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전쟁에서 크게 승리한 이스라엘의 다윗 왕은 보석세공사를 불러들여 기쁠 때는 자만하지 않도록 하고, 실패로 절망에 빠졌을 때는 힘이 되는 글귀가 새겨진 반지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한다. 반지의 장인은 반지에 새길 문구를 떠올릴 수 없어 고심하던 끝에 지혜롭기로 소문난 솔로몬 왕자를 찾아가 물었다. 이에 솔로몬은 "Hoc quoque transbit(이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말해주었다. 다윗 왕은 반지에 새겨진 문구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철모르던 어린 시절엔 세상의 모든 일이 명백했다. 나이를 먹고 세상에 대해 알아가면서 세상은 명쾌한 선악으로 구분되지 않으며 피아식별이 어려운 짙은 안개 같은 회색빛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런 세상에서 올바르게 산다는 것은 단지 선언적인 각오나 눈치 빠른 처세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밝은 곳에서 갑자기 어두운 곳에 들어서면 감각이 무뎌지는 것처럼 세상을 명백한 적과 우군으로 구별하려 들다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당황하기 마련이다. 하늘의 별도, 땅의 이정표도 보이지 않을 때,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전서구(傳書鳩)는 아무리 먼 곳에서도 집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과학자들은 비둘기의 뇌파를 연구한 결과, 지구자기장을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을 확인했다. 그러나 이처럼 놀라운 능력을 지닌 전서구가 항상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전서구의 회귀능력에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전서구를 날려 보낼 때, 그 사랑하는 짝을 집에 가두어 놓는다. 전장의 맹렬한 사격이나 송골매의 습격을 무릅쓰고 비둘기가 먼 길을 날아 집으로 돌아가는 까닭은 그곳에 사랑하는 이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살아가는 길 위에서 미혹의 안개에 갇혀 길을 잃거나 무엇이 옳은지 손쉽게 판단이 서지 않는 순간에 처하게 된다면, 이것 한 가지만 기억하자.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를 믿고 기다리는 존재가 누구인지, 그 대상이 반드시 '사람'이어야 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런 존재를 마음에 품는 것이야말로 평생 먼 길을 가야 하는 우리가 살아가는 힘이다. 작은 성공 앞에서 교만할 것도, 절망 앞에서 낙담할 이유도 없다. 이 또한 지나가리니.

/황해문화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