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성수 인천시립박물관 학예연구관
"애관이 문을 닫는다." 지난 연말 전해진 애관극장의 매각 소식이 새해 벽두부터 인천 문화판을 달구고 있다. '현재로선 매각계획이 없다'는 극장 측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애관극장에 쏠린 시민사회의 관심은 좀처럼 식을 줄 모르는 형국이다. 매각 소문이 퍼지자 몇몇 시민들은 애관극장 보전을 위한 온라인 서명을 실시했다. 서명이 시작된 지 30분이 채 지나기 전에 350명의 인원이 참여하면서 이를 토대로 애관극장을 사랑하는 시민모임, 속칭 '애사모'가 결성되었다. 이 모임은 며칠 새 두 차례의 성명을 발표했고, 언론은 이 문제를 연일 기사로 다루고 있다.

이렇듯 엄중한 상황에 어울리지는 않지만, 조금은 흥미롭고 엉뚱한 의문이 들었다. 구체적인 정황증거 없이 흘러나온 '~카더라' 식의 소문에 지역 사회가 이처럼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무언가? 그동안 반복되어 온 무분별한 근대유산 철거에 대한 시민 사회의 반응으로 해석된다. 최근 몇 년 새 역사적 가치가 높은 다수의 근대건축물이 손 쓸 겨를 없이 철거되었다. 모든 과정이 비밀리에 추진되었고, 시민들은 철거 직전에야 그 사실을 인지하고 대응에 나서지만 이미 시기를 놓쳐 어찌 해 볼 수 없는 상황이 되풀이되어 온 것이다. 애관극장이 갖는 역사적 가치는 그간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검증되어 왔기에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애관극장 매각을 둘러싼 최근의 현상은 "더 이상 눈뜨고 당할 수 없다. 더 늦기 전에 무언가 대책을 마련하자."는 시민 사회의 입장이 표면에 드러난 것이라 볼 수 있다.

게다가 기왕에 철거된 여타의 근대유산과 달리 애관극장은 인천 사람에게 특별한 공간으로 기억된다. 개봉관과 재개봉관이 구분되어 있던 시절, 애관은 인천의 개봉관 중에서도 가장 좋은 시설에 일류 영화만 틀던 최고의 극장이었다. 초대권 한 장 구하기도 쉽지 않아 어쩌다 애관의 우대권이라도 얻는 날이면 그야말로 '계 탄 날'이었다. 어떤 이에게 이곳은 빡빡했던 학창시절 숨 쉴 틈을 제공했던 공간이었을 테고, 누구에게는 아련한 첫 데이트의 장소로 기억될 것이다. 그 시절의 기억 때문에 비록 낡고 불편하지만, 부러 이곳을 찾아 영화를 보는 이도 적지 않다고 들었다. 수많은 인천 사람의 기억을 공유하는 공간, 추억이 서려있는 장소가 어쩌면 없어질 지도 모른다는 아쉬움. 이것이 애관극장의 매각 소식에 지역 사회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또 다른 이유일 것이다.

극장 측에서 밝힌 대로 애관의 매각설이 뜬소문이기를 바란다. 그렇다 해도 극장의 경영실적이 좋지 않다는 것은 굳이 재무제표를 들춰보지 않아도 누구나 짐작할 수 있기에 이 소문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시 불거지리라 생각한다. 아니 이번에 경험한 시민 사회의 반응 탓에 아무도 모르게 극장을 처분해 버리는, 시민의 입장에선 여느 때처럼 '눈뜨고 당하는' 아픔이 반복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애관의 역사적 가치가 아무리 높다 한들 결국은 사유 재산일 뿐이다. 대의를 위해 적자에 허덕이는 극장을 계속 맡아달라는 요구는 억지일 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우리는 지금까지 이곳에서 애관이라는 이름을 걸고 극장을 운영해 온 극장 측에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 애관에 버금가는 역사를 가지고 있던 이웃 도시 서울의 단성사는 일찌감치 문을 닫았고, 부산극장은 대형 체인에 합병되어 번듯한 멀티플렉스 영화관으로 탈바꿈했다. 대형 자본으로 무장한 멀티플렉스 체인들이 극장가를 독식해 버리는 현실에서 백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허름한 극장이 지금껏 상업 영화를 돌릴 수 있었던 것은 '애관'이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각 소문에서 시작된 최근의 상황에 대한 극장 측의 대응은 아쉽기만 하다. 애관을 지켜내자는 시민들의 활발한 움직임과 달리 극장주의 대응은 너무나 소극적이다. 매각 소문이 떠돌고 이것이 공론화된 지 스무날이 흘렀건만, 극장 측은 매각 계획이 없다는 말 외에는 어떠한 대응도 삼가고 있다. 이유야 어떻든 극장 측은 시민 사회의 움직임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머리를 맞대고 앉아 극장의 영사기를 멈추지 않게 할 방안을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극장 건물과 시설의 재산권은 극장주에게 있을지 모르겠으나, 애관이라는 이름과 그 공간이 갖는 가치는 인천 사람 모두의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