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수 광명 문화재단 대표이사
지난 해 설날에는 필자와 잘 아는 단체가 미국으로 연주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미국 서부의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를 연결하는 약 10일간 일정으로, 이런 여행은 대개 연주회와 교류행사 그리고 문화 기행으로 구성됩니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75명의 학생이고, 12명의 자원봉사자들은 대부분 직장인이어서 설 연휴를 이용하여 연주 여행을 떠나게 된 것입니다. 이 단체는 바로 김포 청소년 오케스트라입니다.

여행을 하기 몇 달 전 필자는 이들의 연주 여행에 대해 자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필자는 유명한 건축가가 지은 독특한 외관의 음악홀 외에 의미가 있는 장소로 '월트디즈니 콘서트홀'을 떠올렸습니다. 이왕이면 학생들에게 미국 사람들의 사회공헌과 기부문화도 소개해 주고 싶었습니다. 이곳은 건립할 당시 월트디즈니사에서 많은 금액을 기부하여 지어진 사연을 갖고 있습니다. 수많은 기부자들이 다양한 명목으로 기부하여 홀 곳곳에는 이들의 이름을 알리는 판석과 안내판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여행을 다녀 온 후에야 필자가 제안한 내용이 문화기행 일정에 반영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뜻밖에 세계적인 지휘자 두다멜의 지휘로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회를 단체로 관람했다는 말씀도 들었습니다. 보통의 연주 여행은 계획된 연주회를 하기도 빠듯한데다 문화기행은 다소 형식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 연주회를 보고 상다수 학생들이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한 학생의 일기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연주가 시작되는 순간 저는 숨이 차올라서 어떻게 숨을 쉴 수가 없었어요. 그 소리가 너무 아름다웠는데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단장님이 전해주는 그날의 이야기를 들으며 필자 또한 마음이 뭉클해졌습니다.

멋진 장소에서 훌륭한 연주를 듣는 기회가 일생에 자주 오지는 않습니다. 이 분야에 종사하는 필자도 몇 손가락에 꼽을 만큼 많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세계적인 오케스트라 연주를 보고 진한 감동을 느끼는 일이 생각보다는 드문 편입니다. 잘된 연주란 것이 한두 번의 경험으로 알아채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깊은 감동을 준 요인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김포 청소년 오케스트라의 역사를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설립된 지 20년이 넘는데, 현재 500여 명의 단원들이 수준별로 체계적인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이 분야 종사자들에게는 이미 널리 알려진 오케스트라입니다. 부러운 점은 고촌아트홀이라는 전용홀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 홀은 원래 교회의 성전입니다. 평소 예배당으로 사용하고, 연주회가 열릴 때 공연장으로 사용합니다. 오케스트라가 설립될 초기 이들이 교육받고 활동하는 공간은 보잘것 없는 시설이어서 중요한 행사는 이웃 도시의 연주홀을 대관하여 연주회를 개최했다고 합니다. 교육 환경을 개선하려는 이들의 노력은 전용홀을 갖는 데 이르렀습니다. 하나의 건축물을 복합 용도로 짓는다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여러 사람의 의견을 모으는 것도 그렇지만 건축비용도 만만치 않아 고민을 하게 되는 일입니다. 지역 종교단체에서 이 일을 해낸 것은 박수를 받을 만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케스트라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담임목사가 쏟아부은 정성도 한몫을 하였습니다. 지금도 연주 여행을 가면 학생들이 작성한 개별일기에 일일이 코멘트를 달아주는데, 이 일을 모두 마치고 나면 보통 새벽시간에야 잠자리에 든다고 합니다. 이렇게 누군가가 모여 열과 성을 다하는 가운데 예술교육은 결실을 거둡니다.
필자는 문화 분야 종사자들과 문화기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들의 연주 여행에 관해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특히 엘시스테마라는 오케스트라 교육을 이야기할 때, 문화 공간의 건립을 논의할 때, 그리고 우리의 미래를 이끌어 갈 청소년들을 위한 사업을 이야기 할 때마다 김포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화제로 삼습니다.
전국적으로 수백 개 청소년 오케스트라가 정부지원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 역사도 거의 10년이 되어가지만, 문제는 이들 청소년 오케스트라가 정부지원이 사라지는 순간 대부분 운영을 축소 또는 중단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문화 공간의 건립을 진정으로 바라고 기대하는 지지층이 형성되지 않은 가운데 건립되는 공간, 특히 공연장 중에서 상당수는 과다한 홍보비를 허비하지만 정상적인 운영에는 결국 도달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김포 청소년 오케스트라와 고촌아트홀은 그 해결 방안을 실천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이 누린 만큼 사회공헌과 기부문화까지 전파하는 아름다운 이들로 한걸음 더 내딛는 모습도 살짝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