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해결 '직업병' 재조명 회견
"산재 인정 24명중 삼성 20명"
복지공단·법원 판정 아랑곳
삼성측 '무응답·불통' 일관
"묻지마식 일부 보상 안될말
책임 인정·사과·적정 보상을"
▲ 20일 오전 수원시 영통구 삼성디지털시티 중앙문 앞에서 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자 모임인 '반올림' 10주기 기자회견에서 최초 제보자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가 딸의 영정 사진을 들고 규탄 발언을 듣고 있다. /김철빈 기자 narodo@incheonilbo.com
"삼성전자 노동자 여러분, 꼭 일기를 쓰세요."

삼성전자반도체 기흥공장 노동자였던 故 황유미씨가 세상을 떠난 지 올해로 10년이 됐다.

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는 자신의 딸이 숨진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거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황씨는 "반도체 공장에서는 화학약품을 쓰지 않는다는 삼성 측 관계자의 말과 달리, 딸이 쓴 일기장에는 당시 반도체 공장에서 다뤘던 화학약품 등이 기록돼 있었다"며 "일기장이 언젠가 써 먹을 날이 온다면 피해에 대한 유효한 증거가 될 것"이라며 이 같이 말했다. 황씨는 대법원이 딸이 쓴 일기장을 주요한 증거로 채택했다고 덧붙였다.

황유미씨의 직업병 산재인정을 판정받기까지 아버지 황씨와 함께 한 이들이 있다.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이다.

20일 오전 수원 영통구 삼성디지털시티 정문 앞에서 반올림 발족 10년을 맞아 기자회견이 열렸다. 삼성전자 직업병 문제가 아직까지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재조명하기 위한 자리였다.

2007년 3월, 23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故 황유미씨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입사한 삼성에서 반도체 공정을 맡아 일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이 일로 삼성반도체에 대한 직업병 문제가 사회적으로 처음 제기됐다.

이후 같은 해 11월20일 19개 사회단체가 모여 '삼성반도체 백혈병 대책위'를 발족했고, 현재의 반올림이 되어 어느덧 10년을 맞이했다.

반올림이 삼성을 상대로 지난 10년 동안 싸워오면서 삼성반도체와 LCD(Liquid Crystal Display, 액정 디스플레이)분야에서 236명의 노동자로부터 직업병에 관한 제보를 받았다.

그중 지난달까지 80명이 세상을 떠났다. 전신성경화증을 앓던 삼성반도체 퇴직노동자 이혜정씨가 80번째로 사망했다.

휴대폰 등 삼성전자 계열회사로는 노동자 320명이 직업병을 호소했고, 118명이 사망했다.

이들의 끈질긴 투쟁으로 24명의 전자산업 노동자가 근로복지공단과 법원 등에서 산재인정을 받았다.

이중 20명은 삼성전자 노동자라고 밝혔다. 이들이 공단과 법원에서 인정받은 질병은 백혈병 외에도 재생불량성빈혈, 비호지킨림프종, 유방암, 뇌종양, 폐암, 난소암, 불임, 다발성신경병증, 다발성경화증 등 10종류에 달하고 있다.

하지만 반올림은 아직도 거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법원이 산재를 인정하고, 상식적인 판결이 나오고 있어도 삼성은 여전히 직업병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삼성이 '무응답'과 '불통'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2011년 6월, 법원은 행정소송 1심에서 故 황유미씨와 故 이숙영씨에 대해 처음으로 산재를 인정했다.

2012년 10월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삼성직업병 피해자와 삼성 임원이 동시 출석하면서 대화를 약속했다.

그러나 2013년 12월 이뤄진 첫 직업병 협상에서 반올림을 제외시켜 파행됐다.

2014년 5월 삼성전자는 대국민 사과를 하며 교섭을 재개했고, 그해 8월 서울고등법원은 故 황유미·이숙영씨의 산재를 인정하는 확정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2015년, 삼성이 자제 보상위원회를 설립하면서, 반올림 등과 갈등을 빚었다. 반올림은 피해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사과 등을 위해 2015년 10월7일부터 현재까지 삼성 서초사옥 앞에서 노숙농성을 776일째 벌이고 있다.

반올림 관계자는 "사회적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던 약속을 헌신짝 버린 삼성은,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묻지마식 일부 보상으로 모든 문제가 다 끝났다고 거짓말하고 있다"며 "직업병 문제에 대한 책임 있는 사과와 배제 없는 정당한 보상 등에 응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는 공식적인 입장 발표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안상아 기자 asa88@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