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담은 섬 삶 … 시선과 시간이 멈추다
▲ 갱 따는 김춘복 할머니 : 김춘복(71) 할머니가 한월리 해변 갯바위에서 가족들에게 갱(고동의 일종)국을 만들어주기 위해 갱을 따고 있다. /사진제공=류재형 사진작가
▲ 사닥그물로 잡은 물고기. /사진제공=류재형 사진작가
인천시 옹진군 문갑도 마을회관에 주민 50여명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한다. 문갑도 주민들의 생활사를 엿볼 수 있는 '생활 전통 도구 전시회'가 열리는 날이다. 섬 속의 삶이 사진으로, 다큐멘터리 영화로 소개되자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흘러나온다.

자신들의 얼굴과 음성이 나올 때면 멋쩍은 웃음소리도 살짝 터져 나온다. '섬, 잊혀진 시간의 공감展(전)'이 지난 1일 오후 문갑도 마을회관에서 열렸다. 서해 섬의 전통생활도구와 음식을 발굴해 사진과 영상으로 전시하는 행사다. 이 프로젝트는 인천 섬의 전통과 도구를 발굴 조사하기 위해 문갑도에서 처음 진행됐다. 사라져가는 섬 역사를 기록·보존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모아진 덕분이었다. 이를 위해 인천가톨릭대 문화예술교육원 사진영상과에 출강하고 있는 류재형 작가가 수년간 문갑도를 드나들었다. 주민들도 프로젝트팀의 조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류 작가와 프로젝트팀은 앞으로도 인천 섬 전체의 전통 생활사 조사를 지속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 주민들의 생생한 모습 담은 사진전과 영상전

이번 사진전 주요 내용은 문갑도 전통 채취, 조리 도구와 전통 생활사, 전통 고기잡이 방식 재연, 전통 음식 재연 등이다. 다큐멘터리 영상전에서는 문갑도 주민들의 생생한 인터뷰와 전통음식 재연 모습이 담겨져 있다. 영상 안에는 주민들이 직접 전통 도구들을 사용하는 모습이 비춰진다.낙지잡이, 전통음식 갱국 만들기와 시연 모습, 소라 잡이, 바지락 캐는 모습 등을 볼 수가 있다.

행사장에는 이충환 이장 등 마을주민 50여명이 참석했다. 외부 자문위원으로는 백문기 간촌건축 대표, 이성진 인천골목지킴이 이사장, 큐레이터 컴퍼니안 안태정 대표, 국립민속박물관 정연학 학예연구관이 함께 했다. 이윤하 연구원, 도시자원디자인연구소 장회숙 공동대표,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 제작단 문경숙 단장 등도 행사에 동참했다.

사진전 이후에는 겨울 제철 음식인 굴을 활용한 문갑도 겨울 밥상 시식회가 개최됐다. 민박을 운영하는 김진규, 김춘복 부부는 제철 굴 밥상을 내놓았다. 주 메뉴는 신선한 굴무채 무침과 굴전, 돼지고기 수육과 굴 쌈. 문갑도의 굴은 고소하고, 단 맛이 나 인천 최고의 품질을 자랑한다.

● 8년간 진행된 섬 이야기 프로젝트 준비 작업

이번 전시회는 (재)인천문화재단의 후원으로 1년 간 '문갑도 전통도구 발굴프로젝트팀'이 진행한 사업이다.
프로젝트 팀의 총괄은 류재형 작가가 맡았다.

이들은 서해의 섬에서 사라져가는 전통 도구와 전통 음식을 발굴하고 기록했다.

문갑도가 선정된 배경에는 주민들이 사라져가는 자신들의 역사를 간직하고픈 열정과 노력이 깃들여 있다. 여기에 과거부터 풍부했던 황금어장에서 사용된 전통어구들이 많이 남아있는 것도 주요했다. 그 자리에서 잡은 새우를 젓갈로 담그는 독을 만들 수 있는 독공장 3곳도 눈길을 잡아끌었다.

사진가, 문화예술기획자, 지역 문화 단체 관계자, 인천지속가능발전협의회 등 많은 문화 예술인들이 문갑도를 8년 간 오갔다. 이를 통해 생생한 기록을 남기고 주민들과 함께한 시간들이 이번 사업의 결실로 나타났다.

