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승호 성남오리뜰농악보존회장, 30년 전 우연히 듣고 빠져
제자양성·해외공연 등 성과 … "산업화시대 맞게 변화 꾀할 것"
"농악은 꽹과리 등 타악기 연주를 통해 서로 소통하고 마을공동체를 유지하는 윤활유와 같은 역할을 하는 전통문화 유산입니다."

강승호(49) 성남오리뜰농악보존회장은 15일 인천일보와 인터뷰에서 "오리뜰농악은 경쾌하고 웅장한 가락과 십(十)자진, 대(大)자진과 같은 독특한 진풀이, 상모 벙거지의 꽃을 빨간색으로 장식하고 그 윗부분에 금속·방울장식을 더 한 점 등이 특징"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금부터 30년 전인 1988년 농악과 인연을 맺는다.

"그때 대학 면접시험을 보기 위해 강원도의 한 민박집에서 하루를 묵게 됐다. 그곳에서 민요 카세트 테잎을 우연히 발견해 음악을 듣게 됐는데 마음이 빨려 들어갔다. 그 다음 다룰 줄도 모르는 꽹과리를 무작정 구입해 배우고 농악을 시작했다."

그는 이어 1940대까지 전성기를 누리다 한국전쟁과 분당새도시 개발 등으로 명맥이 끊길 위기에 놓여있던 성남 농악을 찾아 나선다.

"평택농악, 안성농악, 필봉농악, 강릉농악 등 여러 고장에는 고유의 농악이 있다. 그런데 왜 성남에는 전승되는 농악이 없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지역 원로들을 만나 구술 증언을 들어봤지만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2004년쯤 구미동 오리뜰(옛 광주군 낙생면구미리)에 농악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는 곧바로 오리뜰두레농악연구모임을 꾸려 ㈔한국농악보존협회와 성남문화원과 공동으로 오리뜰농악을 복원했다.

오리뜰농악은 이후 역사성과 예술성을 인정받아 문화체육관광부 '전통예술복원 및 재현사업'(2007년) 선정, 전국두레농악경연대회 금상(2011년) 수상 등으로 화려하게 부활하며 옛 명성을 되찾았다. 중국 심양 세계한상대회, 러시아 불고그라드시 창건 기념 페스티벌, 캐나다 빅토리아 축제 등 해외공연도 펼쳤다.

그는 앞서 2002년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건물을 지어 제자들을 가르쳤다. 지하 1층과 1층은 연습실과 숙소를, 2층은 살림집으로 각각 사용됐다. 초·중·고교생 100여명, 일반인 1000여명이 그를 거쳐간 제자들이다.

그러나 그는 사재를 털어 농악을 전수하는 바람에 경제적인 어려움에 직면한다.

"2014년 이 집을 처분해 빚잔치를 하고 피지로 이민가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오기가 생겼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이 보다 더 나빠질 것은 없다'고 생각한 끝에 이민을 포기했다. 농악이 주는 신명, 안하면 하고 싶은 중독성 때문인 것 같다."

오리뜰농악단은 1년에 3차례 정기공연을 한다.

"공연은 단원 45명 안팎이 문화예술발전기금으로 하고 있다. 오리뜰농악은 성남시향토문형문화제(제16호)로 지정됐지만 아직 예산 지원은 받지 못하고 있다. 성남시 문화예술 정책에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는 농악도 시대에 맞게 변해야 살아 남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강 회장은 "농악은 농경사회에서 발전했기 때문에 고도로 산업화된 시대에 한계를 갖는다. 오케스트라, 비보이, 무용 등과 합동 공연, 디지털화 작업 등의 변화를 꾀해야 한다"면서 "상설공연(모란장, 산성공원 놀이마당)과 성남시티투어 프로그램 편입 등을 통해 전통문화콘텐츠로 개발할 계획이다. 전용 전수관 건립, 상시 전수교육프로그램운영, 해외 교류사업도 펴 나겠다"고 말했다.

/성남=이동희 기자 dhl@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