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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인

<먹는 재미 사는 재미>, <우리 맛 탐험> 같은 저서를 통해서 우리 음식의 가치와 향토 먹거리의 독특함을 전파하기 위해 애쓰셨던 선친(故 汗翁 愼兌範박사)은 자신도 국제적인 식도락가였다. 회갑이 되시던 해 파리에 오셨던 선친은 당시 언론사의 특파원으로 근무하던 필자에게 루브르 박물관이나 에펠탑 관광에 앞서 프랑스의 유명한 셰프의 레스토랑에 가서 음식 맛을 보고 싶다고 하셨다. ▶부자간의 숙의 끝에 선택한 레스토랑은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 앞에 있는 테라이 셰프의 뚜르다르장과 프랑스 제2의 도시 리용에 있는 폴 보퀴즈 셰프의 레스토랑이었다. 오리 요리로 유명한 뚜르다르장과 누벨 퀴진으로 이름을 날리던 폴 보퀴즈 모두 미슐랭 스타 3개의, 가격도 만만치 않은 곳이었으나 프랑스에서 맛집을 찾고 싶다는 선친의 소망을 따르기로 했다. ▶리용 시내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폴 보퀴즈 레스토랑은 당시 버터, 크림, 소스 등이 가미된 무거운 프랑스식 전통요리에서 탈피하여 식재료의 특성을 충분히 살리면서 셰프의 독창적 창조성을 강조하면서 가벼운 요리를 지향하는 누벨퀴진의 대표 주자였다. 프랑스에서 손꼽히는 식도락의 도시로 꼽히는 리용에서 외식업을 하던 집안의 7대손으로 태어난 그가 집안 내력과 전통음식의 대표도시에 반기를 들었던 셈이다. 전통 프랑스 요리를 기대했던 선친이나 젊은 나이에 질보다는 양이 앞섰던 필자 모두 실망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리용에서 1956년 레스토랑을 개업한 폴 보퀴즈는 1965년 미슐랭가이드의 최고등급인 3개의 스타를 받았고 50년 이상 이를 유지해왔다. 1987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국제요리대회를 개최하기 시작했고 그 후 요리학교도 세웠다. 20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요리대회에는 전 세계의 쟁쟁한 셰프들이 기량을 겨룬다. ▶'미식가들의 교황' 또는 '20세기 최고의 요리사'로 불리던 폴 보퀴즈가 세상을 떠났다. 선친과 함께 리용을 찾았을 때 30대 미남 셰프였던 그가 파킨슨병으로 고생하고 있었다니 애잔한 느낌과 함께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투자유치를 위해 세계적인 CEO들을 베르사유 궁전에 초청하여 폴 보퀴즈의 특별요리를 대접하겠다는 행사일 이틀 전에 세상을 하직한 것이다. 마크롱대통령은 "보퀴즈는 프랑스요리를 바꾼 인물로 전국의 주방에서 셰프들이 애도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며 추도했는데 요리사의 서거를 애도하는 국가원수나 이를 크게 보도하는 것 모두가 프랑스다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