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 10월29일 오후 3시 길상면 선두리 후애돈대 앞 갯벌에서 두루미 3마리가 먹이활동을 벌이고 있다.
▲ 강화 생태교육허브 물새알, 강화탐조클럽 회원들이 두루미 먹이인 곡식을 농토 주변에 뿌리고 있다. /사진제공=생태교욱허브 물새알
▲ 길화교 3거리 앞 간척지 주변 농토에서 모이를 먹던 철새들이 일제히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다.
인천의 새는 두루미다. 학(鶴)이라고 불리는 두루미는 무병장수와 부귀영화, 자손번창의 상징이다.인천에는 유독 '학'자가 들어가는 지명이 많다. 문학산, 선학동, 청학동, 학익동, 임학역, 송학동 등이 그 곳이다. 인천의 축구단 마스코트인 유티(UT)도 두루미를 형상화한 캐릭터다. 두루미는 인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새였다.
지금은 청라신도시가 들어선 서구 연희동과 경서동에 집단 월동지가 있었다.하지만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두루미는 이 곳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2017년 세밑에 인천시는 눈길을 끄는 발표를 했다. 인천시의 캐릭터를 '두루미'에서 '점박이 물범'과 '팔미도 등대'로 바꾸겠다는 내용이었다. 인천을 상징하는 새가 이제는 시민들의 기억에서 조차 사라질 처지가 되고 말았다.

몇 년 전부터 강화도에서 두루미를 보살피는 작은 움직임들이 진행되고 있다. 강화지역 뜻있는 시민들이 모여 강화갯벌을 찾는 두루미를 지키려는 운동이다. 강화주민들의 노력이 범 시민운동으로 확대·발전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강화도 두루미 먹이주기 행사

무술년 새해를 나흘 앞둔 2017년 12월 29일 오전.
한겨울 칼바람이 매서운 간척지 논두렁에 시민단체 회원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이들은 포대에 담긴 곡식을 들판 여기저기에 골고루 나눠 뿌렸다.
잠시 후 이들이 멀찌감치 물러가자 주변에서 철새들이 다가와 곡식을 먹기 시작했다.

회원들은 철새들의 먹이활동을 기록하고 카메라에 그 모습을 담아냈다.
새들이 일제히 하늘을 날아오를 땐 말 그대로 장관이 연출된다.

이날 행사는 '생태교육허브 물새알'과 '강화탐조클럽' 회원들이 준비했다.
몇 년 전부터 이 곳을 찾는 두루미에게 먹이를 주는 행사다.

점심식사 뒤 길상면 선두리 후애돈대 앞 갯벌에서 먹이를 잡는 두루미 가족을 발견했다.
새끼를 데리고 온 두루미 암수 한 쌍이었다.
날이 흐려 아쉬움이 남았지만, 특유의 우아한 자태와 비상하는 모습을 감상하기에 충분했다.

● 멸종위기 야생조류 두루미

두루미는 전 세계 2천 마리 남짓 남아있는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의 희귀 새다.
지난 1968년 천연기념물 제202호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140Cm의 큰 키에 흰색 몸통을 갖고 있고, 검은 날개깃과 붉은 머리숱이 특징이다.

10월 하순 시베리아와 중국 동북지방에서 내려와 겨울을 보내고 이듬해 봄에 돌아간다.
개천의 어패류나 미꾸라지, 논밭의 볍씨와 풀씨, 갯벌과 갯고랑의 수서생물을 먹이로 한다.

인천 이외에는 경기도 연천과 강원도 철원 등지에서 집단으로 겨울을 난다.
연천과 철원에서는 두루미 보존활동을 활발히 벌여 주요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 인천과 두루미

1980년까지만 해도 연희동·경서동 일대와 강화도 부근 해안 갯벌에는 100여 마리의 두루미가 매년 월동을 했다.

두루미 도래지로 인정받은 이 곳은 1977년 천연기념물 257호로 지정됐다.
인천시도 4년 뒤, 두루미를 시의 상징 새로 지정했다.

하지만 동아매립지 사업이 진행되면서 주변의 갯벌과 섬이 사라졌다.
이 곳을 찾는 두루미도 줄어들었고, 1984년 마지막 한 마리가 죽은 채 발견됐다.

