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향기 불어넣어 예술인 거리 만들고 싶어"
▲ 고진오 작가는 늘 입버릇처럼 인천 중구를 '예술인 거리'로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지난 4일 '고진오화실'에서 만난 작가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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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진오 작가의 작업실이자 새로운 전시공간인 '고진오화실'이 관동2가 10-10번지에 새롭게 문을 열었다.
인천 중구청을 지나 거리를 쭉 걷다보면 예쁜 카페 같은 건물이 하나 서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허름한 일반 주택이었는데 말끔하게 새 단장을 하고는 옷을 갈아입었다.

1층 통유리를 통해 살펴보니 꽤 커다란 그림이 반갑게 손을 흔든다. 더 자세히 건물 안쪽을 들여다보니 익숙한 얼굴이 붓을 잡고 캔버스와 씨름하고 있다. 2014년부터 인천 중구를 미술 작품으로 물들이고 있는 고진오(56) 작가가 지난달 선학동에서 관동으로 작업실을 옮겨 본격 '문화 예술거리 만들기'에 나섰다.
"100살 즈음 된 어르신 건물이에요.

그동안 거쳐 간 수많은 이들의 손때 묻은 기둥도, 수십 번의 망치질을 견뎌낸 못 자국도, 색 바랜 목조 장식도 최대한 보존하려고 애썼죠."

고 작가의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 한 눈에 봐도 그동안 사계절을 몇 번이나 보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다 떠났는지 스쳐 지나갔다. 흙색 벽돌들이 울퉁불퉁 자리 잡고 있고, 바닥도 평평하지 않고, 실내 내부는 '투박함' 그 자체였다. "갤러리지오는 깔끔하고 모던한 공간이라면 이 곳 고진오화실은 클래식하고 앤티크한 콘셉트"라며 "이 공간 자체가 문화이기에 있는 그대로를 지키면서 인테리어 했더니 전 주인이 '이렇게 예쁜 건물이었냐'며 아쉬워하더라"라고 고 작가는 소개했다.

"백화점 쇼윈도를 보면 화려한 옷을 입은 마네킹이 서 있잖아요. 이처럼 통유리 앞 이젤에 작품을 전시해두면 거리를 지나다니는 분들의 눈에 익게 되고 그럼 미술도 자연히 익숙해질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인지 밖에서 봐도 1층은 작품들과 고 작가가 붓을 잡은 모습이 훤히 보인다. 2층은 이젤과 각각의 크기의 캔버스가 앉아있어 그의 제자들이 그림을 배우는 공간, 깎아지를 듯 높은 계단을 올라가면 3층 옥탑방엔 그의 30여 년간의 애정이 담긴 작품 수 백 여점이 보관된 하나의 '미술 백화점'인 셈이다. 그는 "갤러리지오와 개인 화실 간 거리가 멀어 오가며 작가들을 만나는 데 불편함이 있었다"라면서 "가장 큰 이유는 2014년이나 지금이나 늘 마음 속 목표인 중구를 문화예술거리로 만들기 위한 두 번째 발걸음"이라고 말했다.

고 작가는 서울 용산에서 태어나 10대 소년시절 가족들과 함께 인천으로 둥지를 옮겨 인천미술대전에서 특선하며 25세라는 꽤 젊은 나이에 작가로 이름을 올렸다. 전시 갤러리를 열겠다는 목표로 수년간 경기도 일대와 인천 강화 등을 다니다 결국 그와 인연을 맺은 건 '갤러리지오'였다. 중구의 보조금 덕분에 2014년 문을 연 이후로 지금까지 하루도 전시가 끊이지 않아 지역 내 번듯한 갤러리로 성장했다. 고 작가는 "어디를 가도 볼 수 있는 유명한 작품들보단 인천, 또 국내에서 열심히 작업하는 작가들의 숨은 명작들을 소개하고 싶었다"라며 "처음엔 손님들이 인테리어로 그림을 걸어놓은 줄 아시다가 매주 바뀌니 궁금해 하시며 관심을 가져주시더라"라고 말했다.

그의 진심이 통해서일까, 이제는 작가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아져 서로 전시하려 연락이 빗발친다고 한다. "보통 일주일 전시 기간을 잡고, 다양한 분야의 작품들을 골고루 소개하는 편이에요. 1년에 초대전도 5번 정도 하면서 수많은 작가들과 서로 도우며 문화활동을 하고 있죠."

'갤러리지오'라는 문화예술 씨앗이 무럭무럭 자라 전국 작가들에게도 그림을 좋아하는 시민들에게도 그리고 인천 미술계에도 활짝 꽃이 피었다. 그는 "한 번 전시가 있으면 작가들은 최소 인천에 서너번 와서 매력을 느끼고 가시고, 손님들도 '인천을 다시 봤다'고 칭찬하신다"며 "새로 장만한 화실도 지역에 문화 향기를 불어넣는 한 송이의 꽃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인천 중구를 '예술인 거리'로 꾸미는 게 목표고요, 사실 꿈이자 제 빅 피쳐(Big picture)는 '예술인 마을'을 조성하는 겁니다." 고 작가가 야심차게 말했다. 인천 내에서도 송도는 송도 나름대로, 중구는 중구 나름의 문화가 살아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리고 이미 예술인 거리로 한 발짝 씩 나가고 있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관동 부근에 살고 있는 동료 작가들도 꽤 있고 조만간 옮겨와 갤러리카페와 화실을 열겠다는 분들도 많다"며 "이러한 바람이 거세지면 이곳도 분명 인천의 명소가 될 것으로 믿는다"고 강조했다.

곧 추위가 가시고 꽃 피는 춘삼월이 오면 고진오화실도 꽃이 피려나 보다. 차이나타운과 동화마을, 신포동에 놀러오는 관광객과 가족단위 여행객에게 좀 더 미술과 가까워지는 기회를 주기 위해 일일 체험프로그램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또 늘 그래왔듯 미술에 꿈을 품은 학생들을 위해 작업실을 보여주며 멘토로 나설 예정이다.

"계속해서 움직이고 계속해서 도전하며 인천을 문화예술도시로 만들고 싶습니다. 어쩌면 이미 거리가 하나둘씩 채워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올해도 인천에서 그림과 함께 그림 같은 매일을 그려나갈 겁니다."

/글·사진 송유진 기자 uzin@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