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색, 타고난 끼 … 누가 뭐래도 'A급' 감독
영화 찍고 싶어 교단서 내려와
'숫호구·시발, 놈' 발칙한 제목
'C급 무비'로 업계 발칵뒤집어
즐겁게 조금씩 영역 넓혀갈 것

▲ 지난 13일 인천영상위원회에서 만난 백승기 감독은 장난기 많고 오버스러운 손짓으로 '악동'같은 모습을 보였지만 영화에 대한 신념만은 누구보다 강했다. /송유진 기자 uzin@incheonilbo.com



"계란으로 왜 꼭 바위를 쳐야 하죠? 잘 키우면 닭이 될 텐데. '백승기'라는 계란도 지금은 'C급 무비' 찍으면서 재밌게 살고 있잖아요. 세상이 정해놓은 '감독'이라는 기준에 맞출 필요 없이, 나만의 색깔로 진심을 전하면 관객들에게 통하더라고요."

'중2병'에 걸려 재능과 끼를 맘껏 뽐내고 다녔던 악동. 카메라를 잡는 법도, 시나리오 쓰는 방법도 배운 적 없는 이 악동은 자신만의 색깔을 담은 C급 영화로 영화계에 발을 내딛는다. '숫호구', '시발, 놈: 인류의 시작' 등 발칙한 제목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백승기(36) 감독이 1년 반만에 세상 어디에도 없는 백승기표 영화를 들고 나타났다.

인천 동구 일대에서 자라 만석초, 화도진중에 다닌 백 감독은 연필과 마이크 둘 다 쥔 다재다능한 학생이었다. 늘 분위기를 휘어잡는 오락부장은 그의 몫. 끼와 재능이 넘치다 못해 흐르던 그는 배우와 댄스가수, 화가, 개그맨, 선생님 등을 꿈 꿨다. 그는 "여자애들에게 잘 보이려 머리도 기르고 화장도 하며 심각한 중2병에 빠졌다"라며 "H.O.T와 젝스키스 형님들 덕분에 동인천 양키시장에서 '짝퉁'을 사 입고 월미도에 춤추러 다녔었다"고 회상했다.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에 장남이던 그는 마음껏 날개를 펼 수 없었다. 마침 인천예고가 설립돼 미술과에 진학했지만 부모님은 배고픈 예술보다 안정적인 교직을 권했다. 줄다리기 끝에 인하대 미술교육과에 진학했고 누구보다 치열하게 공부했지만 그의 미래를 담기에 캔버스는 너무나도 비좁았다.

'사진 같다'는 호평에도 공허함이 그를 짓눌렀다. 임용고시 학원도 다녀봤지만 '시험에 붙으면 어떡하지'라는 아이러니한 두려움에 매일 고민의 연속이었다.

"'역도산' 덕분에 울면서 영화에 대한 꿈을 키웠어요. 그리고 처음으로 영화란 걸 찍어봤죠."

연극부 출신으로 배우의 꿈도 한 조각 있던 그는 2004년 영화 '역도산'에 단역으로 나선다. 흠모하던 후배를 데리고 당차게 극장을 찾았지만, 한껏 올라갔던 어깨는 금세 움츠러들었다.

"분명 제 앞에서 오랫동안 촬영한 것 같았는데 저도 절 못 찾겠더라고요. 사랑도 떠나고 제 꿈도 떠나는 순간이었어요."

그랬던 그가 그해 겨울 지금의 '감독 백승기'를 있게 한 청평여행에 나선다. 우연히 잡은 200만 화소 디지털카메라의 렌즈가 향하는 곳이 곧 스크린이었고, 눈에 담긴 모든 것이 배우이자 소품이었다. 백 감독은 "친구들과 의기투합해서 '청평연가'라는 단편 영화를 찍어 봤다"라며 "서툴게 촬영해 밤새 윈도우 무비메이커로 말도 안 되는 편집을 마치고 나니 해가 떠오르는데, 그 순간이 아직도 아른거린다"고 말했다.

"스티브 잡스가 허름한 창고에서 시작해 애플 컴퓨터를 만들어 냈듯, 우리 동네에서 영화도 찍고 만들자며 차렸죠, 영화사."


▲ 연기와 연출 두 마리 토끼를 잡고픈 백승기(가운데) 감독은 늘 열정적이다. 지난해 5월 '오늘도 평화로운' 촬영 중 백 감독이 몸소 시범을 보이며 배우들의 연기 혼을 일깨우고 있다. /사진=백승기 감독 제공


친구 둘과 함께 동인천 삼치골목에 '꾸러기 스튜디오'라는 영화사를 차린 그는 C급 영화를 내세우며 그들만이 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냈다. 팀 버튼 감독의 '가위손'을 패러디한 '망치손', 론 하워드 감독의 '다빈치 코드'를 '달마도 코드'로, 경인선 1호선을 배경으로 한 '은하전철 999' 등 유명 작을 그들만의 스타일로 각색해 점점 유명세를 탔다.

