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장
지난 주말 한 신문에 실린 사진이 눈길을 확 끌었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건설 재개' 결론이 나던 순간이다. '건설 반대' 집회에 나섰던 인사들이 땅을 치며 탄식하는 장면이었다. 게 중에는 눈물을 훔치는 이들도 보였다. 요즘은 초상집에를 가도 보기 어려운 장면들. 그들은 무엇이 그리도 슬프고 통탄스러웠을까.
사진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더욱 놀라웠다. 백발이 성성한 남녀 노인들이었다. 역전의 노장들인가. 언뜻 지나간 여러 투쟁의 장면들이 겹쳐 보였다. 맥아더 동상 철거, 평택 미군기지 반대, 제주 해군기지 반대 투쟁 등등. 10여년 전 인천 자유공원의 한 장면이 살아났다. 기필코 동상 하나를 끌어내리겠다며 백발의 투사들이 자유공원에서 천막 농성 중이었다. 천막 밖으로 흘러 나온 얘기. "저 X 때문에 다 된 통일 망쳤다."
그들의 탄식에도 불구하고 공론화의 결론은 국민들의 이성이 살아 있음을 보여줬다. 애초에 '듣보잡'의 공론화부터가 논란거리였지만 석달만에 비로소 가슴을 쓸어내렸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공사 중단 배상 1000억원에 위원회 활동비만 46억원. 굳이 청년 일자리로 환산해 보지 않아도 지나치게 비싼 관람료다. 공론화가 대세라면 되는 것도 안되는 것도 없는 국회부터 공론화에 부쳐 볼 일이다. 왜 원전산업만인가. 중국산 철강이 넘쳐 나는 제철산업도, 노사분규가 끊이지 않는 자동차산업은 또 어떤가.

그럼에도 탈원전 문제는 여전히 뒤끝이 남아있다. 정부는 공론화위원회의 결론을 수용한다면서도 '탈원전' 공약은 흔들림없이 지켜 나갈 것이라고 한다. 원전해체연구소를 만들고 신규 원전은 전면 중단한다는 것이다. 건설을 준비 중인 신한울 3·4호기, 천지 1·2호기에는 이미 수천억원이 지불돼 있다. '탈원전'만은 포기 않겠다는 것은 이번 공론화 과정에 드러난 여론을 충분히 읽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도 해외 원전 수출은 지원하겠다니. 이혼은 해도 아이들에게는 아무 피해가 없다는 억지다. 우리 원전을 수입했거나 하려는 나라들의 표정이 어떠할지.

대통령 탓이든 '나 몰라라'하는 공무원들 탓이든, 박근혜 정부는 대한민국의 해운산업을 무너뜨린 정부로 기록될 것이다. 어떻게 키워 온 해운산업인가. 해양 진출 불모의 나라에서 5000년래 처음으로 전 세계의 바다에서 '수출 코리아'의 선기(船旗)를 휘날렸다. 그러나 세계 6위의 국적 선사를 해체하면서 한국은 스스로 불명예스런 비해운국의 길을 걷고 있다. 문제인 정부는 이제 다시 대한민국의 금쪽같은 원전산업을 망가뜨린 정부로 기록되려는가. 어떻게 쌓아올린 원전산업인가. 변변한 나사못도 못만들던 나라에서 기술을 구걸하고 때론 훔쳐오며 쌓아 온 세계 최정상의 우리 원전산업이다.
정부에 바둑과가 없는 탓에 한국 바둑이 잘나간다는 얘기가 있다. 경제와 산업은 시장에서 땀흘리는 그들에게 맡기고 가만 놓아두라. 원자력의 안전이 미심쩍으면 그 때 정부가 나설 일이다. 빈대 잡는다며 초가삼칸부터 태울 일은 아니다. 정히 원전이 싫다는 이들은 '내집부터 원자력 전기 절대 안쓰기', '내집부터 태양광·풍력발전' 등의 시민운동을 벌이면 될 일이다.

대다수 국민들은 문제인 정부의 성공을 빈다. 어떻게 일으킨 대한민국인데. 5년을 또 허송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탈원전-진보, 친원전-보수 따위의 편가르기는 지겹다.
이념을 떠난 실사구시(實事求是)만이 정권의 성공을 보장한다. 이 시대의 실사구시는 우리 청년들이 일본을 부러워하지 않아도 되도록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일이다. 청년 일자리에 방해된다면 섣부른 공약이나 열혈 지지세력조차 과감히 배신해야 한다. 일찌기 노무현 대통령도 '먹고 사는 일의 엄중함'을 일갈한 바 있지 않은가.