같은 해 문화재청은 "두루미의 보전가치가 사라졌다"며 천연기념물에서 해제했다.
이곳은 이후 청라국제도시와 세계 최대의 쓰레기매립장으로 변했다.

인간의 탐욕이 서식지를 파괴하고, 두루미를 인천에서 쫓아내고 만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인천의 새는 '두루미'이고, 시 곳곳에는 두루미의 흔적이 남아 있다.
신포동이나 월미문화공원, 숭의동 로터리에는 두루미의 형상이 설치됐다.

● 인천의 역사와 기억에서 사라지는 두루미

인천시는 지난해 12월 18일 시를 대표할 새 캐릭터를 발표했다. 시는 이날 백령도 '점박이 물범'과 '팔미도 등대' 등 2개를 새 캐릭터로 지정했다.

그러면서 22년간 시 캐릭터였던 두루미를 제외했다.

강화시민단체가 두루미 먹이주기 행사를 벌이기 하루 전이었다. 시는 두루미를 제외한 이유에 대해 "인천에서 관찰하기 어렵다"는 점을 들었다.

강화도에 두루미가 월동을 한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대신 몇시간이나 배를 타고 들어가야 볼 수 있는 백령도 '점박이 물범'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청라에서 쫓겨난 두루미가 이제는 시민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 백령도의 지명과 두루미

백령도의 지명 유래를 찾아보면 시의 변명은 더욱 궁색해 진다.
백령도는 흰백(白)에 날개령(翎)을 쓴다.

두루미의 흰 날개를 의미하는 말이다.
옹진군청에서 발행한 '백령 흰나래길'에는 이런 전설이 실려 있다.

옛날 황해도의 한 선비가 고을의 사또 딸을 사랑했다.
그런데 사또가 이를 반대해 자신의 딸을 백령도에 숨겨놓았다.

어느 날 선비의 꿈에 두루미(백학)가 나타나 백령도로 찾아가라고 일러주었다.
두 사람은 백령도에 만나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사람들은 "백학이 그 섬을 알려주었다"고 해서 백령도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이 섬에 사는 물범은 시 캐릭터가 됐는데도, 정작 섬 이름의 주인공인 두루미는 사라진 꼴이 되고 말았다.

● 강원도 철원의 두루미 보호활동

강원도 철원은 오래전부터 '농부들, 두루미와 공생'을 기치로 두루미 보호활동을 벌여왔다.
주민들은 먹이 터를 만들고 전신주에 보호표지를 달았고, 모니터링을 실시해 기록을 남겼다.

지난달에는 한·중·일 삼국이 참여하는 국제심포지엄이 개최했다.
두루미 도서관과 생태교육실, 두루미 학교도 운영했다

그 결과 개체수가 크게 늘어나 이제는 보호를 넘어 세계적인 관광자원이 됐다.
두루미 도래 철이 되면 철원 일대가 두루미 생태교육과 관광으로 들썩인다.

DMZ 철새 두루미 여행' 상품이 팔리기도 하고, 철새탐조에 수천 명의 방문객이 몰려온다.
이를 통해 주민들은 농한기에 관광객을 유치해 식대나 농산물 판매로 소득을 올린다.

● 인천 두루미 보전사업의 과제

청라에서 두루미가 사라진 뒤 한동안 인천시민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그러던 중 2007년 철새모니터링을 하던 두루미네트워크가 강화에서 4마리를 발견했다.

이후 2011년 19마리, 2012년 22마리로 개체수가 조금씩 증가했다.
두루미가 늘어나자 강화주민들은 2015년부터 자발적인 보호활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생태교육허브 물새알'과 '강화탐조클럽' 등이 두루미 먹이주기 사업에 앞장섰다.
2017년에는 문화재청의 지원을 받아 본격적인 모니터링과 교육사업을 펼쳐나갔다.

강화지역 환경단체들은 앞으로 두루미 보호사업을 계속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두루미에 대한 교육사업 확대, 보전운동 캠페인, 두루미 심포지엄 등을 준비하고 있다.

이를 위해 ▲강화두루미의 이동경로 조사 ▲번식지 및 생태 조사 ▲체계적인 모니터링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생태교육허브 물새알 여상경 대표는 행정기관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을 촉구한다.
그는 "두루미가 인천을 상징하는 새로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각급 행정기관이 이에 걸맞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사진 정찬흥 기자 report61@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