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에서 강화도 가는 길
통진쯤 지나다가 정지신호에 걸려 잠깐 차를 세웠다
오른쪽 차창을 내리자
수레국화가 무더기로 길가 화단에 피어 있다

파란 꽃무더기가
깊고 신령한 계곡에서 만난 아내 같다
이런 우연과 매혹이라니
옆 자리 아내가 환성을 지를 만하다

여름에서 늦가을까지
일산과 강화도를 격주로 오고갔으니
버스나 승용차로 열 번 이상은 지나쳤을 텐데
처음 보는 꽃무더기다

정지신호에 걸려 정지를 당하고서야
잘나가던 친구가 덜컥 병에 걸려 옆을 둘러보는 것처럼
꽃밭을 본 것이다
질주하는 나를 멈추고 창을 열었다가
이런 우연과 매혹을 만난 것이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아주 잘 팔렸던 어느 스님의 책 한 권이
자동차 정지신호 대기 중
단번에 읽힌다


이 시의 내용은 단순하다. 일산에서 강화도까지 격주로 가던 길에서 우연히 마주하게 되는 수레국화의 매혹. 여름에서 늦가을까지 매번 가던 길이지만, 정지 신호에 걸려 차를 멈추고 나서야 보게 된 장면이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에 대한 명상이다.
한 해가 지나고 또 한 해를 맞이했다. 우리는 지난해 삶을 되돌아 보면서 올 한 해는 더욱 열심히 정진하리라 다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무엇을 위해서' 그리고 '왜'에 대한 질문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무엇이든 '빨리' 그 목적을 달성하는 데 대한 조급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도 그런 것이 2017년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직장인 하루 평균 근무 시간 9시간 26분(잡스코리아 통계), OECD 가입국 중 연평균 노동 시간 2위, 노동생산성 23위가 우리 노동자들의 현주소이다. 과도한 업무와 극도의 피로 속에서 내 주변을 둘러볼 시간과 여유를 지니고 살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런 외적 요인들이 우리를 소진시키고 내적인 불안감과 조급함, 그리고 정신적 황폐함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장자(잡편) <어부>에는 이런 우화가 있다. "자신의 그림자와 발자국을 싫어하여 그것을 떨쳐내려고 달리고 또 달리는 사람이 있었다. 발을 들어 올리는 횟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 만큼 발자국도 더욱 많아졌고 달리는 것이 빠르면 빠를수록 그림자 또한 몸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 사람은 스스로 자신의 달리기가 아직 더디다고 생각해서, 쉬지 않고 질주하였다. 마침내는 힘이 다하여 죽고 말았다." 이 우화에서 장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 달릴 것이 아니라 나무 그늘에서 조용히 멈추어서 그림자와 발자국을 쉬게 할 줄 몰랐으니 그 어리석음이 또한 심하구나."라고.
바쁘게 그리고 빠르게 달려온 당신, 어떤 목적지를 향해 쉬지 않고 빠르게 달리는 데에만 집중하지 말고, 무슨 이유로 달리는지, 그 목적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소중한 것들을.

/강동우(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