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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밖에 몰랐던 신념가, 그 평화의 씨앗 이젠 거둬야"

죽산 조봉암 선생 재조명 첫 시민 토론회

2017년 11월 15일 00:05 수요일
▲ 죽산 조봉암 선생 재조명 시민토론회가 '60년 망각의 세월, 조봉암이 남긴 평화의 씨앗'이라는 주제로 열렸다. 자유토론자들이 토론을 벌이고 있다.
인천 출신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지도자인 죽산(竹山) 조봉암(1898~1959) 선생을 재조명하는 첫 시민 토론회가 13일 부평어울림센터에서 '60년 망각의 세월, 조봉암이 남긴 평화의 씨앗'이라는 주제로 열렸다.

인천 부평역사박물관과 부평문화원이 주관한 이날 토론회는 기조강연과 주제발표에 이어 자유토론의 순으로 진행됐다. 이날 토론회를 지상 중계한다.

"죽산의 명예회복은 독립유공훈장을 추서받아야 완결된다."

조봉암 평전의 저자 이원규(70) 소설가는 '죽산 정신의 진정한 계승'에 대한 기조 강연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2007년 진실과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규명 결정과 2011년 대법원 재재심 판결로 죽산 선생의 명예가 회복됐으나 아직까지 독립유공자 서훈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국가보훈처는 유족의 서훈 신청을 반려한 이유로 죽산의 '친일행적'을 내세우지만 사실은 공산당 했던 죽산, 진보당 했던 죽산이니까 못준다는 진영논리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난 7월 망우리 묘소 추모제에 대통령의 조화가 놓인 걸 보았는데, 머지않아, 아마도 2년 뒤인 탄생 120년, 서거 60년이 될 때까지는 서훈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요즘 죽산이 다시 평가받는 것은 우선, 국격과 국가양심에 관한 것을 꼽았다. 정적에게 누명을 씌워 죽인다면 도대체 아프리카 우간다나 짐바브웨같은 나라와 다를 게 뭐가 있느냐며 2011년 대법원이 재재심을 열어 무죄를 선고한 것은 땅속에 묻어뒀던 국가 양심의 회복, 국격의 회복과 다음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60년이 지난 지금 죽산 선생이 주장했던 책임정치와 수탈없는 정의로운 경제, 평화통일 등 이 세가지 이념이 더 절실해졌다"며 "죽산은 신념을 향한 주저하지 않는 전진, 두려움 없는 전진을 하다가 쓰러진 실천가다. 억울한 죽음에 대한 위무와 진혼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죽산이 입안한 농지개혁의 위대한 성과, 억울하게 죽어 실현하지 못한 평화통일과 정의로운 경제, 인간다운 삶에 대한 아쉬움이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기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죽산은 유상몰수 유상분배의 농지개혁법을 관철시킴으로써 토지균등성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며 1000년 동안 지속돼 온 소작제도를 단번에 끝나게 한 농지개혁을 죽산의 첫번째 업적으로 꼽았다.

농지개혁 이외에도 죽산이 상하이에서 원격 지휘한 6·10 만세 사건은 3·1운동, 광주학생의거와 함께 일제강점기 가장 빛나는 저항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죽산이 외친 평화통일과 평등과 정의의 사회는 현 정부는 물론이고 보수세력 정권의 모토도 다를게 없는데, 자유당 정권의 트집으로 실현하지 못했다"면서 "죽산이 추구한 진보는 극한이나 맹목과는 거리가 먼 포용, 다수 대중이 원하는 희망을 받아 안는 것"이라고 그의 생애를 평가했다.

이어 주제발표에 나선 양윤모 인하역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은 "죽산의 최종적인 사상적 목표는 민족의식에 바탕을 둔 민족의 이익이며, 그가 생각한 민족은 바로 노동자와 농민층이었다"면서 "그가 갖고 있는 시대를 앞서는 국제적 감각과 독립에 대한 투철한 행동 그리고 좌우합작에 입각한 통일운동 등에 대한 노력은 지키고 이어가야 할 소중한 자산"이라고 식민지 해방공간 속 죽산의 활동과 사상을 조명했다.

