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주간
쿠바의 어촌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노인 산티아고는 84일 동안이나 바다에 나갔지만 허탕을 친다. 그리고 85일째 되는 날 먼 바다에 나갔다가 마침내 거대한 물고기(청새치)를 낚는다. 노인은 청새치에 이끌려 바다에서 헤매고, 낚싯줄을 잡은 손에는 심한 통증을 느끼지만 참고 견뎌낸다. 3일간 고투 끝에 잡은 청새치를 끌고 항구에 와서 보니, 피냄새를 맡고 달려든 상어들이 그 물고기를 다 뜯어먹고 머리와 뼈만 남겼다. 돌아온 노인은 해변가 소년 마놀린에게 청새치를 잡은 경험(비법)을 설명한다. 이어 집으로 가서 지친 몸과 마음을 침대에 뉘여 잠을 청한다. 그는 아프리카 해변에서 어슬렁거리는 사자들의 꿈을 꾼다.

1952년 발표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 줄거리다. 바다라는 자연을 무대로 펼치는 이 작품은 자신에게 던져진 고난을 받아들이고 묵묵히 시련을 견디는 강인한 노인의 모습을 그려낸다. 소설 속 노인은 인간 한계를 극복하는 위대함을 강조한다. 용기와 희망의 힘으로 사투를 벌이는 인간의 존엄성을 말한다. 산티아고의 삶은 마치 고해(苦海)와도 같다. 애써 잡은 청새치를 상어에 빼앗기고 빈 손으로 돌아왔지만, 무자비한 힘에 맞서며 최선을 다했기에 결코 헛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사회를 한 번 들여다 보자. 최종 결과만 놓고 판단을 내리기 일쑤이지 않은가. '노인과 바다'에서처럼 결과야 어떻든 물고기를 잡는 일련의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한데도 말이다. 그런 사회는 결국 '인생의 패배자'를 양산하며 결코 온당치 않다고 여겨진다. 자기 일에 온 힘을 쏟았다면, 설령 실패를 했더라도 괜찮은 삶이지 않은가.

각설(却說)하고, 이제 노인에 대한 얘기를 해보자. 老人(노인)은 나이가 들어 늙은 사람을 뜻한다. 어원을 보면 노(老)는 '머리가 길고 허리가 굽은 사람이 지팡이를 짚고 있는 모습'을 그린 상형자다. 노(老)에 대한 항간의 해석을 보면 좀 흥미롭다. 노(老)는 니마 곧 태양, 얼을 뜻한다. 그러므로 노인이란 얼을 품고 허리를 굽힌 이를 말한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에서 알 수 있듯 노(老)에는 이처럼 어떤 사상도 담겼다. 늙어감은 무르익어 알맹이를 채운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세월의 나이테를 쌓아 지혜로운 이들이 노인이다.

그런데 나이는 정말 숫자에 불과할까. 얼마 전 인천시가 설문조사한 결과 노인의 나이는 얄궂게도 70~74세라는 응답이 주류를 이뤘다. 인천지역 만 60세 이상 남녀 1000명에게 '당신이 생각하는 노인의 나이는?'이라는 질문에 가장 많이 선택한 답이다. 10명 중 3명(33.4%)이 이렇게 답을 했다. 33.2%는 75~79세라고 했다. 10명 중 6명이 노인 나이를 70~79세라고 본 셈이다. 80~85세라고 응답한 이들도 25.2%에 달했다. 반면 노인 연령대인 65~69세라고 답한 이는 4.9%에 그쳤다. 사회적 통념과 현실의 차이를 아주 크게 벌린다. 현재 노인 기준은 노령연금을 받는 만 65세 이상으로 통용된다. 그렇다면 구직자들이 생각하는 노인의 나이는 어떨까. 한 취업전문 회사에서 최근 회원 49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절반은 70~74세(48.8%)라고 답했다. 이어 65~69세(29.3%), 75~79세(14.4%), 80세 이상(6.1%), 60~64세(1.4%) 순으로 나타났다.

오래 사는 일은 물론 인생에서 큰 복일 수 있다. 사람마다 길고 건강하게 살다 가기를 바란다. 오죽하면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는 이승이 낫다"라는 속담이 있겠는가. 천명(天命)이야 어쩌지 못하지만, 문제는 은퇴 후 할 일 없는 처지의 노인이 워낙 많다는 점이다. 체력·경험·전문성 등을 갖추고 있는데도 정년이 넘었으니 받아줄 수 없다는 곳이 많다. 정정한 노인들은 일을 하고 싶지만, 사회에선 좀체 이들을 받아주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100세 시대는 재앙'이라는 우스갯 소리를 내기도 한다. 너무 오래 살면 후대에 부담을 안겨줄 수밖에 없다는 까닭에서다. 결국엔 노인 일자리가 최대 관심사다. 노인들의 경험을 살리고 후대에 전수할 수 있는 방안이 절실하다.

'백세시대'를 아무리 부르짖어도, 우리는 언젠가 이승에서의 삶을 마치고 떠나야 한다. 그래서인지 요즘에는 '평화롭게 잘 죽는 것'(Well Dying)도 유행을 타는 듯하다. 그러기 전에 하루하루 성심을 기울이며 살다 보면 저절로 'Well Dying'은 오지 않겠나. 늙음의 언저리에서 서성이지 말고 '젊은 생각' 속에서 앞으로 나아갔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