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극장엔 없는 희귀함 … 영화 속 한 장면 연출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엔 없는 소소하고도 풍부한 이야기가 있는 인천만의 '숨은 진주'같은 영화관들이 많다. 오래된 역사를 지닌 곳부터 세상 어디에도 없는 그 곳 만의 이야기가 있는 영화관까지. 한 문장으로 담기엔 깊고 넓은 사연을 가진 곳들을 둘러보자. 어딜 가도 볼 수 있는 상업영화가 아닌, 고전영화나 예술영화, 다큐멘터리, 독립영화 등 대형 극장에선 눈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는 그야말로 '희귀한' 영화들이 다 있는 영화관으로 가서 영화 같은 하루를 보내보자. 영화를 넘어 가치를 상영하는 인천의 영화관 나들이에 나서자.



감독 겸 시나리오 작가 유상욱씨, 전세계 고전·거장의 초기작 소개

# DRFA 365 예술극장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곳에서 영화 같은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곳, 강화 동검도에 위치한 'DRFA 365 예술극장'.


감독 겸 시나리오 작가인 유상욱씨는 스웨덴 영화 '천국에 있는 것처럼(2004)'을 보고 감명 받아 이런 귀중한 영화를 많은 분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정말 가치 있고 영화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고전영화가 많은데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선 일주일, 아니 3일 상영하기도 힘들죠. 그래서 내가 공간을 마련하자는 생각에 2013년 문을 열었어요." 


사실 그는 영화관을 열 장소를 정하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고, 10군데의 후보지 중 제주도를 최종적으로 낙점했었다. 우연인지 인연인지, 마지막으로 한 바퀴 더 돌아보다 우연히 동검도에 들렀고, 드넓은 갯벌과 운치 있는 갈대숲에 마음을 뺏겨 결국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35석의 소박한 영화관이지만 365일 전 세계의 고전영화와 작가주의 예술 영화, 거장이라 불리는 유명 감독들의 초기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이곳은 1999년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을 시작한 'DRFA(Digital Remastering Film Archive)' 동호회의 아지트이기도 하다. 꼭 봐야할 소중한 영화 필름들이 사라져 가는 현실에 안타까워하던 사람들이 희귀 필름을 찾아내 디지털로 복원하자는 취지에서 결성된 동호회로, 가입한 회원들만 6800여명에 달한다.
 

유 대표는 "사실 굉장히 어려운 장르에 도전하고 있지만 늘 많은 분들이 와주셔서 놀랍고 고마울 따름"이라며 "극장의 접근성이 나아지면 식사와 숙박, 심야영화까지 즐길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강화 길상면 동검리 83-13. 070-7784-7557


안내·영사기·매점 등 어르신 담당 … 촌스러운 포스터 정감 '낭만 물씬'

# 추억극장 미림

지난 25일 오후, 극장 입구 벽에 번쩍거리는 '상영 중' 네온사인이 지나가는 어르신들의 눈과 발을 잡는다. '티파니에서 아침을', '장고', '권총왕', '필사의 도망자', '덩케르크 철수작전' 등 낯설고 약간은 촌스러움이 묻어있는 포스터에 정감을 느꼈는지 매표소로 가 영화표를 끊는다.


매표소부터 안내, 영사기, 매점을 담당하는 분들은 모두 어르신들. 노란 조끼를 입고 능수능란하게 영화관을 누비는 모습에 관객들 얼굴에 절로 미소가 번진다. 이곳에선 1940~60년대 고전영화를 주로 상영한다. 젊은 시절 봤던 영화를 큰 화면으로 다시 볼 수 있어 평일에도 주말에도 늘 어르신들로 붐빈다.


1957년 '평화극장' 혹은 '평화회관'이라 불리며 천막극장으로 시작한 이 곳. 멀티플렉스가 들어서며 문을 닫았다가 2013년 노인의 날인 10월2일, 인천 유일 '실버전용관' 콘셉트를 지닌 '추억극장 미림'으로 다시 태어났다. 다음해 인천시사회적기업협의회가 맡으면서 인천 최초 '공익형 사회적 기업 1호'로 선정, 지금까지 관객과 지역의 낭만을 상영하는 곳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예술인파견지원사업으로 함께 하는 6명의 작가들의 역할도 크다. 류석현 작가가 DJ로 나서 신청곡과 사연을 전하는 '모던걸 모던보이들의 라디오쇼', 김푸르나 작가의 '아름다운 영화의 숲, 미림' 전시 등 젊은 세대의 감각과 어르신 세대들의 멋들어진 연륜이 만나 극장은 늘 밝은 에너지가 넘친다.