오유석 성공회대학교 교수는 "그가 주창한 평화노선은 '핵' 전면화에 직면한 지금의 상황에서 더욱 분명하게 다가온다"면서 "냉전과 분단 조건이 가하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한계에 과감히 도전한 최초의 정치인이었던 죽산에 대한 평가를 통해 2018년 변화의 출발은 무엇보다도 정당정치의 지형을 보수와 진보로 바꾸는 데에서 시작돼야 할 것"이라고 해방 이후 조봉암 선생의 정치활동과 정치사상을 짚었다.

죽산은 진보당 창당대회 개회사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일을 없애고 모든 사람의 자유가 완전히 보장되고 모든 사람이 착취당하는 것이 없이 응분의 노력과 사회적 보장에 의해 다 같이 평화롭고 행복스럽게 잘 살 수 있는 세상, 이것이 한국의 진보주의라 해도 좋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가 못한 일을 먼 훗날 우리가 알지 못하는 후배들이 해나갈 것이네, 그러면 결국 어느 땐가 평화통일의 날이 올 것이고 국민이 고루 잘 사는 날이 올것이네, 씨를 뿌린 자가 거둔다고 생각하면 안 되지, 나는 씨만 뿌리고 가네'라는 유언을 남겼다.

/글·사진 이동화 기자 itimes21@incheonilbo.com



자유토론에서는


친일행적? 일본 문서 의존해선 안돼

유공훈장·동상건립으로 명예회복을


죽산 조봉암 선생 재조명 시민토론회 자유토론에서는 이민우 민족문제연구소 인천지부장이 사회를 맡아 그의 평화통일론과 명예회복 문제 등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권범재 죽산 조봉암선생기념사업회 이사는 사회민주주의에 기반 한 진보정치의 토양을 일구었으며 평화통일의 선구자였던 죽산의 염원처럼 민주적이며 통일된 새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황보윤식 함석헌평화연구소 소장은 조봉암에 대한 사법살인은 이승만의 독재와 부패자본에 대항하는 '진보당 사건'에서 비롯되는데, 이승만의 정치적 목적에 의해 정적을 국보법위반으로 조작해 사법적 인재 제거 음모의 첫 사건이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오경종 인천민주화운동센터 연구실장은 "유족의 서훈신청을 반려한 국가보훈처는 '일제말기 국방헌금 등 행적 불분명'이라는 이유를 들고 있는데, 국가보훈처가 죽산을 독립유공자로 불인정한 자료는 그것이 조작된 것이든 일제가 작성한 사찰기록 또는 총독부 기관지인 신문이든 그것에 의존하는데 문제가 있다"며 "결국은 해방된 이후 자주독립국가를 표방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지정은 여전히 일본인들이 작성한 문서, 독재정권이 조작한 재판에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만재 민족문제연구소 인천지부 운영위원은 "죽산을 사회주의 정당운동의 개척자라고 판단하기 보다는 이승만 이후에 집권을 꿈꾸는 정치가라는 입장에서 보면, 잠시 2선 후퇴하는 경우가 생겼더라도 분열과 고립으로 가는 상황을 어떻게든 피했어야 한다"는 주장을 했으며, 한만송 경인방송 정치행정팀장은 "식민지배와 분단의 아픔을 간직한 '부평', 죽산의 정치적 고향인 부평에 그의 동상을 건립하는 게 맞다"고 제안했다.

/이동화 기자 itimes21@incheonilbo.com


조봉암은

1898년 강화도에서 태어난 조봉암 선생은 일제 때 독립운동을 하다가 옥고를 치뤘으며, 해방 후 국회부의장을 역임했다. 초대 농림장관으로서 농지 개혁에 성공했고 2, 3대 대선에서 자유당 이승만 후보에 맞섰다.

그러나 1958년 '진보당 사건'으로 체포돼 간첩죄로 1959년 7월 사형됐다. 유족이 재심을 청구한 끝에 2011년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 60여년만에 '간첩'이라는 누명을 벗고 복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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