"농촌에서 힘든 노동을 하는 이주민 노동자들이 독서 프로그램을 통해 인간적인 대우를 처음 받았다고 한다."
정은주 안산다문화작은도서관 부관장은 "다문화가족 쉼터에서 만난 캄보디아 남성들이 그동안 인격적으로 힘들게 일을 했는데, 책만 읽으면 인간으로 대접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하더라"라며 "나도 일을 하면서 힘들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그 한마디에 큰 힘이 됐다"고 밝혔다.

이같은 경험은 정은주 부관장이 명함에 새긴 '책만 읽으면 이렇게 인간으로 존중받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어요'라는 문구에서 잘 드러나 있었다.

정은주 부관장은 "다문화가족들이 독서를 통해 인생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더욱 많은 이들이 참여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해 보였다.

특히 이곳 안산다문화작은도서관은 다문화가족들이 단순히 책만 빌리는 개념이 아닌 스스로 프로그램을 제안하고, 책을 다른 회원들에게 소개하는 등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인격적인 도서관의 모습을 지향하고 있다.
정은주 부관장은 "3년전부터 다문화가족 회원들 중 '세계명예사서'를 선정해 이들이 고른 책을 구비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이용률을 보니 배가 늘었을 정도로 효과가 있었다"며 "회원들이 직접 책을 추천하는 만큼 고심해서 선정하고, 독서의 멘토가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작은도서관을 운영하면서 혼자서 어떻게 하냐고 주변에서 묻지만 생각보다 힘들지 않다"면서 "장소를 만들어주는 플랫폼 역할만 하고 있고, 다문화가족 누구나 와서 자신들이 꾸며나가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도서관 회원들이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은 아니었다.

이주민들인 만큼 다른 사람들 앞에 잘 나서지 못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도서관에서 얼굴을 비치다 보니 어느새 서로 의지하고 격려하는 관계가 됐고, 나아가 함께 도서관을 이끌어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한 번은 4명의 회원이 다른 회원들을 상대로 연습해온 구연동화를 지역의 한 초등학교에 가서 훌륭하게 해낸 것은 물론 자신들이 받은 수당의 절반을 도서관에 기증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또 올해는 다문화가족 회원들이 제안한 수화 교육 프로그램을 개설해 언어장애인들과 소통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인터뷰를 마치며 정은주 부관장은 "사서들이 작은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다는 자체가 지역 사회 안에서 많은 에너지 쏟는 것"이라며 "작은도서관은 지역과 떨어질 수 없고 지역공동체와 협업해야 한다. 이용자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가지면 저절로 해야 할 일들이 생기고, 이용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만 해도 유익한 프로그램이 나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최현호 기자 vadasz@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