● 문갑도 열흘 밥상 만들기 프로젝트

2016년에는 류재형 작가를 비롯한 많은 문화 예술 전문가들이 모여 '문갑도열흘 밥상'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문갑도에서만 나고 자란 제철 재료를 활용해 딱 열흘 정도만 맛볼 수 있는 명품밥상을 개발하는 작업이었다. 겨울에는 굴 밥상, 가을에는 자구리 약선밥상, 여름에는 빨간감자 밥상, 봄에는 엄나무밥상 등이 차려졌다. 이번 발굴 조사는 그 후속 작업 일환으로 진행됐다.

● 전통어구 발굴 전시

전시회와 함께 진행된 문갑도 전통 도구, 음식 발굴 프로젝트는 3가지 사업 영역으로 구분했다.
첫 번째, 전통 음식 채취, 조리 도구 발굴 조사와 주민들의 구술 동영상 기록 촬영, 문갑도 대표 전통 음식 재연 등이다. 조사 기간은 2017년 5월부터~11월까지 총 7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대표적인 채취 도구는 조새, 찍새, 굴바구니, 사닥, 구럭, 김 건조대, 김틀, 김대박, 김발, 갱뭉치, 사닥, 후리그물 등이다.
전통 조리 도구는 돌 맷돌, 나무맷돌, 절구, 망깽이, 지게, 맷방석, 독, 술독, 시루, 채, 키 등으로 조사됐다.

문갑도 주민들의 옛 생활사를 엿볼 수 있는 도구들도 다수 발굴돼 사진 전시에서 소개됐다. 500년 된 다듬잇돌과 100년 전 인두, 화로, 다리미, 뒤주, 호롱불, 등잔, 대패, 나무망치, 그물바늘, 나침반도 선 보였다.

● 전통 어구 사용 재현

문갑도의 대표적인 전통잡이 방식인 사닥그물, 후리그물 잡이는 마을 주민들과 함께 재연해 기록했다. 낙지잡이 모습도 전 과정을 영상으로 기록했다. 전통 음식인 갱국은 채취 과정부터 조리 시연, 맛 품평회까지 전 과정을 영상과 사진으로 기록했다. 이 자료들은 사라져가는 서해 섬 음식문화에 대한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이충환 이장은 "문갑도 전통 발굴을 위해 애쓰신 류재형 교수를 비롯한 많은 문화, 연구 전문가 분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류재형 작가는 "문갑도를 8년 동안 사진으로 기록하고, 그 결과물들이 주민들에게 조금이나마 자긍심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프로젝트가 지속가능한 섬 만들기 정책에 도움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기대했다.

/정찬흥 기자 report61@incheonilbo.com


문갑도는?

문갑도로 가기 위해서는 먼저 인천연안부두에서 쾌속선으로 1시간 20분 거리의 덕적도를 찾아야 한다. 그런 뒤에도 30분 정도 더 들어가야 도착할 수 있다. 인구는 60여 가구 100여명 정도다.
문갑도는 산이 높고 골이 깊어 풍광이 아름답고 물이 풍부한 곳이다. 과거 민어, 꽃게, 새우잡이의 황금어장으로 유명했다. 바로 잡아 올린 새우를 젓갈로 만들기 위한 독 공장도 3개나 있었다. 한월리 해변과 어루너머 해변은 문갑도의 대표적인 해수욕장이다. 물이 빠지면 낙지, 바지락, 소라, 갱, 가무락, 굴 등으로 소박한 섬 밥상을 만든다.
해초류가 풍부해 김의 최대 생산지로도 그 명성이 자자했다. 지금도 집 곳곳에서 땀과 손때가 묻은 낡고 오래된 김발과 김틀을 볼 수 있다. 북망산, 바위산, 돌뿌리산, 진모래위산, 젓골재산, 채나무골산 등은 섬 안에 계곡을 만들어낸다. 이 곳에서는 맑은 물이 한 없이 바다로 흘러든다. 바다와 산 그리고 계곡을 만날 수 있는 섬이 문갑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