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에 반해 '올인' … 그녀 이름은 '재즈'
▲ 베이시스트 오재영에게 재즈는 전부이자 그의 인생 그 자체다. 수많은 히트곡을 탄생시킨 작업실에서 오재영씨가 기타를 들고 있다. /송유진 기자 uzin@incheonilbo.com
▲ 2016년 13회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에 참가한 베이시스트 오재영 연주 모습. /사진=오재영씨 제공
▲ '이명건 트리오' 1·2집 앨범.
학창시절 친구따라 간 기타학원
줄 튕기다 '심쿵'해 20년 한우물
피아니스트 이명건과 상 휩쓸어
희노애락 '진심' 담으니 통했죠



"친구 따라 강남 간다더니, 음악에 '음'자도 몰랐던 제가 친구 따라 기타 학원에 간 이후로 평생의 동반자를 만나게 됐어요."

중2 친구의 권유로 음악에 눈을 뜨게 된 오씨. 동인천 한 기타 학원에 쫄래쫄래 따라간 그는 서툰 손으로 기타 줄을 튕기면서 흥미를 느끼게 된다. 당시엔 록, 고등학생이 된 그는 '재즈'에 매료된다.

"기타를 배우며 음악을 듣다보니 점점 더 익숙해지고 저도 모르게 흥얼거리고 있더라고요. 또 친누나가 음악을 좋아해 어깨너머로 듣다보니 '심쿵'하는 거에요."

오씨는 밴드 넥스트(N.E.X.T)와 공일오비(015B) 그리고 그의 손에 베이스를 쥐게 한 서태지와 아이들을 고막과 가슴으로 만나며 음악의 길로 들어선다. 일종의 계기가 있는 남들과는 다르게 그는 이유 없이 음악이 좋았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신문을 봐도 음악이란 단어와 뮤지션들 이름만 봐도 가슴이 설렌다고.

구월중 교문을 마지막으로 나서며 오씨는 실용음악과가 있던 서울의 아현산업정보학교로의 진학을 고민하지만 결국 인문계인 인항고로 방향을 튼다. 그는 "인문계에 가면 아무래도 학업에 시간을 쏟아야 하고, 그러면 음악에 소홀하게 될까봐 거부감이 컸다"며 "'음악 활동에 도움이 되는가'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라서 아니라면 그냥 자버리고 수업을 듣지 않는 등 굉장히 지루하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라고 털어놨다.

학원 선배들과 부평 락캠프와 홍대 근처 쌈지스페이스, 잼머스 등에서 연주를 하던 그는 경희대 포스트모던음악학과에 입학해 자신의 키 만한 콘트라베이스를 만나 재즈와 더욱더 진득한 사랑에 빠진다. 음악에 이미 '올인'하기로 한 그는 2006년 인천 해양경찰청 관현악단에 입대한다. 그는 알았을까, 그곳에서 그의 재즈인생의 물꼬를 터 줄 동료이자 든든한 반쪽을 만날거란걸.

군인 오씨는 하고픈 음악을 원 없이 할 수 있어 매일이 행복했다. 남들이 총을 들 때 그는 콘트라베이스를 안았지만 음악으로서 또 다른 훈련을 하는 것이기에 열심히 즐겼다. 개인 연습은 물론 오케스트라, 소규모 행사 팀, 재즈 팀 연습 등을 통해 음악 스펙트럼을 점차 넓혀갔다. 그러면서 자연히 친해진 게 피아노 파트의 이명건이다.

"명건이는 워낙 매사에 긍정적인 친구라 좋은 에너지를 받은데다가 성격도 정말 잘 맞았어요. 가장 좋았던 건 음악 얘기를 나눌수록 더 가까워지고 영향을 많이 받았죠."

그렇게 뜻이 맞은 둘과 드러머 김건영이 만나 패기와 열정, 실력까지 겸비한 '이명건 트리오'가 탄생했고, 2010년 제1회 맥 재즈 콩쿠르 단체부문 3위, 2011년 오디오가이 레이블 경쟁부분 우승, 2011년 제5회 자라섬 국제 재즈 콩쿠르 심사위원 특별상·베스트솔로이스트상을 거머쥐며 '괴물 같은 신인'으로 성장한다.

