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주 회암사지.
양주 회암사의 건축 시기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고려 말 나옹이 262칸 규모로 중창해 조선 전기 가장 큰 사찰이 됐고, 태조 이성계가 왕위를 물려준 뒤 궁실을 짓고 생활하면서 왕실 사찰로 자리매김했다.

불타 없어지고 현재는 그 터와 일부 흔적만 남아 있는데 500m 위 현재 회암사에는 무학대사탑, 선각왕사비, 쌍사자 석등, 고려시대 맷돌 등 중요 문화재도 많이 있다. 사적 제128호다.

배우지 못한 승려라는 뜻의 무학(無學)대사는 태조 이성계의 스승이다.

무너져가는 기와집에서 석가래 셋을 짊어지고 나온 꿈을 왕이 될 징조라 해몽해 준 것이 인연이 됐다.

무학대사가 조선의 새 도읍을 찾아다닐 때에는 소 끄는 노인의 도움도 받았다.

무학처럼 어리석다고 소를 꾸짖은 노인은 십리를 더 가라고 가르쳐 줬다.

그래서 터 잡은 곳이 지금의 경복궁이요, 십리를 더 갔다하여 왕십리라 한다.

무학대사는 현명했다.

함흥차사인 이성계를 찾아가 태종에 대한 역정을 들어주며 며칠 동안 위로만 하다가 "사랑한 아들은 이미 죽고 방원만 남아 있는데, 애써 이룬 대업을 남에게 주겠느냐"고 설득해 이성계를 환궁시켰다.

또 이성계와는 서로 깊은 신뢰와 애정을 가졌던 것 같다.

돼지 같다는 이성계의 농담에 부처님 같다고 한 뒤 "돼지 눈에는 돼지만,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인재가 없어 일을 실패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대부분 무능, 아집, 편견, 자만, 시기 등으로 눈이 가려 인재를 쓰지 못해 실패한다. 되돌아본다.

"우리 팀은 인재가 부족한가, 리더의 자격이 부족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