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일선 경희대 교육대학원 교수
한국에서 왼손잡이는 여전히 불편하다. 전 세계적으로 성인 전체의 10% 정도가 왼손잡이인데, 2013년에 진행된 한국갤럽의 '왼손잡이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 성인의 5%가 왼손잡이이다. 왼손잡이 경향성은 유전에 의한다는 설명이 현재로서는 가장 유력하다는 점과 한국인에게만 특별히 유전적으로 오른손잡이 경향성이 강하다는 증거가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세계 평균과 한국인 평균 간의 이 5%의 차이는 사회문화적인 영향이라고 봐야 한다. 즉 5% 정도는 사회문화적 압력에 의해서 오른손잡이로 강요된 것이고 이렇게 오른손잡이를 정상으로 간주하는 한국의 사회문화적 압력은 세계평균보다 높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압력은 소수자인 왼손잡이를 차별하는 인권 차원의 문제이기도 하고, 교육의 관점에서 본다면 발달기 아동의 창의성에 대한 구조적인 억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정상적인 어떤 것이 규범으로 제시되고 그것을 따라야만 하는 풍토에서 어떻게 자유로운 선택과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겠는가?
글쓰기를 예로 들자면, 왼손잡이의 경우 편하게 쓸 수 있는 왼손을 두고 오른손으로 글을 쓰게 하면 정작 논리와 아이디어에 써야 할 에너지의 상당부분은 글씨 그리기에 낭비될 것이다.
창의적인 글쓰기를 방해하는 또 하나의 억압은 원고지다. 내가 기억하는 200자 원고지의 이미지는 괴물이나 벌레다. 초등학교 3학년 쯤 처음 접한 원고지는 뭔가 이상했다. 한 줄 띄고 제목을 쓰고 또 한 줄 띄고 내 이름을 쓰고 그 다음 줄에 첫 칸을 띄고 뭔가를 쓰고 나면 한 두 줄도 안 되어 그 다음 쪽으로 넘어간다. 몇 자 쓰지도 않고 한쪽이 넘어 가는 게 보기에 이상했다. 그 다음 쪽부터는 띄어쓰기가 문제였다. 특히 쉼표나 마침표 다음에 한 칸을 띄어야 했고 단어 사이의 띄어쓰기는 맞춤법이 생소한 초등학생으로서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렇다고 선생님이 원고지 사용법과 띄어쓰기의 원칙과 사례를 명쾌히 설명해준 것도 아니었다. 아이들에게 가장 해로운 교육적 행위인 교사의 혼란스런 싸인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러한 이유로 당시에 원고지를 대하면 나는 요샛말로 '멘붕'이었다.
원고지는 일제의 잔재이기도 하다.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에 전국적으로 보급된 원고지는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에 들어와 쓰이기 시작했다.
전 세계에서 원고지를 쓰는 나라는 일본과 한국뿐이다. 원고지가 글씨를 반듯하게 쓰는 데 도움이 된다고는 하지만 한국과 일본을 뺀 어느 나라에서도 글쓰기에서 내용과 논리를 따지지 반듯한 글씨를 강조하지는 않는다.
유럽이나 미국의 학생들이 손으로 쓴 글씨가 얼마나 삐뚤빼뚤한지는 많은 이들이 아는 사실이다. 인천에서 가장 큰 백일장인 새얼백일장에 참가한 적이 있다는, 왕년에 글 솜씨 좋다는 칭찬을 많이 들었다는 한 학생이 내 주장에 동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백일장에 원고지가 없어지지 않는 한 한국인 노벨문학상은 없습니다." 물론 반박할 수 있다.
원고지를 쓰는 일본에는 올해 수상자인 이시구로 가즈오를 포함해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세 명이나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어는 띄어쓰기가 없기 때문에 한국어보다 원고지 부담이 훨씬 적다. 손 글씨를 쓰는 데는 보통 노트처럼 줄만 쳐진 종이면 충분하다. 백일장에서 원고지를 없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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