그리곤 다음해 앨범 'The best is yet to be'로 국내 재즈계에 본격 신호탄을 쏜다. 에반스, 카페엠, 원스인어블루문, 올댓재즈, 클럽팜 등 홍대 일대 이름 있는 클럽은 모조리 들쑤시고 다니며 존재감을 뽐냈다.

특히 재야에서 활동 중인 다양한 뮤지션들을 조명하는 EBS '스페이스 공감'에 '한국 재즈의 새 얼굴'로 등장하면서 입지를 다졌다.

오씨는 "2012년엔 신인 재즈 뮤지션으로, 2집 '피고지고'를 낸 2016년엔 음반 자체가 반응이 좋아서 2번이나 출연했다"며 "소위 '메이저' 방송사에 나오려면 좋은 배경이나 인맥, 학벌이 필수인 데다가 재즈 장르는 더욱이 힘든데 굉장히 영광스럽고 감사한 기회였다"고 회상했다.

"특히 2집 '피고지고'는 가슴이 저리게 쓴 곡이 많아서 저도 애착이 많이 가요."

2016년 촛불집회와 대통령 탄핵 등 어지러운 사회는 오씨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세월호 참사의 여파가 가시지도 않았던 터라 더욱이 그를 짓눌렀다. '과연 우리가 침묵하고 있는 게 옳은 걸까' 고민이 더해져 그의 손끝은 거들뿐, 눈물과 가슴이 낳은 곡이 바로 '레퀴엠'과 '성난 군중'이다.

"선배들은 사회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음악을 통해 거칠면서도 때로는 유하게 목소리를 냈는데, 지금의 우린 사실 부끄럽죠. 그래서 늘 '자기반성'의 의미를 담게 되더라고요."

20년을 재즈 한 우물만 판 오씨. 무엇이 그를 점점 더 재즈에 빠져들게 한걸까. 20년간 느낀 또 앞으로 느낄 재즈의 매력은 무엇일까. 그는 '진심'이라고 짧고 굵게 답했다.

"'재즈'라는 친구는 많은 얼굴을 가지고 있어요. 연주자에 따라 같은 곡도 다르게 느껴지고 진심이 없으면 신기하게도 관객들이 알아채요. 말로 진심을 전하는 것도 그토록 힘든데 음악으로 전할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축복이잖아요."

놀랍게도 그는 음악이 아닌 다른 길로의 외도조차 시도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진학할 때 부모님과 정말 '역대급'으로 부딪힌 이후엔 제 결정과 행동에 전적으로 응원해주셨다"며 "지금까지도 진담 반 농담 반으로 '평범하게 직장생활을 하는 건 어떻겠냐' 말씀하시지만 10대, 20대 그리고 지금까지 사그라지지 않는 열정과 간절함을 높게 평가하고 결국은 어깨를 두드려 주신 게 큰 힘"이라고 고백했다.

지난해부터 오씨는 본인의 이름을 내건 '오재영 트리오'와 미국의 재즈작곡가이자 베이스 연주자인 찰스 밍거스를 생각하며 그의 음악을 하는 프로젝트 밴드 '점프 밍거스'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점프 밍거스는 오는 5월 열리는 '세종페스티벌x서울뮤직위크' 재즈부문 쇼케이스에 참가할 예정이다.

음악을 성공의 도구가 아닌 목적 그 자체로 본다는 베이시스트 오재영. 악기와 교감하고 무대에 올라 동료 뮤지션들과 호흡을 맞추고, 관객들과 마주보며 넘치는 에너지를 주고받을 때 활력을 얻는다는 그다. 음악은 자유고, 열정이고, 에너지다. 대중에게 인기 있는 가수만 음악을 할 자격이 있는 건 아니다. 그리고 그들이 전부가 아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곳에서 음악을 연주하며 꿈을 키운다. 인천의 베이시스트 오재영이 꼭 그랬다.

/송유진 기자 uzin@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