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봉래 인천대 교수(중어중국학)
수백 년의 춘추전국시대가 끝나갈 무렵 주나라의 각 제후국은 수많은 전란을 통해 흡수·병합되어 이른바 전국칠웅이라 불리던 일곱 나라로 정리된다. 이들 나라 중에서 마침내 천하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나라는 서쪽 변방에 위치했을 뿐만 아니라 '잔혹하고 포악한 나라(虎狼之國)'로 불리며 문화적으로 이웃나라들의 멸시를 받던 진(秦)나라였다. 그러나 진나라는 국가 경영에서 경제와 군사 두 방면에만 극단적으로 역량을 집중하는 '농전술(農戰術)'을 통해 부국강병을 달성하였다. 이에 더해 무자비하지만 효율적인 통치술의 바탕이 되는 법가사상을 십분 활용하여 상대국들을 제압해 나갔다. 그러나 이렇듯 힘으로 천하를 통일한 진나라는 불과 15년만에 허무하게 멸망해 버린다. 진나라의 멸망원인은 복합적이긴 하지만 대체로 만리장성이나 아방궁 등 무리한 토목공사와 지나친 학정이 불러일으킨 반란의 연속 때문이라고 평가된다.

그 학정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분서갱유(焚書坑儒)이다. 분서갱유라는 말을 들으면 엄청난 몰지성이나 반지성 느낌이 들지만 사실 이는 이사(李斯)라는 사상가의 치밀한 계산에서 나온, 일종의 사상 통일을 위한 책략이었다. 책을 덮어놓고 모조리 불태우지는 않았다. 역사적 기록들을 불태우되 진나라의 기록(秦記)은 남겨 놓았다. 제자백가 사상이 담긴 모든 책과 문헌을 나라에 바치도록 하여 불태웠으나 박사관(博士官)이란 곳에 보관했던 의학, 약학, 점치는 방법(占筮), 나무 심는 방법(種樹) 등에 관련된 책은 제외하였다. 의학, 약학, 점서, 종수 등은 지금으로 말하면 '실용학문'이었다. 이로 인해 제자백가의 풍부한 담론들이 자취를 감추고 학문의 균형이 완전히 깨지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두 번째 아이러니를 느낄 수 있다. 군더더기 없이 매우 합리적이고 실용적으로 보이는 방법으로 국가의 역량을 집중시켜 마침내 천하통일을 이룬 진이 전체 제국의 사상 통일을 위해 똑같은 방법을 적용하다가 결국 망해버렸다는 점이다.

어찌 보면 이것은 단기간에 국력을 극대화시키는 데에는 유용할지 모르나 나라를 오랫동안 꾸준히 발전시키는 데에는 적합하지 않은 모델의 증명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진 제국의 실패가 이후 중국의 위정자들로 하여금 패도(覇道)가 아닌 왕도(王道)를 내세우게 했고, 당장의 결과에 급급하지 않고 과정에서의 조화와 균형을 돌아보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인천은 명실상부한 산업도시다. 개항과 더불어 시작된 근대산업의 출발점이었고, 한국전쟁 이후 산업화 과정에서도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런데도 인천은 어떠한 의미에서 극단적인 산업도시이다. 왜냐하면 문화의 불모지라는 오명도 늘 함께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구 300만이 넘고 소도시 규모의 공단을 몇 개씩 갖고 있는 거대도시에서, 이러한 정도의 산업과 문화 불균형은 도시의 지속적인 발전에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터를 잡고 살아오던 땅이라, 강화의 문화재들을 비롯하여 향교나 산성 등 오래 묵은 도시의 흔적을 여전히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한편으로는 다른 도시에서 보기 드문 근현대사의 직접적인 흔적들이 산재해 비록 아직까지 다소 척박해 보일지라도 향후 도시의 세련된 멋을 우려낼 수 있는 재료가 충분하다. 더 중요한 것은 시민들 또한 스스로 인천의 문화적 정체성을 갖고자 하는 욕망이 점점 늘어난다는 점이다.

빵과 장미. 비록 대학에서 인문학을 가르치고 있지만 나 역시 우선은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인천은 이미 빵에만 매달려 살아야 하는 곳은 아니라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 단지 장미를 사는 데 익숙하지 않을 뿐이다. 퇴근길에 장미 한 송이를 사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생존의 선택이 아니라 이제는 삶의 가치와 닿아 있는 선택이 아닐까?

인공지능, 빅 데이터, 사물인터넷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이 이미 우리 사회의 화두로 떠올랐다. 말 그대로 그것은 혁명이고, 이 혁명이 수반하는 커다란 패러다임의 변화 속에서 무엇이 어떻게 바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무엇이 어떻게 바뀌든 이제 '가치'가 기술을 선도해야 한다는 점이다. 인문학적 상상력이 다가오는 미래에 형성될 가치의 중심으로 자리를 잡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인문학적 상상력은 충분한 수준의 문화적 토양 속에서 지속적인 체험을 통해 배양될 것이다. 개항 이후 인천이 근대산업을 이끌었듯이 4차 산업혁명을 맞이하는 이 시점에서도 인천이 그 중심에 설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도시의 균형을 바로 잡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