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경제연구소장
스마트폰으로 문자 통신에 불이 난다. "국회의원 ○○○입니다. 제가 이 번 예산국회에서 지역을 위하여 △△△사업을 위한 예산 ×××억원을 확보하였습니다. 앞으로도 더욱 노력하여 지역의 발전에 앞장서겠습니다." 대강 이런 내용들이다. 꼭 내게 보냈다기보다 별 특별한 고려 없이 일괄 발송된 메시지라는 것을 아는 것이 어렵지 않다.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긴 하지만 여전히 좀 당황스럽다. 아직도 우리나라의 예산은 이렇게 국회의원들의 발품에 따라 분배되는 것인가. 쪽지 예산이 마치 요즘 유행어가 되어버린 적폐의 대표사례나 되는 것처럼 욕을 뒤집어 쓴 것이 그리 오래지 않은 엊그제의 일이다. 이제는 쪽지만 넣지 않으면 되고 예산 담당공무원에게 국회의원이 (정성껏) 부탁을 해서 얻어내는 예산은 공로가 된다는 것인가.
우리나라의 국비예산은 기획재정부의 예산편성지침 작성과 통지, 각 부서와 지방자치단체의 국비예산 편성과 기획재정부 제출, 기획재정부 주관의 협의와 조정, 정부예산안 작성과 국회 송부, 국회예결위의 심의·조정, 국회본회의 의결로 이어지는 엄격한 법정 과정을 거쳐 수립된다.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관련부서들은 중앙정부와 의견조율을 위해 일 년 내내 여기에 목을 매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과정을 지켜보자면 종종 가히 전쟁을 방불케 한다.

물론 최후의 한 순간까지, 혼신의 힘을 기울여 한 푼이라도 더 우리 고장의 살림을 보태려고 뛰어다닌 국회의원들의 노고를 평가절하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가는 나라라고 한다면, 그들의 이러한 노력은 예산이 편성되는 모든 과정에서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하여 이루어졌어야 하는 일일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좀 더 긴 시간에, 좀 더 깊은 과학적 판단과 좀 더 넓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고 소위 혈세의 최적 소비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말로 하는 예산 확보 경쟁을 통해 무언가 비정상적이고 바람직하지 않은 사회적 관행들이 성립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우선 그들이 단독으로 확보하였다고 보고하는 예산들은 대개가 지역의 유력 유권자들의 민원과 관련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는 사후적으로 "이 시설은 국회의원 아무개님께서 예산을 확보해 주셔서 지어진 것입니다. 이렇게 애써주신 의원님께서 이 자리에 와 계십니다. 우리 다 같이 박수로 감사의 뜻을 표합시다."라는 따위의 풍경을 자주 마주치게 된다. 마치 자신의 집이라도 팔아 사회에 헌정한 것쯤으로 착각하게 되기도 하려니와, 이쯤 되면 그의 예산확보 노력은 사실상 사전선거운동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국회의원들이 확보하였다는 국비 예산은 대개 전액예산이 아니고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지출과 일정 비율을 분담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어서 사전에 상호 의견 조율이 되어 있는 경우가 아니었다면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지출에 왜곡을 가져오게 되고 어려움을 가중시키게 된다. 하물며 이런 형식의 예산확보 과정에서 그 의원과 예결위 관계자들 또는 중앙부서의 담당 공무원들은 어떠한 일종의 거래를 하게 되었을지…. 선거만 없다면, 그들이 이런 노고를 할 리가 없지 않은가.

하기야 이런 정도의 문제로 우리 정치판의 선거 예속화를 논하는 것은 지나치게 순진한 일이기도 하다. 요즘 쏟아져 나오는 인천시의 자화자찬과 공치사를 듣고 있다 보면 현기증이 난다. 안 풀린 사업이 없고 안 되는 일이 없다. 재정문제도, 경제자유구역의 문제들도…, 꽉 막힌 것 같았던 모든 민원사업들과 바이오와 로봇을 비롯한 신산업과, 심지어 영영 풀릴 것 같지 않던 월미은하레일까지 모두 술술 풀리고 있다는 얘기다. 실로 신기한 일이다.

그러나, 워낙 성정이 옹졸한 탓이기도 하겠거니와, 선뜻 그렇게 맘을 내려놓기가 어려운 것은 그러한 선전전(宣傳戰) 뒤에 선거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을 외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선거가 없었더라도 이렇게 검증되지도 정제되지도 않은 양지쪽의 이야기들만이 천지에 만개할 수 있을까. 이렇게까지 단체장들이 집무실을 지키지 못하고 길 위에 나와 살다시피 해야만 했을까.

민주주의를 하는 한 선거는 숙명이다. 그러나 이 제도는, 사회의 의견이 고르게 분포하고 비이성적으로 패거리를 짓지 않으며 합리와 절제가 발달한 사회이어야 한다는 전제 위에서 그 가치가 극대화한다. 임기 내내 사전 선거운동에 몰입하고, 공적인 자리 하나를 얻어도 플래카드 사전선거운동의 도구로 삼는 사회에서 그의 순기능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오직, 선거의, 선거에 의한, 선거를 위한 사회에서 자라나는 것은 분열의 독버섯이고 상식과 행정은 파괴된다. 그런 기초 위에서 마침내 민주주의는 고사한다. 이것을 막을 촛불이 있는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