신안수 매니저는 "대형 영화관은 각자의 이야기나 역사가 없지만 미림은 극장 자체로도 한 편의 영화 같은 사연이 있어 일하면서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동구 화도진로 31, 032-764-8880



강화 '1호 영화관' 1개관 87석 뿐 … 주민들 차 마시고 모임하는 사랑방

# 강화 작은영화관

문화체육관광부가 국민 문화향유권 향상을 위해 전국 기초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공모사업에 선정돼 지난 2015년 문을 연 강화의 제1호 영화관, '작은영화관'. 이곳은 멀티플렉스 극장처럼 최신 상영작을 상영하지만 문화·여가 공간이 부족한 강화에선 그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다.


'21만 6000여명'. 개관 이후 영화관에 들른 관람객 수다. 그동안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 인천 도심이나 김포까지 먼 길 떠나야했던 이들이 이제는 가까운 동네에서 더 많은 작품을 즐기고 있다.


영화관은 1개관과 매점, 로비로 구성돼 있다. 상영관이 하나인 데다가 장애인석(2석)을 포함해 총 87개석인 이름 그대로 '작은'영화관이지만 주민들은 이곳에서 차도 마시고 모임도 하며 여가를 보내곤 한다.


또 하나의 인기 공간은 바로 '미디어센터'. 각종 영상매체 이론과 기술 등 영상·문화 교육을 제공한다. '미디어제작 실기교육', '미디어와 인문학', '미디어와 신기술' 등 다양한 연령대를 고려한 수업과 촬영, 조명, 녹음 장비 등을 대여할 수도 있어 특히 학생들의 호응이 높다. 


장은미 관장은 "강화에 극장이 있었지만 없어진지 24년만에 영화관이 생겨서 주민들이 굉장히 좋아하신다"며 "영화관과 미디어센터까지 더 많은 분들이 편하게 이용하실 수 있도록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강화 고비고개로 19번길 12, 강화문예회관 2층, 032-934-7053



국내·외 최신 예술·독립·다큐 상영 '올해 10살' … 영어 강의 워크숍 호응

# 영화공간 주안

국내·외 최신 예술영화와 독립영화, 다큐멘터리 등을 볼 수 있는 '영화공간 주안'은 전국 최초로 지자체에서 설립해 지원하는 예술영화관이다.


김정욱 관장의 상영작 선정 기준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확고하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 산하 예술영화인정 심사소위원회가 매달 선정하는 국내·외 독립영화를 기본으로 하지만, 그의 뚝심 있는 세 가지 원칙을 만족해야만 스크린에 오를 수 있다. 먼저 아트하우스를 제외하곤 투자와 제작, 배급 중 하나라도 대기업이 참여한 영화는 배제된다. 또 미학적 기준 없이 지나치게 잔인하거나 선정적인 영화도 제외다. 단 정치를 떠나 최대한 객관적인 태도로 사회문제를 다른 국내 다큐멘터리는 무조건 상영한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논란이 있었던 '다이빙벨'이 그 예다.


올해 10살이 된 '영화공간 주안'은 영화 상영 외에도 영화를 보는 눈을 길러주기 위해 꾸준히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다.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 김 관장과 홍상의 정신과 전문의가 함께 영화미학과 정신분석을 바탕으로 영화를 재해석하는 '사이코시네마 인천'과 자막에서 벗어나 영어권 예술영화를 더욱더 깊이 있게 감상하기 위한 영어 강의 '예술영화 워크숍' 등은 많은 시민들에게 꾸준히 높은 호응을 받고 있다.


김 관장은 "내년 1월엔 국내에서 유일하게 화제를 모았던 독일 영화 '타인의 삶'의 배우 '마르티나 게덱'을 초청해 시네마테크 배우전을 열 계획"이라며 "앞으로도 다양한 예술영화를 소개하고 그 매력을 알리는 데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남구 주안동 미추홀대로 716 메인프라자 7층, 032-427-6777

/송유진 기자 uzin@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