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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사라짐, 또 다른 희망  

김학균 인천예총 사무처장·시인

2018년 02월 23일 00:05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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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동창인 K는 절친이다. 극진한 효자로 이름이 나 있는 그는 70살을 넘긴 나이도 잊은 채 3년째 고생하며 아버지를 돌보고 있다. 암으로 신장 제거 수술을 한 그의 아버지는 암과 방사선 치료를 거듭했지만 별반 차도가 없어 지금은 호스피스 병동에 계신다. 질병을 낳게 하는 것보다 통증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마약성 진통제를 놓으며 임종을 기다리는 곳이 호스피스 병동이 아닌가 한다.

가벼운 내 의학상식으로 볼 때 통증을 가라앉히는 모르핀의 용량은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섬망증(치매환자와 유사한 증상으로 사람을 인지하지 못하는 현상)과 인지장애가 심해진다. 그리하여 친구의 아버지와 같은 경우가 자신은 물론 가족조차 모르며 집 밖을 나가면 집을 찾아 올 줄 모르는 현상이 늘 반복된다. 어쩌다 가족을 알아볼 때는 고통을 호소하며 불치의 원인을 들이대고는 이제 그만 눈을 감게 해달라는 애절한 말을 되풀이한다.

우리는 생명은 둘도 없이 소중하며 존엄하다고 배워 왔다. 삶은 긍정의식 속에 있으며, 죽음은 그 반대편 부정적 인식으로 생각해 왔다. 병원이 주제인 TV 드라마나 영화가 인기를 얻고 시청률을 높이는 예는 죽어가는 환자를 다시 되살려 놓는 의사들의 긴박하고도 정의로워 보이는 연기 때문이 아닌가. 첨단 의료장비를 동원하며 죽음의 시간을 연장해 가는 장면. 하나 그 연장된 삶이 평상시 삶에 비해 희망이 없다면 환자는 존엄한 죽음을 택하는 권리, 즉 존엄사나 안락사를 생각할 터이다.
작년 8월부터 일명 '웰다잉(Well-dying) 법'이 시행되었다. 존엄사를 엄격하게 심의한 뒤 적용할 수 있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은 외국에 비해 매우 소극적 조치이긴 해도 다행인 듯하다.
"선생님 이제 그만…"
"희망을 가지세요. 환자를 꼭 살릴 거예요"
"이제 희망이 없어요. 제 몸 제가 더 잘 알아요"
"의사는 저니까. 제게 맡기세요. 꼭 살립니다. 마음을 굳게 가지세요"
자고 일어나면 '언제 이 건물이 없어졌지'라는 혼자말을 하게 된다. 노후·불량 건축물이 밀집된 지역에 대해 물리적·문화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사업을 우리는 재개발·재건축 사업이라고 한다. 노후 주택을 철거한 후 아파트를 건설하는 형태의 진행, 경제성 논리가 우선되며 벌어지는 주민과의 갈등, 사업지연에 의한 공동화와 지역 공동체가 와해되는 원주민 재정착률의 하향 곡선 등 도시재생의 '뉴딜정책'이 무색하다.
죽어가는 마을은 환자다. 새로운 것으로 대체하느니 각종 치료방법을 동원하여 되살려 내는 정의로운 드라마의 주인공 의사이면 어떨까 싶다. 관이 개입하지 말고 지역 주민이 원하는 전제조건을 놓고 소통과 공론화를 거친 재생 방향과 청사진을 제시하는 도시재생의 결정은 환자의 의중을 적극 반영해야 한다. 하지만 도시재생 자체를 원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웰다잉(Well-dying)할 수 있는 방안을 차선책으로 둘 필요가 있다.
사라지는 것을 부정적으로만 볼 게 아니라, 사라지는 것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면 아름답고 의미 있게 사라지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마을 구성요소 중에서 물리적 기억(장소, 건축물)을 이용해 기억소 등을 조성, 각종 행사를 통해 상실감에 대한 치유과정도 고려해 봄 직하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오늘이 지나면 내일을 기약하며 기다리는 사람들은 어쩌면 사랑이 우러나오는 곳임을 알 수도 있다. 그곳에는 매일 슬픔에 포장된 고통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 사는 냄새가 더 충만한 곳이다. 재건축 터로 얼굴을 내미는 해가 다른 날보다 더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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