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종 인하대 일본언어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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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통치하는 절대 권력 시대를 살고 있지도 않은데 국민이 강요를 받는 납세 의무는 옛 시대와 다름 없다. 걸핏하면 재원조달이며 경제활동 과열 등을 들어 증세나 과세범위 확대를 들이댄다. 정부나 국회 의도에 따라 증세와 과세항목이 신설되어 국민들의 납세부담은 가중되고 있는데, 국세업무는 날로 발전하여 국민들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하며 언제라도 손볼 수 있는 태세를 갖추고 있다. 여기에 국민들은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납세는 국민의 당연한 의무이니, 세금이라 하면 정당성을 확보했다고 믿는다. 세금이 국가를 위해 정당하게 사용되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과세되고 있다는 전제 하에서 국민은 납세를 당연한 의무로 받아들이며, 부담하기 힘들어도 부과되면 어떠한 경우라도 납부해야 하는 것을 세금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국가경영에 반드시 필요한 일에만 사용하라고 내는 세금이 비효율적 사용뿐만 아니라 위정자들의 개인금고처럼 사용되는 일련의 사태에 접하는 국민들로서는 과연 세금을 순순히 납부하는 게 옳은 일인지, 현행 조세제도가 적절한 것인지 의문을 갖게 된다.

국가를 위해 바르게 사용되어야 할 세금이 정당하게 쓰이지 않고 있음이 만천하에 드러났는데, 그저 납세를 신성한 의무라고만 볼 국민은 더 이상 없을 것 같다. 납세 의무를 받아들이기에는 과세 항목이나 체계, 나아가 더 중요한 세금사용에 이르기까지 국민이 납득할 수 없는 내용이 너무나 많아, 세금을 걷고 쓰는 국가의 논리가 논리로서만 의미를 가질 뿐 정작 국민들에게는 정당성을 주지 못하고 있다. 국가기관이 마음대로 쓸 수 있고, 부과하면 무조건 받아들여야만 하는 납세제도에 국민이 저항하고 개선하라고 요구할 명분이 충분해 보인다.

정부는 과세제도가 잘못되어 국가경영이 잘 안 되는 것처럼 걸핏하면 과세의 칼을 빼 이리저리 휘두르며 국민들을 압박한다. 국민은 경제활동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국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원하는 만큼 세금을 거둬들여, 국민의 사정에 관계 없는 과세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국민의 어떤 경제 행위도 세금을 피해갈 수는 없는 구조이다.

정녕 국민을 위해 일하는 민주정부를 표방한다면 국민이 납득하는 범위 내에서 과세함이 옳은 일일 텐데, 그저 돈이 움직이는 곳에 무조건적으로 과세를 하여 이익도 없는 경제행위에마저 세 부담을 지게 하는 것이 조세정의의 구현인지 의문이다. 국민의 혈세로 급여를 받는 자들은 혈세를 자기 주머니 돈처럼 쓰느라 여념이 없는데, 국민들에게는 과세의 정당성과 납세 의무만을 강조한다면 이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여러 명분을 내세워 과세를 정당화하지만 실제로는 명분이지 않는 과세가 너무나 많다. 신설할 과세가 있다면 폐지할 과세도 있을 텐데, 신설만 될 뿐 폐지되는 과세는 찾아보기 힘들다. 어떻게든 명분을 만들어 과세만 하려들지 말고 기존 세수 범위 내에서 쓰는 노력을 해야 한다. 세원이 부족하면 혈세만 낭비하는 수많은 정부의 기구를 줄이는 것이 답이다.

부의 양극화든 부의 세습이든 모두 정부가 만들어낸 작품들이다. 부동산시장이나 주식시장, 가상화폐 시장의 이상 현상도 정부정책에 기인한다. 국민들은 모두 정부 정책 속에서 움직인다. 주택에 대해서도 구입에서 등록, 보유, 매매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에 과세를 하는데 정당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아무런 수익도 생기지 않는 재산에 과세를 한다는 것은 억지이다.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함을 원칙으로 하고, 그 외에는 폐지하는 것이 옳다. 정부가 특정지역 특수현상에 매몰되어 땜질식 정책을 남발하면 국민은 기회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다. 보편적이고 항구적인 내용을 담아, 누구에게나 미래설계가 가능한 합리적인 제도를 운용해야 한다.

국민을 지배하는 절대 권력 시대에나 있을 법한 과세제도. 이제는 국민 입장에서 운용되는 제도로 바뀌어야 한다. 세금을 내야 국가가 영위되지만 정부가 국민이 뜻을 거스르고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수행하는 조세제도는 안 된다. 국민들은 누구나 최소한의 세금을 내고 안전한 국가가 경영되기를 기대한다. 그렇다고 국민들이 내야 할 정당한 세금을 거부할 리는 없다. 정부는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세금항목을 다시 설정하고 과세체계도 대폭 개선하여, 국민을 옥죄는 세금이 아니라 국민을 살리는 세금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조세제도를 개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