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철이다. 예전에 김장은 골목의 작은 잔치였다. 어머니들은 품앗이를 했고 김장을 끝내고 나면 단체로 동네 한증막에 가서 종일 피로를 풀었다. 며칠간 이웃집에서 건넨 색다른 김치 맛을 맛보는 즐거움도 있었다. 요즘은 예전만큼 월동 준비가 부산하지 않은 듯하다. 집에서 김장을 하는 대신 김치 공장에서 주문하거나 마트에서 그때그때 사먹기도 한다.

김치 공장은 인천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그 출발은 '전투식량'이었다. 1964년부터 73년까지 약 9년간에 걸쳐 31만3000명이 월남(베트남)으로 파병되었다. 장병들은 고국에서 만든 토종 김치가 그리웠다. 쌀이나 고기는 현지에서 얼마든지 조달이 가능했지만 김치는 그렇지 못했다. 정부는 김치도 '파병' 하기로 했다. 여러 집에서 담근 김치를 공급받아 비닐에 싸서 드럼통에 넣어 화물선에 실었다. 인천항을 떠난 수송 선박이 대만 주변을 지날 때 화물칸 여기저기서 폭발음이 들렸다. 김치가 더위에 발효돼 터져 버린 것이다.

정부는 김치 수송 작전을 다시 세웠다. 김치 통조림 공장을 세우기로 하고 전국을 대상으로 장소 물색에 나섰다. 인천시 신흥동 수인역(현 신광초교 뒤) 부근이 낙점되었다. 재료 조달이 수월한 수인선과 선적하기 좋은 인천항이 근접해 있다는 점이 고려되었다. 1967년 3월 18일 오전 11시 드디어 국내 최초의 김치공장이자 통조림공장의 준공식이 열렸다. 이날 농림부장관, 경기도지사 등이 참석할 만큼 이 공장의 가동은 그 의미가 컸다. 서독(독일)에서 들여온 설비를 갖춘 이 공장은 연간 200만 통의 통조림을 생산해내며 파월장병들의 전투력 향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가정에서는 다소 뜸해졌지만 김장의 열기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최근 공공기관, 단체, 종교계 등에서는 김장 나누기 행사를 연례적으로 펼치고 있다. 지난주 토요일 인천광역시여성단체협의회를 비롯한 8개 단체는 문학경기장 동문 광장에 모여 공동으로 어려운 이웃을 위한 '제1회 애인(愛仁) 김장대축제'를 열었다. 바야흐로 김치 담그기를 집 담장 밖의 이벤트이자 축제로 치르는 세상이 되었다.
/굿모닝인천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