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권 전 인천축산농협 조합장
새벽을 알리는 닭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들리던 전형적인 농촌 마을. 눈을 뜨면 농부들이 저마다 삽과 괭이를 들고 논과 밭으로 향하고, 우마차를 끌어 송도바다에 나가 어패류 채취를 주업 겸 부업으로 삼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그런 옛 풍경을 찾아볼 수 없는 신천지로 변해버렸지만 인천시 연수구 송도동 일원의 수십년 전 일상 풍경이다.

문득 고향의 옛 모습이 그립다. 과거 흔적을 더듬으며 향수에 젖은 원주민들은 자신이 생활했던 터전을 찾아보지만 어렴풋이 기억 속에나 남아 있을 뿐 옛 지명조차 바뀌어 지금은 전혀 알아볼 길이 없다.
지금 연수구는 원도심과 송도국제도시가 서로 조화를 이루고 공유하면서 잘 어우러져 인천의 중심 자치구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1995년 3월1일 남구에서 분구하며 탄생한 연수구가 화려한 새 출발을 선언했던 게 엊그제 같다. 화살처럼 빠른 세월의 변천은 결코 거스르지 못한다. 인천에서도 가장 신시가지였던 연수구는 거대한 매립지인 송도국제도시의 등장으로 이제 점차 원도심으로 변모해가고 있다. 교통, 환경, 체육 등 주민들이 생활하는 모든 면에서 인천시내 다른 자치구와 비교해 앞서 있다고는 하지만 기반시설 노후화와 연이은 주민 전출로 말미암아 생활만족도가 그리 높은 편은 아니다. 같은 연수구에 속하면서 신도시인 송도국제도시 또한 생활 여건 인프라는 아직도 부족함이 많은 편이다.

이런 가운데 연수구의 역사를 바로 알고 제대로 보전해 나가려는 지역사회의 고민과 노력이 절실하다는 생각이다. 그런 측면에서 연수구를 상징하는 대표적 지명인 '송도(松島)'와 '능허대(凌虛臺)'에 대해 철저한 역사 재고증과 함께 명칭 변경이 절실하다.

우선 송도의 경우 일제시대 때 송도유원지 일대를 송도라고 했는데 바다를 메워 만든 송도국제도시까지를 뭉뚱그려 송도라고 지칭함은 잘못이다. 원래 송도는 지금의 송도유원지 일원을 일컫는 지명이었다.
송도란 지명은 전국적으로 아주 흔하다. 고려시대 도읍 개경은 개성 또는 송도, 송악으로 불렸고 부산 최초 해수욕장인 부산 서구 송도해수욕장도 있다. 전남만 놓고 봐도 여수시 돌산읍·율촌면·묘도동, 해남군 송지면, 신안군 지도읍·신의면·안좌면, 완도군 군외면·고금면, 진도군 조도면 등지에도 송도가 있다. 충남 태안군 근흥면, 보령시 주교면에도 송도가 있고 경북 포항시 형산강 어구에도 송도동이 있다. 경남 창원시 진해구 연도동, 통영시 산양읍, 창원시 의창구에도 송도가 있다.

따라서 송도국제도시 지명은 인천을 상징할 수 있는 다른 이름으로 바꾸어야 마땅하다.
능허대축제 역시 축제 이름을 고쳐야 한다. 연수구는 올해 9월 23~24일 '제8회 연수 능허대 문화축제'를 송도국제교~컨벤시아교 사이 송도달빛공원과 능허대공원 일원에서 개최했다. '해상교류와 세계문화의 중심 고대 능허대와 인천신항을 잇다'란 주제로 다양한 프로그램이 선보였다. 고대 능허대에서 중국 대륙으로 향하던 백제 사신 행렬단의 모습을 재현한 백제 사신문화 행렬도 펼쳐졌다. 그러나 조선 후기 전국 295개 읍지(邑誌)와 17개 영지(營誌)를 수록해 편찬한 전국지리서인 여지도서(輿地圖書)를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여지도서에 실린 인천읍지(仁川邑誌)에 따르면 능허대란 지명은 없고 '대진(大津)' 또는 순우리말인 '한나루'라 칭한다고 나와 있다. 능허대를 백제 전승 유적으로 보호하는 것은 조선 후기 읍지에 실린 '백제조천시발선처(百濟朝天時發船處)'라는 기록에 근거하고 있다. 중요한 사실은 능허대가 조선 이래 1960년대까지 대진 혹은 한진이라 불린 유서 깊은 포구였다는 점이다.(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나루는 백제가 378년(근초고왕 27년)부터 웅진으로 도읍을 옮긴 475년(개로왕 21년)까지 중국을 왕래할 때 출발했던 나루터가 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백제~중국 간 교통로는 고구려로 인해 육로가 막힌 상태였기 때문에 바닷길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때 사신들이 중국 가는 배를 타던 곳이 바로 한나루였다고 한다.(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추억은 잊혀지면 그만이지만 역사는 후손들에게 제대로 물려줘야 할 사실의 기록이어야 한다. 다소 번거롭고 시끄럽더라도 진위를 가리려는 노력을 중단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