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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인천을 읽다] 신설(新雪)-한하운   

  

2017년 11월 14일 00:05 화요일
눈이 오는가.

나요양소(癩療養所)
인간 공동묘지에
함박눈이 푹 푹 나린다.

추억같이……
추억같이……

고요히 눈 오는 밤은
추억을 견뎌야 하는 밤이다.
흰 눈이 차가운 흰 눈이
따스한 인정으로 내 몸에 퍼붓는다.

이 백설 천지에
이렇게 머뭇거리며
눈을 맞고만 싶은 밤이다.

눈이 오는가.

유형지(流刑地)
나요양소
인간 공동묘지에.
하늘 아득한 하늘에서
흰 편지가 소식처럼
이다지도 마구 오는가.
흰 편지따라 소식따라
길 떠나고픈 눈 오는 밤이다.



한하운은 문둥이 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시는 가멸찬 현실을 온 몸으로 살아가는 치열한 사투(死鬪)의 언어이자 가련하고 애달픈 통곡의 언어이다. 그래서 그의 시를 읽으면 세상에 융합되지 못하는 한 인간의 처절한 몸부림을 느낄 수 있다. 이 시에서 묘사되고 있는 눈 내리는 공간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가 느끼는 세상은 '유형지(流刑地)'이자 '인간 공동묘지'이다. 매일 형벌 같은 삶을 살면서도 추억처럼 내리는 눈을 만끽하면서 눈 내리는 길 따라 떠나고 싶은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여기서 '인간 공동묘지'는 다른 아닌 부평에 있는 '성혜원'이다. 그가 나환자들을 이끌고 인천 부평 공동묘지 골짜기로 자리를 잡은 때가 1950년경이다. 지금의 인천가족공원(부평공동묘지)의 위쪽 산속에 있었다고 한다. 한하운은 25년간 인천 부평에서 살았다. 나병환자들끼리 모여서 생계를 위해 농장을 설립하고 자치회도 만들어서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어 갔다. 그곳에 내리는 눈은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이고, 하늘 아득한 곳에서 소식을 전해주는 흰 편지이다. 같은 세상을 살면서도 세상과 단절된 곳. 그래서 흰 눈은 시인에게 더 간절하고 애달픈 대상이었을 것이다. 날씨가 쌀쌀하다. 곧 흰 눈도 내릴 것이다. 눈 오는 밤이 오면 '인간 공동묘지'가 되어 버린 현대인들의 내면도 따뜻하게 녹일 수 있을까. 

/강동우(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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