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표 경기도평생교육진흥원 원장
지난 달 17일 학습을 통해 공동체와 도시를 살리는 사례를 배우기 위해 일본 도쿄를 다녀왔다. 도쿄에서 가장 감명을 받았던 것은 마을 곳곳에 있는 영웅들이었다.
시부야군에 위치한 '시부야 대학'은 그런 영웅들이 모여 개개인이 주도적으로 공동체를 위해 활동하는 곳이다. 시부야 대학은 2006년 '보다 나은 삶을 위한 학습'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스스로 참여하고 기획한다는 '참획'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시부야 대학에서는 누구나 강의를 만들 수 있다. 한 회계사는 '왜 치매 예방 강좌는 어디를 가도 있는데 정작 내가 치매에 걸렸을 때 재산상속이나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는 작업에 대한 강좌는 없을까?' 고민을 하다 실제로 관련 강좌를 기획해 운영하고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강의는 개인의 필요에서 나아가 공동체와 깊이 있게 관계를 맺는 결과를 만들어낸다. '오토나리 선데이(이웃 일요일)'라고 하는 지역축제와 '도토리 줍기 강좌'는 시부야 대학이 공동체와 호흡하며 활동하는 사례다. 오토나리 선데이는 행정과 연계해 작년 6월 개최됐다. 행정 또는 대학이 아닌 마을 사람들이 주체가 되어 축제를 기획하고 운영함으로써 참여시민도 늘어나고 그들만의 축제가 아닌 모두의 축제를 만들 수 있었다.

도토리 줍기 강좌는 12년째 매년 열리는 인기 강좌로 '메이지신궁의 숲을 지키는 사람들'이라는 NPO(비영리단체)와 함께 지역의 소중한 자원을 함께 배우고 지키고 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정주의식과 시민력은 자연스레 키워진다.
더욱 주목할 것은 이 영웅들이 지역의 숨겨져 있는 장인(匠人)이나 소수자들을 세상과 소통하게 해주는 다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부야 대학의 코디네이터이자 훗카이도 쿠시로 지역의 청년들은 '내 고향을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한 끝에 지역을 오랫동안 지탱해 온 장인들의 이야기를 발굴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이야기를 모아 인터넷을 통해 소개하고 사람들의 관심을 얻자 지역의 관광 상품으로까지 개발했다. 이제 여행객들은 쿠시로 지역 장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장인들의 활동을 체험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또 하나의 사례로 '휴먼라이브러리'가 있다. 휴먼라이브러리는 유명한 사람이 아닌 시부야의 장애인, 성 소수자, 노숙자들의 인생 이야기를 듣는 자리이다. 그들이 한 권의 책이 되어 소수의 그룹을 지어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시간을 통해 사회 소수자에 대한 선입견은 사라지고 서로를 인정하고 친구가 된다. 휴먼라이브러리의 슬로건은 "사람의 인생은 어떤 책보다 재미 있다"이다. 책 역할의 참여자 100%가 재참여 의사를 보였다고 한다.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만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책 역할을 하는 사회 소수자들도 세상과 소통하며 자신감을 얻고 변화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시부야의 좋은 사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같이 학습하는 사람들이나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이는 협동조합을 통해 지속적으로 학습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다면 그 시너지와 성과는 대단할 것이다. 도시를 대표하는 한 명의 영웅이 아닌 도시 전체가 수많은 영웅들을 키워낼 수 있다. 우리 주변 곳곳에 아직 드러나지 않은 '우리의 영웅'을 떠올리며 희망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