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추위가 연일 이어졌다. 거리는 길고 따뜻한 옷을 껴입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바야흐로 롱패딩의 계절이다. 올해 겨울이 유독 추운 탓에 롱패딩이 유행하게 됐는지 아니면 때마침 날씨에 적당한 스타일이 유행하게 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추운 겨울에 롱패딩이 유행인 것은 여러모로 다행이지 싶다.
그러나 어디에서나 롱패딩이 환영을 받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일부 학교 측의 입장이 그렇다. 학교에서는 여러 이유를 들어 학생들의 롱패딩 착용을 금지시킨다. 발만 보여서 야하다든가, 학생 간 빈부격차를 심화한다든가 하는 이유로 말이다. 또는 교내에서 착용 시 단정하지 못하다는 이유도 있다.

학교 측에서는 교복 외에 모든 것에 대해 학생 간 빈부격차 심화를 우려하는 것 같다. 이런 식이라면 머리핀, 신발, 겉옷, 가방, 자전거 등도 다 규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규제'는 '빈부 격차'로 인한 갈등 심화를 누그러뜨릴 수도 없으며 그다지 좋은 방안도 아님을, 학교에서 복장규제를 받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

단정하지 않다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단정하자고 얼어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롱패딩은 필요에 의해 입으면 그만이다. 추우면 옷을 입어야 한다, 그뿐이다. 하물며 야해 보인다는 이유는 말할 것도 없다. '롱패딩'이라는 의류의 역할을 잘 모르지 않는 이상 '야해 보인다'는 이유는 그저 롱패딩을 입은 학생을 성적대상화한 것에 불과하다.

자신이 후원하는 아동이 고가 롱패딩을 사달라고 하자 '자신을 물주로 보는 것 같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 일은 일파만파로 번져 '해당 아동이 후원을 받아도 될 만큼의 가난인가'를 논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후원을 '얼마나' 할 수 있느냐가 후원자의 자격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후원을 '받아야 하는 처지'를 입증하고 또 납득시킬 만큼 가난해야만 얼마만큼의 후원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후원은 도움이다. 도움의 관계에서 도움의 행위만이 중요하다. 후원은 교환이 아니다. 돈을 매개로 하는 교환은 더더욱 아니다.

따뜻하게 입어야 할 롱패딩을 두고 이런 수난기라니 마음은 더 서늘해지는 것만 같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