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질서 타파 평등사회 이루려는 노력 동·서양 관통"
▲ 루터대 정관영 교수가 유럽의 종교개혁과 동학혁명이 인류 문명의 위기에 던지는 교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금부터 정확히 500년 전인 1517년 10월 31일. 독일의 수도사 마틴 루터는 비텐베르크 교회 문 앞에 문서 한 장을 내다 붙였다. 당시 가톨릭 교회의 면죄부 판매를 맹렬히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이 사건은 종교개혁 운동에 불을 지폈고, 유럽의 역사는 일대 전환점을 맞게 됐다.

1860년 조선 땅 경주의 선비 최제우는 동학이라는 새로운 깨달음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동학의 정신은 항일독립전쟁과 3·1 만세운동 등 민족저항의 뿌리로 이어졌다. 해방 이후에는 4·19 의거, 6·10 항쟁, 광주민주화운동의 정신적 지주로 작용했다. 수구세력을 권좌에서 끌어 내렸던 촛불혁명의 배경에도 동학의 '개벽사상'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처럼 역사를 뒤흔든 두 사건을 살펴보는 강연이 지난 9일 부평아트센터에서 개최됐다. 강연에 나선 정관영(54) 루터대 교수는 "구질서를 타파하고 평등사회를 이루려는 노력이 두 사건을 관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동양사상, 특히 동학사상에서 인류문명의 위기에 대한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생명평화기독연대는 이날 오후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제138차 생명평화포럼을 개최했다. 루터대 정관영 교수가 '종교개혁과 동학혁명'에 대한 강연을 진행했다. 그는 개신교와 가톨릭, 불교, 동학, 주역 등 동·서양의 신앙을 두루 섭렵한 종교학자다. 정 교수는 먼저 인류가 직면한 문명의 위기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 인류문명의 위기

1990년 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된 이후 2008년 미국 금융위기가 몰려 왔다. 세계경제는 금융 산업으로 재편됐고, 국가와 개인은 많은 변화를 겪어야 했다. 하지만 이 변화는 경제적 위기를 넘어 지구적 위기로 다가오고 있다.
'자본주의 고도성장'이 질문공세에 시달린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인류의 생존을 지속가능하게 만들 수 있느냐는 의문이었다.
자본주의는 물질적인 풍요를 지탱하기 위해 끊임없이 시장을 확대·발전시켜왔다. 이는 자원고갈과 환경파괴, 금융 붕괴를 불러 종말을 재촉한다는 경고에 직면에 있다. 인간이 다른 집단을 정복하기 위해 개발한 핵무기는 인류문명 존립을 위협하고 있다.

● 유럽 종교개혁운동에서 나타난 자본주의 위기의 대안

정 교수는 "유럽의 종교개혁운동은 근대 발전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마틴 루터에게는 그리 후한 점수를 주지 않는다. 루터는 종교개혁의 방아쇠를 당겼지만, 기득권 세력을 인정하는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대신 그와 함께 동 시대의 종교개혁운동을 주도한 토마스 뮌처의 활동에 주목한다. 급진적 개혁가였던 뮌처는 농민운동을 통해 기존 질서를 뒤엎는 혁명적 변혁을 주장했다.
정 교수는 "뮌처의 농민군과 신흥 종파는 기독교적 공산주의의 운동을 벌였다"고 말한다.
뮌처는 이들을 이끌고 소비측면의 공산주의 운동을 벌였다. 마르크스식의 생산·소유 단계의 공산주의가 아닌, 소비단계의 공산주의 운동이었다.
그들의 종교개혁은 선사시대의 '원시적 사회주의'를 '근대적 사회주의'로 이끄는 과정이었다.
오늘날의 자본주의 위기를 완화할 수 있는 움직임이 종교개혁의 과정에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농민전쟁은 잔혹하게 진압 당했고, 뮌처는 루터의 탄핵을 받아 참수형을 당했다.

● 한국의 동학혁명

동학은 19세기 말 혼란을 극복하고 새로운 시대와 사회를 열겠다는 열망을 품고 있었다.
한국 근대사의 개벽을 알리는 '첫 출발'이었다.
최제우가 설파한 동학의 핵심은 '시천주' 사상이다. '내안에 하늘이 있고, 그 하늘을 정성으로 모신다'는 '신인 합일정신'이다. 사람 안에 하늘이 있으니, '사람이 가장 존귀한 존재이고 평등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이런 정신이 타락한 지배층의 악질적인 수탈과 맞물리면서 농민혁명으로 발전했다.
동학농민혁명은 사회체제 모순에 저항한 민중혁명이었다. 이 시천주 사상은 3대 교주 손병희 선생 때 '인내천'으로 발전했다.

● 종교개혁과 동학혁명 동시에 꿈꾼 '이상 사회'

정 교수는 두 역사적 사건의 공통분모를 '이상사회를 꿈꾸었다는 점'에서 찾는다.
종교개혁 운동은 유럽의 지배질서인 로마 가톨릭교회에 대한 도전이었다.
또한 농노제 해체와 자본주의 출현이라는 사회·경제적 변화와 관련을 갖고 있다.
동학혁명 역시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인 '개벽사상'을 설파했다.
이를 통해 당시 부패한 귀족지배계층과 지식인들에 대한 저항을 이어갔다.
두 사건을 둘러싼 사회 상황에서도 유사점이 발견된다. 중세 유럽과 조선왕조의 봉건주의 모두 농민봉기와 민중혁명의 요인을 안고 있었다.
뮌처는 교회제도의 개혁 뿐 아니라 봉건질서 타파와 평등사회를 꿈꿨다. 동학의 개벽사상도 억압받는 민중을 위한 반봉건·반외세 운동의 기폭제가 됐다.

● 동양사상을 통한 각성

인류문명의 위기를 인식한 서양의 지성들은 그 출구를 동양사상에서 구하고 있다.
전통적 서양철학은 존재론과 인식론으로 나뉘고, 주체와 객체를 분리한다.
하지만 이 같은 이원론은 총체적 사유를 가로 막는다. 결국, 서구의 이원론에서 위기의 해법을 찾으려는 노력은 근본적으로 부질없는 일이었다.
반면 동양사상은 우주와 생명의 본질이 따로 떨어질 수 없는 '하나'라고 생각한다. 주체와 객체를 가르지 않고, 우주는 '하나'라고 인식한다.
'하늘과 땅과 사람도 모두 하나'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모든 존재들은 그 근원인 생명의 '본질'과 '작용'의 합일인 것이다.
바로 동학이 말하는 시천주, 인내천, 천지인 사상이 서양에서 찾는 위기의 탈출구인 셈이다.
현대 철학과 미래학자들이 동학사상에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글·사진 정찬흥 기자 report61@incheonilbo.com


◇정관영 교수 약력

▲독일 Darmstadt공과대학교 사회학과 ▲독일 Kassel대학교 사회사업학과 박사과정 수료(사회정책) ▲수원여대, 협성대, 한세대 사회복지학과 강사 ▲주빌리사회서비스연구소 소장 ▲경기도지역사회서비스지원단 운영위원 ▲국제 상생 콜레지움 사무국장 ▲(현)수원시 사회적경제육성위원회 위원 ▲(현)루터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