각종 인터넷 포털은 물론 KBS 뉴스, SBS 다큐멘터리에도 출연하며 '백승기' 이름 세 글자를 각인시켰다. 그런 것도 잠시 지금처럼 영상 시장이 잘 잡혀있지 않은데다가 경영난으로 전성기는 금방 막을 내리게 됐다.

돌아 돌아 결국 인천 만월중을 시작으로 청학중, 간석여중, 인천예고, 남인천여중 등을 거치며 약 5년 간 학생들 앞에 서지만, 뼛속까지 감독이던 그에게 학교는 세트장, 학생들은 팔색조 배우들이었다. 학생들과 비밀리로 동아리를 만들어 수십 편의 영상을 찍으며 잊지 못할 추억을 나눠가지며 즐거운 날을 보냈다. "선생님, 진짜 감독은 언제 돼요?"라는 한 학생의 질문이 있기 전까지는.

"애들이 말하는 감독은 극장에서 개봉하는 영화를 찍는 사람이었던 거죠. 스크린에 대한 로망이 있었기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극장에 걸리는 영화 한 편 만들어보자며 교문을 나섰어요."

그렇게 탄생한 영화가 서른 살이 되도록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못해본 욕구불만 청년, 어쩌면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숫호구'다. 500만원이라는 초저예산으로 제작해 전국 14개 상영관에서 2000여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영화계를 발칵 뒤집었다. 제1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이하 부천영화제)에서 후지필름 이터나상 수상, 제27회 마르델플라타 국제영화제에 초청되는 등 기적이 이어졌다.

'인류가 언제 어떻게 시작됐을까'라는 무거운 질문을 황당무계하게 풀어나간 차기작 '시발, 놈: 인류의 시작' 역시 제19회 부천영화제에 초청되며 백승기만의 C급 무비는 초록불이 켜졌다.

"부모님이 '넌 언제 저런 영화제 나가냐'며 부러워 하셨는데, 영화제에 '감독 백승기'라고 적힌 좌석을 보니 정말 뭉클하더라고요."

하지만 두 번째 작품의 스코어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데다가 철학색이 짙어 어려운 영화가 돼 버린 탓에 좌절감에 빠진 그를 더 곤두박질치게 만드는 일이 생긴다. 당신의 이야기를 쏟아내는 내내 장난기 가득한 말투와 큰 제스쳐에서 뿜어져 나오는 타고난 긍정 에너지를 순식간에 삼켜버릴 만큼 '중고거래 사기'는 그에게 충격이었다.

'전화위복 해야겠다'는 다짐을 한 백 감독은 페이스북에 '만들고픈 영화가 있다. 제작비가 없는 대신 하고 싶은 것 다 하게 해주겠다'는 글을 올렸고, 그렇게 배우와 스텝진 60여명이 꾸려졌다. 그들과 함께 지난해 5월부터 지난달까지 사기당한 아픔을 그린 영화 '오늘도 평화로운'을 제작했다.


▲ 지난해 5월 백승기(왼쪽) 감독이 영화 '오늘도 평화로운'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백승기 감독 제공

그는 "감독이라는 직업은 안 좋은 일을 당해도 나중에 좋은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좋은 경험이었다고 웃어넘길 수 있어서 정말 좋다"라며 "올 여름 개봉을 목표로 하는 이번 작품은 지금까지의 C급 무비가 아닌 모두 다 함께한 새로운 'C급(Community)' 무비로 봐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실 독립영화는 돈을 쓰는 일이지, 버는 일은 아니잖아요. 하지만 저도 그랬듯 누구든지 자신만의 생각을 담은 영화를 만들면서 자칭이 아닌 타칭 감독이 될 수 있어요."

영화를 전문적으로 배우지도, 스크린에서 시작한 것도 아닌 그는 '시작점은 낮았지만 지금은 높은 곳에 올라왔다'고 자평한다. 그러면서 "현재진행형인 감독으로서 앞으로는 '영화 잘 만드는 백승기' 이름표를 얻을 수 있도록 스펙트럼을 넓혀가겠다"고 강조했다.

그의 영화는 겉보기엔 B급, C급인 허접한 영화일 수 있지만 매 작품 모든 장면에 백 감독의 땀과 열정 그리고 그가 전하는 메시지가 담겨있는 A+급 영화임에 틀림없다. 새롭게 돌아온 백승기표 영화, 백승기 특유의 감성과 희로애락이 담긴 '오늘도 평화로운'이 더욱이 기대되는 이유다.

/송유진 기자 uzin@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