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숙 백석대 교수
``김혜숙.jpg
"그는 부모와 17세인 여동생의 생계를 책임지며 출장 영업사원으로 성실하게 살아온 젊은이다. 파산한 작은 회사 사장의 아들로서 채무를 갚기 위해 5년간 일벌레처럼 힘들게 일을 했다. 그런 와중에도 그는 오전 7시에 출발하는 열차를 타고 출근할 것을 고민한다."

카프카의 '변신' 속 얘기다. 현대인의 불안한 자아표상과, 인간의 무가치함을 비유하여 잘 드러낸 소설이다. 가족을 책임지던 아들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한 것은 일상적인 세계로부터의 소외와 무가치를 의미한다. 벌레로 변신하여 사람들과 단절된 모습은 가족과 주변 사람, 사회로부터의 소외를 뜻한다. 카프카의 인간관, 내면세계, 집단공동체에 대한 이미지를 볼 수 있다. 작품에서 보여주는 인간관은 아주 부정적이고 비관적이다. 가족일지라도 철저히 자기 이익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이용한다. 다른 사람의 불행을 딛고 일어서서 자기 행복을 채워주는 현실 세계의 인간을 그리고 있다.

'가족이란 이름의 폭력'이 소설 속 일만은 아닌 듯하다. 오늘날 가족 안에서도 여전히 폭력이 성행한다. 개인의 인격적 특성이나 존재 자체의 고유성은 존중을 받기보다는 부모의 필요에 의해서 "너는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해"라는 강압이 많다. 자식을 위한다는 지나친 애정은 오히려 자식들을 망치게 한다.
'청년벌레'는 가족을 위해 더 이상 쓸모 없는 존재로 작용한다. 이제는 돈을 벌 수도 없고, 가족들의 희망이나 기대를 채워주지 못한다. 그는 이제 가족들에겐 별로 도움을 주지 못하고 부담스러운 존재다. 차라리 없으면 더 좋을 귀찮은 존재다. 마치 부모들이 돈을 벌 때는 최고의 가치를 누리다가 병들고 치매에 걸리면 가족들에게 외면을 당하는 오늘날의 표상과 비슷하다. 공동체였던 가족들에게 외면을 당함은 사회에서도 혼자라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카프카는 이 청년벌레를 통해 인간은 어떤 비극적 상황에서도 홀로 감당해야 하는 씁쓸함과 비참함을 표현하고 싶어 했을지도 모른다. 벌레로서 그레고르의 변신은 철저히 혼자였고,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고, 그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적응을 하지 못한다.
소외의 현실 사회를 단면으로 보여주고 있다. 21세기 그레고르란 청년벌레는 한국 가정에도 '운둔형 외톨이'로 존재한다. 집안에서 나오지 않고 오직 컴퓨터 게임에만 매달리며 혼자서 지내는 청소년이나 청년들이다. 가족과는 말도 못하고 신경질적으로 응대한다. 웃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누구와 눈도 마주치지 못한다.

그레고르는 왜 존엄한 인간이 되기를 포기하고 벌레를 선택했을까? 과연 그는 정서적 홀로서기를 할 수 있는 독립된 인간이었는가? 그레고르는 엄마의 사랑을 서로 독차지하고 싶은 여동생과 애정 다툼에서 밀려난 아들이다.
아버지도 딸의 편을 들면서 자기 존재가치는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가족의 편애는 살인까지 불러일으킨다. 세계적인 문학가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아버지 살해를 모티브로 다룬 범죄소설이다. 표독하고 탐욕스러운 노인 표도르 아버지와 큰아들이 성적인 매력이 넘치는 그루센카 여인을 두고 질투와 증오로 반목한다. 또한 재산상속 문제와 관련해 아들 이반은 아버지 살해를 은밀하게 계획하고 암묵적으로 동의한다.
그레고르는 어머니와 여동생과의 접촉을 시도하다가 결국 오해를 산 아버지의 분노로 불행해지고 만다. 카프카는 홀로 설 수 있는 정서적 능력이 없기에, 더 이상 살아갈 힘과 용기를 얻지 못하고 있었다. 서서히 소파 밑 어두운 공간에서 자기 생명을 끝내간다. 이 가족의 이미지는 사랑과 나눔과 배려와는 거리가 먼, 이기적이고 감정이 메마른 개인적 유익이 우선되는 가족표상이다. 누구에게도 동정하고 위로하는 가족이나 이웃은 찾아 볼 수 없다. 아버지의 잔인한 분노, 엄마의 당황스러운 외면, 누이동생의 급격한 색깔바꿈은 벌레청년 그레고르에게 더 이상 살아갈 힘과 에너지도 의미도 주지 않고 절망만 남겼다.

가족들에게 버림을 받고 무가치하다고 느끼는 한탄에서 자신은 벌레가 되기로 선택한 것이다. 오직 생존을 위해 바쁜 현대인의 면모를 보여준다. 허울만 가족일 뿐 인간애를 상실한 가족이다. 카프카 작품은 한 인간이 변하면 다른 가족 구성원들도 변한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2017년도 한 해가 저물기 전에 가족다운 가족애를 서로 나누어보자.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수고 많았다고, 당신이 내 에너지원이라고 말하는 가족공동체로 거듭나자. 소외된 이웃에게 함께 할 수 있다고 손을 내밀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